항목 ID | GC049007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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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廉想涉 |
분야 | 역사/근현대,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이진선 |
출생 시기/일시 | 1897년 8월 30일 - 염상섭 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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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11년 - 염상섭 보성소학교 졸업 |
수학 시기/일시 | 1911년 - 염상섭 보성중학교 입학 |
수학 시기/일시 | 1913년 - 염상섭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아사부 중학교 2학년 편입학 |
수학 시기/일시 | 1914년 - 염상섭 도쿄 히지리 중학교 3학년 편입학 |
수학 시기/일시 | 1915년 - 염상섭 도쿄 히지리 중학교 3학년 수료 |
수학 시기/일시 | 1915년 9월 - 염상섭 교토 부립 제2중학교 전입학 |
수학 시기/일시 | 1918년 4월 - 염상섭 게이오 대학 예과 입학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 염상섭 3·1 운동 때 오사카 덴노우찌 공원에서 시위를 주동하다 체포되어 투옥 |
몰년 시기/일시 | 1963년 3월 14일 - 염상섭 졸 |
추모 시기/일시 | 1996년 10월 - 염상섭 동상 건립 |
출생지 | 염상섭 출생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적선동 |
묘소 | 천주교 혜화동 교회 방학동 묘원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65-1 외 |
성격 | 소설가 |
성별 | 남 |
본관 | 서원 |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천주교 혜화동 교회 방학동 묘원에 안장된 소설가.
[활동 사항]
염상섭(廉想涉)[1897~1963]은 1897년 8월 30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적선동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상섭(尙燮), 호는 횡보(橫步)·제월(霽月), 가톨릭 세례명은 바오로, 본관은 서원(瑞原)이다. 자연주의 및 사실주의 문학을 이 땅에 건설한 최초의 작가로 평가되며, 1963년 3월 14일에 67세의 나이로 성북구 자택에서 직장암으로 사망하였는데, 당시는 도봉구가 성북구로부터 분리, 신설되기 전이었다. 사후 도봉구 방학동 천주교 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
염상섭은 1920년 7월에 김억, 김찬영, 민태원, 남궁벽, 오상순, 황석우 등과 함께 동인지 『폐허』를 창간하고, 김동인과 평론의 기능 논쟁을 하기도 하며, 문학의 길에 발을 내딛는다. 1921년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발표하며 소설가로 등단한 이후, 「암야」, 「제야」 등을 발표하였다. 최남선 주재의 『동명』 창간 편집 기자로 일하였으며, 1924년 2월에 『폐허 이후』를 간행하고, 3월 『동명』의 후신으로 창간된 시대 일보에 사회 부장으로 취임하였으며, 4월 「묘지」를 「만세전」으로 개제하여 『시대 일보』에 연재하였다.
1924년 8월에 첫 창작집 『해바라기』를 출간하였다. 1929년 9월에 『조선 일보』 학예 부장으로 입사하여 「민족 사회 운동의 유심적 고찰」, 「소설과 민중」 등의 평론을 발표하기도 하였으나 점차 소설 창작에 전념하였다. 1931년에 『조선 일보』에 그의 대표작 「삼대」를 연재하였고, 1934년에 매일 신보에 입사, 정치 부장직으로 활동하다가, 1936년에 만주로 건너가 『만선 일보』의 주필 겸 편집국장으로 활동하였다.
8·15 광복과 더불어 1946년에 귀국하여 『경향 신문』 초대 편집국장을 지냈으며, 「두 파산」, 「일대의 유업」과 같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6·25 전쟁 중에는 해군 소령으로 복무하였으며, 1954년에 예술원 종신회원으로 추대되었고, 서라벌 예술 대학교 학장 등을 역임하였다.
[저술 및 작품]
염상섭은 장편 20여 편, 단편 150여 편, 평론 100여 편 이외에 기타 수필 등 잡문 200여 편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염상섭의 초기 소설은 「표본실의 청개구리」[1921], 「암야(闇夜)」[1922], 「제야(除夜)」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작품들은 모두 현실에 지쳐 있는 지식인 청년의 고뇌와 방황을 보여 주고 있지만, 서사적 구조 자체의 불균형과 서술의 구체성을 상실한 생경한 관념의 노출로 인하여 소설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924년에 간행된 「만세전」에 이르러서 염상섭은 삶의 전체성에 대한 인식에 접근하고 있는데, 당대의 식민지적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이 작품은 결말 부분의 도피 행위로 말미암아 작가의 현실 인식이 한계를 드러냈다고 평가되기도 하지만, 이러한 암울한 현실로 인해 3·1 운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음을 담담하게 그려나가고 있다. 염상섭의 대표작으로 지목되는 장편 소설 『삼대』는 한 가족 삼대에 걸친 이야기를 토대로 한말에서부터 식민지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한국의 사회상을 총체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소설로, 1930년대의 여러 이념의 상호 관계와 함께 유교 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변모하고 있는 현실을 생동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품의 속편으로 「무화과」를 내놓은 이후, 「모란꽃 필 때」, 「그 여자의 운명」과 같은 통속 소설을 발표하였다. 1949년에는 「두 파산」, 「임종」 등을 발표하면서 일상적인 인간의 삶에 대한 관심이 짙어졌는데, 시대적 상황이나 현실적 조건을 문제 삼지 않고 평범한 일상생활의 단면을 다루고 있는 소설은 작품집 『일대의 유업』[1955], 『젊은 세대』[1955] 등에서 그 특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장편소설 『취우』[1954]는 6·25 전쟁 당시의 현실을 배경으로 하여 도덕을 초월한 본연의 인간애(人間愛)를 그린 작품으로 풍속과 세태에 대한 흥미에 집중적인 관심을 보여 주고 있다.
[묘소]
묘소는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천주교 혜화동 교회 방학동 묘원에 마련되었다.
[상훈과 추모]
1954년에 6·25 전쟁 중의 서울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낸 장편 「취우」로 서울시 문화상을 수상하였으며, 1956년 3월에 「짖지 않는 개」로 아세아 자유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1957년에는 예술원 공로상, 1962년에는 3·1 문화상을 수상하였고, 대한민국 문화 훈장[대통령장]을 서훈 받았다. 1964년에 염상섭의 도봉구 방학동 묘지 앞에 문학비가 건립되었으며, 1996년 10월에 서울 종묘 공원 염상섭의 생가 터 부근에 염상섭 동상이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