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7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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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熙周 |
영어음역 | Jeong Huiju |
이칭/별칭 | 종모재(終慕齋)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재영 |
성격 | 효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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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
성별 | 남 |
생년 | 1633년 |
본관 | 진주 |
대표관직 | 동몽교관 |
[정의]
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진주(晋州). 호는 종모재(終慕齋). 절제사를 지낸 정종순(鄭宗舜)의 현손으로, 아버지는 정기현(鄭期顯)이다.
[활동사항]
정희주(鄭熙周)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어버이를 지성으로 모시어 뜻을 받들어 봉양을 다하였다. 부모의 병이 위중하자 변을 맛보고 하늘에 빌어 대신하기를 원했으며,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마시게 하여 아버지는 16년을, 어머니는 6일을 연명(延命)케 하였다. 아버지의 병환에는 눈 속에 꿩이 날아들고, 호랑이가 호위하였으며, 샘물이 솟았다. 또한 부모의 상을 당해서는 3년 동안 죽으로 연명하면서 시묘를 했다. 3년상을 마치고 애통사(哀痛詞) 한 편을 지어 종신토록 사모하는 뜻을 나타내며 종모(終慕)로 호를 지었다.
[상훈과 추모]
유림에서 정희주의 효행을 알려 정문(旌門)이 내리고 동몽교관에 증직되었다. 효종 때에 복호(復戶)[충신·효자·열부 등에게 노역과 전세(田稅) 이외의 잡부금을 면제하던 일]되었고, 순종 때에 사우(祠宇)가 건립되었다. 무진년에 정문이 내리자 기우만(奇宇萬)이 정려기(旌閭記)를 지었다. 도봉사(道峰祠)에 주벽으로 향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