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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1239
한자 晋州鄭氏三鋼閣
영어음역 Jinju Jeongssi Samganggak
영어의미역 Memorial Gate for Jinju Jeong Clan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군유리 345-1[비석중화길 1]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주명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의사|효자|열녀
양식 정려 비각|팔작지붕
건립시기/일시 1958년연표보기
정면칸수 3칸
측면칸수 1칸
소재지 주소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군유리 345-1[비석중화길 1]지도보기
소유자 진주정씨 종중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군유리에 있는 진주정씨 가문의 정문.

[개설]

진주정씨(晉州鄭氏) 가문의 충신, 효자, 열녀들이 누대에 걸쳐 정려를 하사받았다. 진주정씨 삼강각에는 하나의 비석과 열세 개의 현판이 있어 이들의 활동 사항을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정흘(鄭屹)은 정유재란 때 창의하여 의진에 임했으나, 전라감사가 무장현[현 무장면]에 현감 자리가 공석이자 현감 직책을 맡아 성을 지키면서 그 소임을 감당하여 충신으로서 진주정씨 삼강각의 수위에 올랐다.

정흘의 손자 정희주(鄭熙周)와 그의 아들 정민상(鄭敏相), 정유상(鄭有相) 3부자는 효우문학(孝友文學)으로 도봉사에 배향되었고, 정근일(鄭根日)은 부모상에 6년을 여묘하였으며, 정근수(鄭根秀)는 종신토록 부모에게 효도하였다. 정의원(鄭義源)의 처 천안전씨(天安全氏)는 무신란[戊申亂: 이인좌의 난] 때 병화를 피하여 시아버지를 업고 피난하여 목숨을 보존하였다.

정동찬(鄭東燦)의 처 신평송씨(新平宋氏) 역시 무신란 때 시조부를 업고 피난하다가 함께 죽었고, 정희철(鄭曦哲)의 처 청송심씨(靑松沈氏)는 남편이 죽자 못에 빠져 의로운 죽음을 택하였으며, 정낙원(鄭洛源)의 처 창녕성씨(昌寧成氏)는 남편이 병에 걸리자 손가락의 피를 남편의 입에 흘려 명을 늘렸고, 이조참판 정계천(鄭桂天)의 처 정부인(貞夫人) 여주이씨(驪州李氏)는 남편을 예로 도와 규범을 지키는 의표(儀表)가 되었다.

정근철(鄭根哲)의 처 능성구씨(綾城具氏)는 남편이 병에 걸리자 허벅지를 베어 구완하였고, 시아버지가 병에 누웠을 때는 손가락을 찢어 피를 흘려 구완하였다. 정계두(鄭桂斗)의 처 김해김씨(金海金氏)는 시부모가 살아 있을 때나 죽은 뒤에도 예를 다해 섬겼고, 정근석(鄭根碩) 처 함평이씨(咸平李氏)와 정금묵(鄭金默)의 처 장흥고씨는 지혈로 남편의 수명을 늘렸다.

정근수(鄭根秀)의 처 청도김씨(淸道金氏)는 남편이 10년 동안 병에 걸려 눕게 되자 변을 맛보거나 하늘에 기도하여 낫기를 원하였다. 이렇게 한 가문이 정려 하나 하사받기도 어려운데, 13위의 충효열이 세상에 이름을 날린 예는 드물다.

이렇게 모두 열 세 사람이 정표되었는데 이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의사표북헌 정공흘지려(義士尨北軒鄭公屹之閭)’, ‘효자송포 정공근일지려(孝子松圃鄭公根日之閭), 효자광남정공근수지려(孝子光南鄭公根秀之閭)’, ‘학생정공의원배효부천안전씨지려(學生鄭公義源配孝婦天安全氏之閭)’, ‘학생정공동찬배효부신평송씨지려(學生鄭公東璨配孝婦新平宋氏之閭)’, ‘학생정공희철배열부청송심씨지려(學生鄭公曦澈配烈婦靑松沈氏之閭)’, ‘학생정공낙원배열부창녕성씨지려(學生鄭公洛源配烈婦昌寧成氏之閭)’, ‘이참정공계천배열부정부인여주이씨지려(吏參鄭公桂天配烈婦貞夫人驪州李氏之閭)’, ‘학생정공근철배열부능성구씨지려(學生鄭公根哲配烈婦綾城具氏之閭)’, ‘학생정공근석배열부함평이씨지려(學生鄭公根碩配烈婦咸平李氏之閭)’, ‘참봉정공계두배열부숙인김해김씨지려(參奉鄭公桂斗配烈婦淑人金海金氏之閭)’, ‘학생정공금묵배열부장흥고씨지려(學生鄭公金默配烈婦長興高氏之閭)’와 정흘의 손자 정희주 및 아들 정민상, 정유상 3부자이다. 「진주정씨삼강려기」를 후손 정익환(益煥)이 썼다.

[위치]

고창군 공음면에서 지방도 796호선을 따라 무장면 쪽으로 가면 군유리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 다다른다. 버스 정류장 바로 앞에 진주정씨 삼강각이 있다. 정려각 주변에는 민가가 들어서 있다.

[변천]

1958년에 건립하였다.

[형태]

정면 3칸, 측면 1칸이며, 팔작지붕에 겹처마이다. 진주정씨 삼강각 안 네 벽에 현판열세 개가 있고, 담장 안에 비석이 있다. 내삼문을 시작으로 시멘트 벽돌담이 둘러 있다.

[현황]

건축 연대가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보존 상태가 좋지 않다. 여기저기 훼손된 부분이 보인다.

[의의와 평가]

열세 명의 정려를 한 집안에서 하사받았다는 사실은 국가적으로 볼 때 유례가 드물다. 이는 비단 진주정씨 가문만의 자랑이 아니라 고창의 자랑거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씨 가문에서 제대로 보존하지 못하고 있어, 고창군이나 공음면에서 관리할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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