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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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2년(선조 35) 노경임이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의 냉산을 유람하고 쓴 기행문. 노경임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안강(安康), 자는 홍중(弘仲), 호는 경암(敬菴)이다. 1591년(선조 24)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교리(校理)·지평(持平)을 지냈다. 노경임은 정인홍(鄭仁弘, 1535~1623)을 간사한 인물이라고 장현광(張顯光, 1554~1637)에게 보고하였는데,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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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8년에 최현이 편찬한 선산의 옛 읍지. 선산부사로 부임하였던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은 1477년 읍민들에게 공평한 세정을 펼치고 관할 지역의 사정을 파악하기 위한 자료로 「선산지도지(善山地圖誌)」를 만들었으며, 이를 행정 자료로 이용하였다. 이후 노경임(盧景任, 1569~1620)은 1601년 『숭선지(嵩善誌)』를 편찬하였으며, 1618년(광해군 10) 인재(訒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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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 자는 방현(邦顯). 우윤(右尹) 김득자(金得資)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판결사(判決事) 김정(金鼎)이다. 김광열은 성품이 관대하고 학문이 높았으며, 선조 때 천거에 의해 정헌대부동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다. 경암(敬庵) 노경임(盧景任)과 친교를 맺었으며, 집안의 재산이 부유하여 많은 곡식을 나라에 헌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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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낙산리는 사기점, 대문동, 하도, 중리, 원촌, 칠창, 여진 등 일곱 개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사기점은 숭신산성 아래에 있는 마을로 천주교도 박해 때 신도들이 이곳에 피신하여 사기를 만들어 붙여진 이름이다. 대문동은 조선 선조 때 홍문관교리를 지낸 경암 노경임(盧景任, 1569~1620)이 이곳에 대궐 같은 큰 집을 지었는데, 대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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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구미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홍중(弘仲), 호는 경암(敬菴). 할아버지는 노희식(盧希軾)이고, 아버지는 노수함[(盧守諴), 1516~1573]이다. 어머니는 인동장씨(仁同張氏)로 장열(張烈)의 딸이며, 부인은 풍산유씨(豊山柳氏)로 유운용(柳雲龍)의 딸이다. 노경임(盧景任, 1569~1620)은 장현광(張顯光, 1554~1637)과 유성룡(柳成龍,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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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순백(純伯), 호는 건재(健齋). 박수일(朴遂一)은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암(敬庵) 노경임(盧景任, 1569~1620)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많은 공을 세웠다. 이후 군자감정(軍資監正)에 임명되었고,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다시 의병을 모아 여러 곳에서 전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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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송곡1리 숭암마을에서 음력 1월 14일 자정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숭암(崇岩)마을은 경암(敬菴) 노경임(盧景任, 1569~1620)이 임진왜란 후 개척한 자연부락인데, 태조봉 아래 높은 큰 바위가 있다 하여 숭암마을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송곡1리 숭암마을 동제는 매년 음력 1월 14일 자정에 산제당과 느티나무 두 곳에서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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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송곡리는 용소골, 배내[舟川], 못안, 구시골, 숭암, 가잠, 주평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용소골은 도리사 아래 마을로 마을에 있는 쌍둥이 못에 용이 살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배내는 병자호란 때 탄옹 김공이 인조를 호위하다 병을 얻어 요양하기 위해 이주하였다는 마을로, 풍수지리에 의하면 마을 형상이 배 모양이므로 붙여진 이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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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창림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세워진 서원. 1647년 해평면 해평리에 송산사(松山祠)를 세운 데서 비롯되었다. 1656년(효종 7) 현재의 위치인 창림리로 옮겨 서원으로 확장되었다. 병암 김응기, 신재(新齋) 김진종(金振宗), 송정(松亭) 최응룡(崔應龍), 주천(舟川) 강유선(康惟善), 인재(訒齋) 최현(崔晛), 경암(敬庵) 노경임(盧景任)을 배향하였다.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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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안강인 경암 노경임이란 선비가 임진왜란 후 마을을 개척하였고 태조산 큰 바위 밑에 자리잡은 마을이라 하여 숭암이라 칭하였다. 일명 송암이라고도 한다. 송암마을은 낙동강변을 따라 형성된 제방으로부터 북쪽으로 떨어져 있고 연화봉의 산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농경지는 마을 주변의 산지쪽으로 논이 나타난다. 송곡리의 자연마을 가운데 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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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국가와 향토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일어나 싸운 민병. 1592년 4월 13일 일본군이 부산진을 침략하면서 북상하자 구미 선산에서는 노경임(盧景任)을 대장으로 하는 선산향병(善山鄕兵)이 조직되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군이 들이닥치면서 곧 무너졌다. 그리고 해평 출신 부안현감 고한운(高澣雲)이 군졸과 흩어진 의사들을 모아 금오산성에서 진을 치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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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같은 성을 가진 사람이 모여 사는 촌락. 조선왕조는 성리학을 지배 이데올로기로 강조하면서 숭유억불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였다. 그러나 고려왕조의 불교적 색채는 조선 전기까지 끈질기게 남아 있었으며, 조선왕조가 추진하는 성리학적 지배이데올로기는 중종 연간을 지나면서 서서히 지방 양반과 일반 백성에게 영향을 미쳤다. 특히 남귀여가(男歸女家)의 혼인, 재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