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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0833
한자 耕隱李孟專遺墟碑-墓碑
영어의미역 Yi Maengjeon's Monumental Stones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형곡동 142|해평면 금호리 산 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임삼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98년 4월 13일연표보기 - 경은 이맹전 유허비 및 묘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46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경은 이맹전 유허비 및 묘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성격
건립시기/일시 조선 후기
관련인물 김만증|수양대군|세조|김숙자(金叔滋)|김종직(金宗直)
재질 석조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구미시 형곡동 142,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금호리 산 1지도보기
소유자 벽진이씨 판서공파 종중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 형곡동구미시 해평면 금호리에 있는 조선시대 선비 이맹전의 유허비와 묘비.

[개설]

이맹전단종을 위하여 절의를 지킨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본관은 벽진(碧珍)이고, 선산 출신이다. 길재의 제자이기도 하다. 1427년(세종 9) 친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으며, 김숙자(金叔滋), 김종직(金宗直) 부자와 평생을 가까이 지냈다. 승문원정자를 거쳐 1436년(세종 18) 정언에 임명되었고, 얼마 뒤 거창현감이 되었는데, 선정을 베풀어 고을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으며 ‘청백리’라는 호칭을 얻었다.

1453년(단종 1) 수양대군단종을 보좌하는 황보인(皇甫仁), 김종서(金宗瑞) 등 대신을 죽이고 정권을 탈취하여 시국이 어수선해지자, 이듬해에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선산으로 돌아가서 귀머거리이자 소경이라는 핑계를 대고 은둔하면서 친한 친구마저 사절하고 30여 년 동안 문밖에 나가지 않았다. 89세에 사망하였다.

1781년(정조 5) 영의정 서명선(徐命善)의 건의에 의하여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함안의 서산서원에 원호(元昊), 김시습(金時習), 조려(趙旅), 남효온(南孝溫), 성담수(成聃壽)와 함께 생육신으로 제향되었고, 선산의 월암서원에는 김주(金澍), 하위지(河緯地)와 함께 제향되어 있다. 시호는 정간(靖簡)이다. 1816년(순조 16) 후손 이인백이 이맹전의 글들을 모아 3권 1책으로 된 『경은실기(耕隱實記)』를 간행하였다. 1998년 4월 13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4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건립경위]

이맹전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로 숙종 때 선산부사를 지내던 김만증이 이곳에 비각과 함께 세워두었다.

[위치]

구미시 형곡동 구미 시립도서관 경내 북측에 있었다. 형곡동에 있었으나 도시 계획에 의해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5.09.11 내용 수정 본관 성주->벽진으로 수정(2015.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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