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14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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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張澤相 |
영어음역 | Jang Taeksang |
이칭/별칭 | 창랑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오태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용만 |
성격 | 정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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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구미시 오태동 |
성별 | 남 |
생년 | 1893년 |
몰년 | 1971년 |
본관 | 인동 |
대표관직 | 국무총리|자유당대표최고위원 |
[정의]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정치가.
[활동사항]
창랑(滄浪) 장택상(張澤相)은 일제강점기에 영국 에딘버러대학교에 유학하여 정치학을 전공하고 귀국하여 항일 운동을 했다. 1945년 해방 이후 영국에서 교육받은 경력과 영어에 능통한 점을 인정받아 미군정 때 수도경찰청장을 맡아 좌익 세력 타도에 앞장섰다. 이승만 정권 출범과 함께 초대 외무부장관을 지냈으며, 1950년에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6·25전쟁 중에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3대 국무총리에 임명되었다.
국무총리 재임시 이승만의 장기 집권을 위해 국회를 무력화하고, 임시수도인 부산 일원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였다. 이러한 강압적 분위기에서 당시 국회가 선출하도록 되어 있던 대통령 선출 방식을 직접 투표로 바꾸는 발췌개헌안 통과에 앞장섰다. 1952년 봄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와 장택상의 주도로 행정부 권력이 의회를 무력화시킨 것은 한국 헌정사에서 권력 분립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을 최초로 깨뜨린 사건이었다. 제3대~제5대 민의원에 연속으로 당선되었으며, 자유당 대표최고위원까지 역임하였다. 5·16군사정변 이후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