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2240 |
---|---|
한자 | 天理敎 |
영어음역 | Cheolligyo |
분야 | 종교/신종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강룡 |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흥 종교.
[개설]
천리교는 1836년 나카야마 미키[中山美枝]가 일본 나라현[奈良縣] 천리시(天理市)에서 창립한 신흥 종교이다. 우리나라에는 1900년에 일본인 포교사에 의하여 부산에서 포교가 시작되었다. 1903년 10월부터 서울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포교 활동을 시작하여 1917년 서울 동작동에 천리교포교관리소를 설립하였다. 일제시기 동안 천리교의 활동은 일본의 식민지 정책에 보조를 맞추었기 때문에 조선총독부의 직간접적인 지원을 받아 포교의 성과가 매우 컸다.
광복 이후 1948년 10월에는 천경수양원(天鏡修養院)으로 개칭하고 초대 원장에 이영원(李永媛)이 추대되었다. 1950년에 한국전쟁으로 대구로 남하하였다가 1952년 천리교연합회로 개칭하고 회장에 김진조(金振祚)가 취임하였다. 1953년에는 천리교연합회 정관을 제정하고 종단의 면모를 갖추어 나가다가, 1954년 총본부를 서울로 이전하고 교의회 제도를 실시하는 한편 교전(敎典)도 간행하였다.
1954년 10월에 천리교연합회를 대한천리교연합회 본원으로 개칭하고 초대 원장에 전 원장이었던 김진조가 다시 취임하였다. 이어서 교리 강습소를 개설하여 천리교의 교리를 전파하고 천리교 교전도 간행하였다. 광복 이후 거듭되는 교명 변경과 기구 개편으로 교단의 정비와 포교에 주력하였지만, 반일 감정이 겹쳐 별로 호응을 얻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한일회담이 추진되면서 신도 수가 급격히 증가하게 되었고 신도들은 각 가정마다 신붕(神棚) 즉 ‘가미다나’를 만들어 교조를 ‘어버이신님’으로 섬겼다.
1963년 제2대 교통(敎統)으로 최재한(崔宰漢)이 선임되었고 같은 해 10월에 대한천리교단으로 재단법인을 설립, 등록하였다. 1969년에는 한국의 천리교가 실질적인 자주 교단임을 주 내용으로 하는 항의서를 일본 천리교 본부에 발송하였다. 이로 인해 당시 최재한을 교통으로 하는 대한천리교와는 별도로 김기수(金杞洙)가 대한천리교 교회연합회를 결성하여 취임하였다. 1979년에 대한천리교 교회연합회가 해산되고 결국 본 교단으로 합병하게 되었다.
1986년 6월에는 교의(敎義)로 인한 대립 때문에 부산·경남 교구의 교역자들이 교단을 이탈하여 따로 대한천리교 교회연합회를 창립하여 1988년에 재단법인으로 등록하였다. 현재는 대한천리교와 대한천리교 교회연합회가 각각 전국적 포교 조직을 갖추고 활동하고 있다. 양 교단을 통틀어 920여 곳의 교당과 6,700여 명의 교역자가 있으며, 신도는 43만 명에 이르고 있다.
[현황]
현재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천리교인의 수는 극소수이다. 선산읍에 5가구 정도가 ‘마음을 바꾸면 병도 나을 수 있다’는 교리를 실천하며 포교 활동을 하고 있는 정도이다. 대한천리교 경북교구 선산포교소가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이문리 643-13번지[선상서로 110-4]에 위치하고 있고, 월례 제일은 매월 13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