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25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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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喪禮 |
영어의미역 | Funeral Rite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
집필자 | 석대권 |
[정의]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죽은 사람을 장사 지낼 때 행하는 의례.
[개설]
상례는 한 인간이 거치는 일생의 마지막 통과의례로, 죽은 당사자는 의례의 대상이 되지만 의례 자체는 자손이나 친인척에 의해 시행된다. 상례는 주검의 처리 방법, 묘지의 문제 그리고 죽음에 대한 운명관과 세계관 등이 함축적으로 표현되는 의례이기도 하다.
예서(禮書)에서는 유교식 상례를 초종(初終)·습(襲)·소렴(小殮)·대렴(大殮)·성복(成服)·조상(弔喪)·문상(聞喪)·치장(治葬)·천구(遷柩)·발인(發靷)·급묘(及墓)·반곡(反哭)·우제(虞祭)·졸곡(卒哭)·부제(祔祭)·소상(小祥)·대상(大祥)·담제(禫祭)·길제(吉祭) 등 19개 절차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에서는 염습이라 하여 습·소렴·대렴을 흡수하고, 발인이 천구를 흡수하고, 우제가 반곡을 흡수하고, 부제·담제·길제가 사라져서 대체로 11개 절차로 진행되고 있다. 이것은 사회적·경제적 조건 또는 지역이나 가문에 따라 생략되거나 간소화된 때문으로 보인다.
[상례서]
상례에 관한 의례서로는 여헌 장현광의 『상제수록(喪制手錄)』이 있다고 하나 현존하지 않는다. 그리고 상례 학설과 관련되어 왕조례를 논한 것으로 「병인상례설(丙寅喪禮設)」과 인조의 생모인 계운궁(啓運宮)의 상례 내용을 담은 「서부묘상소하비후(書祔廟上疏下批後)」 등도 있다. 이외에 최헌식(崔憲植, 1846~1907)이 지은 『가례증설(家禮增說)』, 『가례보의(家禮補疑)』, 『가례보의별집(家禮補疑別集)』 등에 상례 항목이 있으나 현존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선산김씨원당공파종친회에서 만든 『가례편람』(1999년)이나 각 문중의 족보에서 상례 절차 등을 소개하고 있으나, 『사례편람』을 소개하는 수준이다.
[전승 현황]
구미 지역에서 상례의 전승 사례는 2007년 7월 9일 해평면 해평리 성주배씨 집안의 최씨 할머니 장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인의 뜻에 따라 최씨 할머니 장례는 집에서 3일장으로 하고 꽃상여로 출상하게 되었다. 현재는 없어졌지만, 주민들의 기억 속에 ‘대구리’라는 풍속이 있었다. 출상하기 전날 밤에 상두꾼들이 미리 발을 맞추어 보기 위해 빈 상여를 매고 마당을 돌아보는 것이다. 이를 빈 상여 놀이라고도 하는데, 이때 상두꾼들이 상주에게 돈을 우려내기도 한다. 이 놀이는 집안에 연세 많은 분이 돌아가신 경우 즉 호상일 때 한다.
발인을 한 다음 12명이 매는 상여로 장지를 향하였다. 출상은 운삽(雲翣), 명정(銘旌), 영정(影幀), 영여(靈與), 상여(喪輿), 상주(喪主)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상여 소리」의 후렴구는 ‘어어화 어어화 어어화 너넘자 너어화’로 반복되며 이 뒷소리에 맞게 선소리꾼이 소리를 매겨 나갔다. 매장은 상주가 상복의 앞섶에 흙을 담아 세 번 나누어 “치토합니다!”를 외치면서 뿌림으로써 시작된다. 봉분을 만들 때의 「달개질 소리」(「달기 소리」·「덜구찧는 소리」·「덜구 소리」) 역시 「상여 소리」의 선소리꾼이 앞소리를 매겼다.
[의의와 평가]
해평리의 최씨 할머니 장례는 고인의 뜻에 따라 요즈음 유행하는 장례식장에서 하지 않고 집에서 모든 절차를 밟았지만, 빈소를 차리고 염을 하고 성복하는 절차는 예전처럼 복잡하지 않았다. 과거 상여 계원들이 하던 대구리도 없고, 24명의 상두꾼도 12명으로 줄어 꽃상여를 매고 나갔다. 이처럼 실제 상례에서는 『사례편람』의 절차를 참고하였으나 민간의 관습들이 더 많이 배어 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