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11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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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Lunar New Year's Day |
이칭/별칭 | 구정,원단,신일,원정,세초,연두,연시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류한선 |
시작 시기/일시 | 매년 음력 1월 1일 - 설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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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세시풍속|명절 |
의례 시기/일시 | 매년 음력 1월 1일 |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에서 음력 1월 1일에 지내는 명절.
[개설]
설날은 음력 1월 1일로 원단(元旦)·원일(元日)·정초(正初) 등으로도 불린다. 한 해 명절의 처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설날은 새로운 한 해를 맞아 행실을 조심하고 근신(謹愼)해야 한다고 하여 신일(愼日)이라고도 한다. 경산시 지역에서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설날에 차례와 성묘를 지내고 세배를 한다.
[연원 및 변천]
설날의 기원을 명확하게 알 수 없으나 한국에서의 설날에 대한 최초의 구체적인 기록은 7세기 중국 역사서 『수서(隨書)』와 『구당서(舊唐書)』에서 나타난다. 신라와 관련된 “매년 정월 원단에 서로 경하하며, 왕이 연희를 베풀고 여러 손님과 관원들이 모인다. 이날 일월신을 배례한다.”라는 기록은 당시 설날 관습을 엿볼 수 있다. 『수서』와 『북사(北史)』「고구려전(高句麗傳)」에는 매년 정초에 패수(浿水)에서 서로 물을 끼얹고 돌을 던지며 소리를 지르고 놀았다는 기록도 있다. 『고려사(高麗史)』에도 설날이 9대 속절(俗節)의 중 하나로 상원(上元)·상사(上巳)·한식(寒食)·단오(端午)·추석(秋夕)·중구(重九)·팔관(八關)·동지(冬至)와 같이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 시대에는 한식·단오·추석과 더불어 4대 명절 중 하나였다.
일제 강점기에 양력이 도입되면서 공식적인 명절에서 제외되기도 하였으나 해방 이후 양력 기준의 신정이 장려되었고, 1980년 명절로 공인되었으며 현재 설날은 추석과 더불어 가장 큰 명절로 여겨지고 있다.
[절차]
경산 지역에서 설날이 되면, 아침 일찍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새 옷으로 갈아 입는다. 이때 입는 옷을 ‘설빔’ 또는 ‘설치레’라고 한다. ‘설빔’으로 갈아입고 나면 가까운 집안 어른들께 세배를 올리고 차례를 지낸다. 차례는 사당이나 대청에서 세찬과 세주를 차려 지내는데, 경산 지역에서는 세찬으로 떡국이나 만둣국, 전유어와 편육, 인절미, 강정류를 올린다. 차례가 끝나면 가까운 집안사람끼리 성묘를 가거나 먼 집안 어른들이나 마을 어른들께 세배를 하러 다닌다. 이때 세배를 받는 측에서는 어른들에게 줄 술과 음식, 아이들에게 줄 과자나 돈을 준비해두었다가 주며 세배를 한 뒤에 서로 덕담을 주고 받는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설날에는 복조리를 걸어 구복하는 풍습이 있다. 복조리는 설날 조리를 일컫는 말로 설날 이른 새벽에 조리를 사면 한 해 동안 좋다고 믿어진다. 일반적으로 농촌에서는 직접 복조리를 장만하여 걸어두지만 도회지에서는 복조리를 사서 걸어두는데, 복조리를 일찍 살수록 좋다고 믿기에 서로 먼저 사려고 한다. 한편 복조리에 비누나 성냥을 넣어 팔기도 하는데, 비누의 거품이나 성냥불처럼 살림이 일어나라는 뜻이라고 한다. 또한 설날에는 윷놀이, 널뛰기, 연날리기, 농악 등 다양한 놀이를 한다. 그중 농악은 지신밟기와 아울러 행해지는데, 정초부터 시작하여 정월대보름까지 계속되었다.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 협석리에서는 설날 정오쯤 ‘쇠’를 치며 각 집마다 들어가서 그 집의 안택을 빌어주면 집주인은 돈이나 음식을 대접하여 보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