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
-
조선시대 가사 문학의 대가인 송강(松江) 정철(鄭澈)[1536~1593]은 한양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계함(季涵), 호는 송강(松江), 시호는 문청(文淸)이다. 가사 문학의 대가로 국문학 사상 중요한 「관동별곡(關東別曲)」, 「사미인곡(思美人曲)」, 「속미인곡(續美人曲)」, 「성산별곡(星山別曲)」 등의 가사 작품과 시조를 남겼다. 문집으로는 『송강집(松江集)』,...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재화·용역의 생산·분배·소비와 관련되는 활동 전반과 영역. 경제산업은 경제와 산업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경제는 인간이 공동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재화나 용역을 생산, 분배, 소비하는 활동 전반을 의미한다. 산업은 이러한 활동 중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 전반이나 활동 영역으로서 대체로 농업, 공업, 수산업, 임업, 광업 등 유형...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에 있는 수령 324년의 보호수. 봉죽리 느티나무는 높이 22m, 가슴높이 둘레 4.8m, 뿌리 부분 둘레 2m, 나무갓 너비 27m이다. 봉죽리 느티나무는 1982년 11월 11일 노거수로서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관리면적은 5㎡이고, 박명의가 관리를 하고 있다. 나무 아래는 흙으로 되어 있고, 나무에 대해 설명한 표지판...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 어은마을에 있는 연일정씨 세거지. 문백면은 조선 말기 문방면(文方面) 지역으로 22개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백락면(白洛面)의 15개리, 덕문면(德文面)의 차상리, 청안군 서면의 소백암리를 병합하고 문방의 ‘문’자와 백락의 ‘백’자를 따서 문백면이라 하였다. 봉죽리는 백락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어...
-
충청북도 진천군에 세거해 온 유력 성씨. 진천군의 성씨 내력을 알 수 있는 최초의 자료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이다. 진천현의 토성(土姓)으로 한(韓)·임(林)·송(宋)·심(沈)·유(庾)·미(彌)·고(高)·양(梁)·하(河)·장(張) 등 10개 성씨가 있다. 진천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볼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성씨조에도 같...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백준(伯峻), 호는 독송(獨松). 고려의 개국 공신인 신숭겸(申崇謙)의 19세손이다. 아버지는 신화국(申華國)이며, 4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첫째 동생은 신급이고, 둘째 동생은 임진왜란 때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결사항전하다 전사한 신립(申砬) 장군이며, 셋째 동생은 임진강 전투에서 추격해 오는 적을 막다 전사한 신갈(申硈)이다...
-
지백호를 시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 성씨. 연일정씨(延日鄭氏)는 영일정씨(迎日鄭氏) 혹은 오천정씨(烏川鄭氏)라고도 한다. 영일은 경상북도 포항시의 동해안 일대를 일컫는 지명으로, 고려 초에는 연일이라 불렸다. 지금은 각각 포항시 연일읍과 오천읍이며, 본관을 각각 연일·영일·오천으로 쓰고 있다. 2000년 현재 연일정씨 21만 6,510명, 영일정씨 1만...
-
조선 후기 채지홍이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 어은동에 있는 송강 정철의 무덤 앞에서 읊은 칠언율시의 한시. 채지홍(蔡之洪)[1683~1741]이 송강 정철(鄭澈)[1535~1593]의 무덤 앞에서 지은 「전산송추(前山松楸)」는 어은동의 경치를 읊은 어은팔경시(魚隱八景詩)의 하나이다. 송강 정철 선생의 외로운 무덤 높기도 한데[相國孤憤四尺崇] 황량한 언덕의...
-
조선 후기의 유학자. 본관은 연일(延日).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7세손이다. 정덕환(鄭德煥)은 삼환재(三患齋) 채지홍(蔡之洪)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행동에 무게가 있고 학문을 깊이 연구하였다. 그는 일평생 학문을 깊이 연구하였으나, 현재 남아 있는 자료는 부족한 편이다. 그의 행적에 대해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와 『상산지(常山誌)』, 『진천군지』 등에 기...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연일(延日). 호는 시습재(時習齋).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6세손으로, 아들 정창환(鄭昌煥) 역시 효자이다. 정도(鄭棹)는 화재가 나서 불이 사당에까지 번지자 천신에게 기도를 올려 불이 꺼지게 하였고, 선대를 모시는 데 정성을 다하였다. 부모가 병이 나서 꿩고기가 생각난다고 하여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홀연히 꿩이 떨어지는 등 여...
-
조선 후기 송시열이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로 송강 정철의 묘를 이장한 후에 지은 오언율시의 한시.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송시열(宋時烈)[1607~1689]의 본관은 은진이고 아명은 성뢰(聖賚),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庵)·우재(尤齋)·화양동주(華陽洞主)이다. 17세기 중엽 이후 붕당정치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서인 노론의 영수이자 사상적 지주로서 활동하였다....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에 소장된 정철이 명나라 황후에게 받은 술잔.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당시 명(明)나라의 원병과 함께 그 이듬해인 1593년 4월 18일 서울을 수복하게 되자 조정에서는 정철(鄭澈)을 명나라에 사은사(謝恩使)로 보내었다. 정철이 소임을 마치고 돌아올 때 명나라 황제로부터 용연(龍硯)을, 황후로부터 옥배(玉盃)을 받았다. 현재 은배(銀...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에 소장된 정철이 선조에게 받은 술잔. 조선 중기 선조(宣祖)가 즉위했을 무렵 조정은 동인(東人)·서인(西人)으로 갈라져 치열하게 대립하였다. 이에 정철(鄭澈)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선조에게 정철이 술을 너무 많이 마시고 주벽(酒癖)이 심하여 일을 그르칠 우려가 있다고 모함하자, 선조가 정철에게 복숭아 모양으로 된 은배(銀盃)를 하사하여 하루에...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이자 교육가. 본관은 연일(延日).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후손으로, 죽계사 창건기를 쓰고 『상산지(常山誌)』를 서술한 송강의 8세손인 정재경(鄭在褧)의 고손이다. 정운하(鄭雲夏)는 고종 대에 지금의 진천군 백곡면 사송리에서 태어났다. 경사(經史) 연구에 힘써 박학 통달하였다. 1910년 일제의 강점이 이루어지자 사설 서숙을 세워...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이자 학자.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공실(公實), 호는 신와(愼窩).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8세손으로 아버지는 누항(陋巷) 정용환(鄭龍煥)이며, 조암(照庵) 정해필(鄭海弼)과 『상산지(常山誌)』를 쓴 정우섭(鄭友燮)이 그의 손자이다. 정재경(鄭在褧)[1780~?]의 아버지가 그림 속 용이 꿈틀거리며 하늘로 올라가는 태몽을 꾸었...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연일(延日). 호는 청천당(聽天堂).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8세손이다. 정재옥(鄭在玉)은 위기지학(爲己之學)의 자세로 나이가 들수록 더욱 독실하게 학문에 전념하였다. 그래서 정산(貞山) 김정묵(金正黙)은 “백수(白首)로 경서를 깊이 탐구하였으며, 집에 깊이 파묻혀 시정(市井)에 나오지 않았다”라고 칭찬하였다. 늙어서도...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연일(延日). 호는 잉수재(仍樹齋).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8세손이다. 정재응(鄭在應)은 일찍부터 문경공(文敬公) 송환기(宋煥箕)의 제자로 들어가 유학을 깊이 공부하였다. 만년에는 쌍계산(雙溪山)에 들어가서 서재를 짓고 ‘잉수재(仍樹齋)’라는 편액을 걸어 놓았다. 그 때문에 잉수재라는 호가 붙었는데, 그곳에서 오로지...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이자 학자. 본관은 연일(延日). 호는 소은(素隱).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8세손이다. 정재형(鄭在衡)은 오로지 경학(經學)을 숭상하였으며, 천성적으로 타고난 성품이 침착하고 효행이 지극하였다는 기록이 『진천향토지』, 『진천군지』 등에 전해지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학문에 더욱 힘써 여러 번 향공(鄕貢)에 천거되었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연일(延日).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7세손으로 아버지는 효자 정도(鄭棹)이다. 정창환(鄭昌煥)이 소년 시절 어느 날 마루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데 호랑이가 마당으로 들어오자 이불로 어머니를 가리면서, “우리 어머니를 해치면 안 된다.”고 큰소리로 꾸짖으니 호랑이도 머리를 끄덕이고 물러갔다고 한다. 어머니가 병이 들어...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이자 학자. 본관은 연일(延日). 호는 산행와(山行窩).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후손이다. 정회(鄭淮)[1805~?]는 일찍이 부친상을 당하고 어머니를 섬기기에 효성을 다하였다. 아침저녁으로 문안을 드리고 방안을 따뜻하게 하거나 서늘하게 하는 일까지 친히 보살폈다. 어머니의 비위에 맞는 음식을 장만하려고 애를 썼고, 아침저녁으로 드...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정철의 위패를 모신 사당. 정철(鄭澈)[1536~1593]의 자는 계함(季涵), 호는 송강(松江)이다.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문신이자 시인이다. 당대 가사문학의 대가로서 국문학사상 중요한 「관동별곡(關東別曲)」, 「사미인곡(思美人曲)」 같은 가사 작품을 남겼다. 진천읍에서 국도 17호선을 따라 청주...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정철의 묘소. 정철(鄭澈)[1536~1593]의 자는 계함(季涵), 호는 송강(松江)이다.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문신이자 시인이다. 당대 가사문학의 대가로서 국문학사상 중요한 「관동별곡(關東別曲)」, 「사미인곡(思美人曲)」 같은 가사 작품을 남겼다. 진천읍에서 국도 17호선을 따라 청주 방향으로 가...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정철의 공적비. 송강(松江) 정철(鄭澈)[1536~1593]은 조선의 문인이자 정치가이며, 가사문학의 대가이다. 진천 정철 신도비는 정철의 공적을 적은 비석이다. 진천 정철 신도비는 정철의 사후 그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본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신원동[옛 지명 고양군 원당면 신원리]...
-
충청북도 진천군에 세거하고 있는 유력 성씨들의 촌락. 집성촌은 동성동본(同姓同本)의 성씨 집단이 대대로 모여 사는 촌락을 의미한다. 집성촌은 삼국시대 또는 고려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조선 초기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였고 특히 17세기 이후 집중적으로 형성되었다. 17세기 이후 적장자 중심으로의 상속제도 변화, 주자가례(朱子家禮)의 보급, 예학(禮學)의 발달...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에서 명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신성한 우물 이야기. 「함샘 전설」은 송강(松江) 정철(鄭澈)[1536~1593]의 묘소가 있는 봉죽리 은골의 어느 명산에 있는 함을 닮은 우물에 관련된 금기담이다. 함샘 주위에서 살생을 하면 천벌을 면하지 못하며, 살생을 해서 금기를 어긴 ‘쌍지팡’이라는 남자무당은 벌을 받아 죽었다는 이야기이다...
-
진천은 예로부터 들이 넓고 수리 시설이 잘 갖추어져 농업이 발달하고 산물이 풍부하여 ‘생거진천(生居鎭川)’이라 불리어 왔다. 이에 따라 역사 깊은 다양한 향토 문화가 전해져 오고 있다. 생거진천의 향토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 문화·예술을 통해 군민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알차게 하며, 국내외 관광객에게 진천군의 향토 문화를 널리 알리고 함께 참여하도록 함으로써 밝고 건전...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에 있는 산. 환희산(歡喜山)[402m]은 한자 뜻대로라면 ‘기쁨을 안겨주는 산’이라는 뜻이지만, 한편으로 하늘산이 한으산을 거쳐 환희산으로 변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지역에 따라 지명의 선행 요소 ‘환희’가 ‘하느〈하늘’ 또는 ‘하누’와 대응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따라서 하늘산은 ‘높은 산’이라는 뜻으로 볼 수 있으며, 실제로 환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