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배기
-
축관이 축을 읽고 함께 절을 한 다음에는 가장 중요한 소지를 올릴 차례가 된다. 소지는 마을의 대동소지부터 먼저 올리고 이장소지, 각반의 반원의 소지를 반장이 올린다. 이것을 시작으로 제관들과 여러 마을의 대표들이 각 가정의 소망을 이야기 하며 소지를 태워 올리는데, 이때는 크게 소리내어 소원을 빈다. 마을사람들의 다양한 소원을 담아 올리는 소지는 완전하게 잘 타올라야 소원 성취가...
-
일제의 압박 속에서도 꿋꿋하게 전통을 이어갔던 주곡리 장승은 해방 후에 급속도로 산업화되는 사회가 전개되면서 새로운 위기를 맞았다. 1970년대에 접어들자 우리나라는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었고 전근대적 미신 타파, 부락제의 경비 절감으로 인해 수많은 마을 장승들은 급격히 소멸되어 갔다. 이러한 세태 속에서 주곡리 장승 또한 온전히 그 모습을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주곡리에서...
-
오랜 세월동안 꿋꿋하게 전통을 이어온 주곡리 장승제는 과거 존폐와 관련하여 두 번의 큰 위기를 맞았었다고 한다. 바로 일제강점기 말기인 1940년대와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의 일이었다. 일제강점기에도 주곡리에서는 매년 6기의 목장승(4기)과 짐대(2기)를 깎아 세웠으나, 일제는 삼림법을 엄하게 적용하여 장승목으로 쓸 나무를 벌목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매년 새 나무로 장...
-
주곡리는 계룡산 줄기에 기대어 주변의 산이 마치 삼태기 같은 모습으로 마을을 포근히 감싸 안고 있다. 마을 입구 방죽에는 소나무와 느티나무 숲이 살짝 마을 안을 가려주어 안온한 분위기를 더해 준다. 마을 앞으로는 풍요로운 농토가 펼쳐있고, 갑사 계곡에서 흘러나온 노성천이 유유히 흐른다. 오랜 전통을 간직한 주곡리는 그 전통과 역사성 덕분에 논산의 역사마을로 선정되기도 하...
-
주곡리 장승제는 논산시 향토유적 제2호로 선정된 유래 깊은 전통행사이다. 그러나 장승제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근거는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오랫동안 마을에서 두 가지의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그 하나는 조선 중종 연간에 청주양씨 첨정공 양춘건(楊春健)이 인근 신도내에서 숯골로 이사한 후, 동구 밖에 장승을 만들어 놓고 나라의 안정과 마을수호를 위해 제를 지내...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마을에 신당(神堂)이 있었던 데서 신당리(神堂里)라는 마을 이름이 유래하였다. 노성군(魯城郡) 득윤면(得尹面)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대당리(大堂里), 소당리(小堂里), 사동리(沙洞里)의 각 일부와 장구면(長久面) 덕포리(德浦里)를 병합하여 신당리라 하고 논산군 광석면에 편입하였다. 1927년 9월 20일 광석면...
-
장승배기와 우물을 청소하고 금줄을 치는 동안, 톱을 든 마을사람 양성직 씨와 몇 해 전부터 장승 깎는 일을 도와주고 있는 문화재 조각 기능인 김태길 씨를 필두로 마을 청년들 몇몇이 장승으로 쓰일 나무를 베러 간다. 원래는 나무를 고를 때에도 소나 말, 닭 또는 개 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까지 깊숙이 찾아 들어가 적당한 곳에 다다르면 술 한 잔을 붓고 엄숙하게 기도를...
-
장승제를 치르기 열흘 전, 마을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풍물을 치고 집집마다 다니며 풍장굿을 한다. 이때가 되면 마을 사람들은 모두 문을 열어 환영한다. 풍장굿을 하러 다니는 사람들은 장승제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걸립을 하는 것인데, 일종의 공동경비를 마련하기 위한 모금활동인 것이다. 요즘에는 객지로 나간 사람들이나 농사를 짓지 않고 사업을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이들도 이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