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15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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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嚴昌燮 |
영어음역 | Eom Changseop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이시경 |
[정의]
일제강점기 논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활동사항]
엄창섭은 1892년 12월 12일 전라북도 익산군[현 익산시] 웅포면 대붕암리 47번지에서 출생하였다. 충청남도 부여군 세도면 청포리 사립 창영학교(昌永學校) 교사로 재직 중이던 1919년 전라북도 군산 영명학교(永明學校) 학생 강금옥의 권유를 받고 강경에서 이른바 ‘강경 옥녀봉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심한다.
강경 옥녀봉 만세시위의 준비와 진행 과정은 다음과 같았다. 3월 6~7일경 엄창섭 등은 10일의 강경장날 독립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정하고, 8일 강경읍에서 조선종이 60매, 물감 30전(錢) 어치를 구입하여 고상준(高相俊), 추병갑(秋炳甲) 등과 함께 창영학교에서 태극기를 그리기 시작했고, 9일부터 10일 아침까지는 김종갑(金鍾甲), 추성배(秋聖培) 등이 협력하여 2백여 개의 태극기를 완성했다. 10일 아침 제작한 태극기를 서삼종(徐三鍾)이 가마니 속에 넣어 지게로 집합장소인 강경의 옥녀봉으로 운반하였다.
오후 3시가 되자 엄창섭 등은 군중 500여 명과 함께 옥녀봉에서 만세시위를 시작하였으며, 이후 시위는 강경 웃시장[上市場]으로 확산되어 그곳 군중들도 합세하였다. 엄창섭은 당시 시위대에 맞서 출동한 재향군인(在鄕軍人)과 소방조(消防組) 등에게 검거되어 4월 1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만세운동 주동자로 징역 2년형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1973년 12월 5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80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고, 1990년에는 대한민국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