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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0013
분야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경기도 포천시
집필자 여성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481년 - 성현, 채기지와 함께 포천현 안기역에 유숙
특기 사항 시기/일시 1688년 - 승려 여환, 영평 백성들과 함께 반정부 시위를 꾀함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09년 - 의병장 연기우, 회양, 통천, 영평, 연천에서 활동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35년 07월 16일 - 신의주 삼무 중학교 학생 6명이 금강산 왕복 마라톤을 실시하면서 포천을 경유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39년 5월 - 『동아 일보』 포천 지국에서 금강산 탐방단 모집
특기 사항 시기/일시 1776년 8월 - 이헌락, 포천 만원루를 돌아보고 영평을 경유

[개설]

금강산을 가는 길목으로서 경기도 포천시의 자연 지리적 조건과 지정학적 위치, 역사 문화적 특징 등을 살펴보고 창조적으로 활용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미래 포천 관광 자원 개발에 대해 생각해 본다.

[포천의 역사 문화적 특징]

포천은 동서남북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영평천포천천이 T자형을 이루며 흐르고 있다. 면적은 서울의 1.4배 크기이다. 우리나라의 중앙에 위치한 관계로 동서·남북 교류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하였다. 포천 지역의 교류사는 선사 시대부터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에서 출토되는 신석기 시대의 토기가 대동강, 한강 유역의 신석기 문화와 유사했음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삼국 시대에는 삼국의 각축장으로서 고구려, 백제, 신라의 지배를 받았고, 이들 삼국의 문화가 출토 유적·유물에서 확인되고 있다. 고려 시대에는 개경과 남경을 잇는 교통의 요지였고, 조선 시대에도 북으로 강원도를 연결하는 요충지였다. 마치 V자형으로 동서로 갈라지는 지정학적 위치에 있었고, 근대 이후에도 그 길은 유효하였다. 일제 강점기 신의주 중학교 마라톤부가 금강산을 갈 때 포천을 거쳤고, 현대에 들어 남북이 분단되었을 때, 북한과 남한의 물산 교류도 이곳에서 진행되었다.

이러한 지리적 조건하에서 포천 지역은 다양한 문화 수용과 함께 축적된 정보를 다른 지역으로 전파시키는 역할도 수행하였다. 반면에 외적의 침입로로도 작용해 오랜 기간 동안 수난을 겪기도 하였다. 특히 광복 후 한반도에 3·8선이 그어지면서 한 마을과 같은 집안이 남북으로 갈리게 되어 분단의 아픔을 직접 체험한 지역 중 하나였다. 6·25 전쟁으로 철원 지역까지 수복했지만 아직까지 분단의 상처를 안고 있다.

남북 분단은 선사 시대부터 교류의 중심에 서있던 포천의 정체성을 와해시키고, 포천 지역의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향후 통일 한국의 지향은 포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길이 된다. 당시 포천 지역민들의 분단 경험은 포천 지역의 발전과 함께 통일 한국으로 가는 길목의 튼튼한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자연 경관과 관광]

포천은 산악 지대의 발달로 인해 평야와 들판은 적으나 한탄강·영평천 등의 지천을 끼고 계곡형 분지가 발달해 백운 계곡, 지장산 계곡, 깊이울 계곡 등 수려한 자연 경관을 남겼다. 수려한 자연 경관은 포천의 중요한 관광 자원이다. 영평 8경한탄강 8경은 물론이고, 계곡 및 온천 또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포천의 주요 축제인 산정 호수 명성산 억새꽃 축제, 백운 계곡 동장군 축제, 운악산 단풍 축제 등도 자연 경관에 기반을 두고 있다. 특히 구석기 유적지와 주상 절리, 화적연, 비둘기낭 등의 한탄강 유역은 유네스코 세계 복합 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포천시는 한탄강포천 아트 밸리, 국내 최대 허브 아일랜드, 산정 호수, 승진 훈련장, 천보산 자연 휴양림, 한탄강 돔 하우스, 유네스코에 등재된 포천 국립 수목원 등 천혜의 관광 자원을 적극 활용하기 위해 산정 호수 관광권, 운악산 관광권, 신북 관광권, 일동 관광권, 포천 국립 수목원 관광권 등 5권역으로 나누어 접근하고 있다. 그러나 도보에 의존하거나 말 등의 교통수단을 이용했던 전통 시대와 달리 지금은 자동차를 주로 이용하는데다, 서울과 가까이 있어 하루를 유숙하는 곳으로는 적합하지가 않다. 따라서 관광 사업을 통한 경제적 효과 창출에 어려움이 있어 지역 경제에서 그다지 큰 부분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향후 청정 자연과 도시 근교형 농촌 관광을 활성화한 당일 및 체류형 웰빙 체험 상품, 지역 축제와 연계한 농촌 체험 관광 상품 등과 같은 테마 관광 상품을 개발해 타 지역과 차별화되고, 관광객의 다양한 관광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관광 상품을 제공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금강산으로 가는 길목]

고려 시대 때 외국인들 중에 “고려에 태어나 금강산을 한번 보는 것이 소원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금강산은 유명세를 탔다. 고려 후기 원나라 간섭기에는 원나라 황실에서 관심을 갖고 중창 불사에 많은 자금을 제공하기도 했으며, 중국 사신들의 금강산 왕래로 인해 국고가 고갈될 정도로 금강산은 국내인들 뿐만 아니라 중국인들에게도 유명한 관광 코스였다.

조선 시대의 여러 문헌을 종합해 보면, 예로부터 포천은 금강산 유람의 경유지로서 금강산 관광의 역사적 전통성을 간직한 곳이다. 성현(成俔)은 1481년 채기지(蔡耆之)와 함께 금강산에 가면서 포천현 북쪽 4리 지점인 안기역(安奇驛)에 유숙하였다. 조선 후기의 학자 이헌락(李憲洛)[1718~1791]은 금강산 기행문인 『동행록(東行錄)』에서 1776년 8월 19일 서울 혜화문을 출발하여 포천 만원루(晩院樓)를 돌아보고 영평과 김화를 경유했음을 밝히고 있다. 저자 미상의 『동유일록(東遊日錄)』에도 서울에서 포천, 영평, 강원도 통천을 지나는 금강산 유람 길을 적고 있다.

포천과 금강산의 밀접성은 불교에서도 찾아진다. 먼저 17세기 말 호남 지방에서 불교를 크게 일으킨 설제(雪霽)[1632~1704]의 다음과 같은 운수 행각을 통해 알 수 있다. 설제는 창화(昌化)[경기도 양주의 옛 지명] 출신으로 구족계를 받은 후 관인면 보개산의 설청(說淸)에게서 수학하고, 이동면 백운사의 풍담(楓潭)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그 뒤 금강산 정양사(正陽寺)에서 불교를 선양하였다. 또한 1688년(숙종 14) 강원도 통천 출신의 승려 여환(呂還)이 김화와 양주 지역을 왕래하면서 영평 백성들과 함께 미륵 혁명 운동을 모의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구한말의 의병장 연기우(延起羽)가 1909년 금강산 부근을 근거로 하여 회양, 통천, 영평, 연천에서 활동했다는 사실과, 일제 강점기인 1935년 7월 16일 신의주 삼무(三務) 중학교 학생 6명이 금강산 왕복 마라톤을 실시하면서 포천을 경유했던 사례에서도 포천과 금강산의 밀접성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조선 시대 포천 출신인 양사언(楊士彦)과 말년 이곳에 은거한 김창흡(金昌翕) 등도 금강산을 유람했고, 1939년 5월 『동아 일보』 포천 지국에서 금강산 탐방단 모집도 추진하였다. 광복 후 포천은 남북 교류의 창구가 되었으며, 6·25 전쟁 발발 이전에는 개성 지역과 함께 남북한 간의 국지전이 활발했던 곳 중 하나였다.

[분단을 경험했던 포천의 미래]

포천 지역은 역사적으로 남과 북의 경계에 위치하여 문화의 단절을 경험하였다. 백제와 고구려, 신라와 발해의 국경 지역이었고 광복 후 3·8선은 포천을 남북으로 갈라놓았다. 서울과 지리적으로 인접하면서도 군사 보호 구역 지정에 따른 각종 규제로 인해 정부의 수도권 개발 전략에서 대체로 소외되었다. 남북의 긴장 상태가 다소 완화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첨예한 군사적 대립이 지속되는 상황이므로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따라서 포천 지역은 수도 서울에 근접하여 산업 활동과 안보 의식을 공고히 할 수 있는 최적의 학습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3·8선 으로 나누어진 분단의 경험은 향후 포천의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큰 강점으로 이용해야 한다. 분단의 아픔을 잘 알고 있는 포천은 향후 통일 한국으로 나아가는 데 능동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 주도적인 입지를 구축하기 위한 여러 가지 대안이 추지되고 있다. 포천의 특성을 살린 인근 시군과의 연계를 통한 승진 훈련장 안보 관광은 2012년을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한 원년으로 삼아 추진해 나가고 있는 주요 관광 상품의 하나이다. 북한의 개성 지역 관광 상품 중에 포천을 경유하는 코스 개발도 진행 중이다.

최근 남북 관계의 경색으로 주춤하고 있으나, 남북 교류의 물꼬를 열어주었던 금강산 관광은 향후 통일 한국으로 가는 길목에서 포천이 반드시 주목해서 개발해야 중요한 관광 상품이다. 역사적 전통을 살려 포천을 경유하는 코스의 금강산 관광 상품을 만드는 것이다. 물론 철원, 연천, 양주 등 인근 지역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일제 강점기에 포천이 중심이 되어 이들 지역과 가평을 포함한 연합 체육 대회를 실시한 경험을 다시 재현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다양한 노력과 시도는 포천의 역사 문화적 정체성을 찾아가는 길이며, 미래의 포천이 담당해야 할 중요한 민족적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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