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07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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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聲大墓-墓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덕원 |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 1622년 - 김성대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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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695년 - 김성대 사망 |
이장 시기/일시 | 1715년 -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로 김성대 묘 이장 |
조성 시기/일시 | 1727년 - 김성대 묘비 건립 |
현 소재지 | 김성대 묘 및 묘비 소재지 -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 |
성격 | 묘|묘비 |
양식 | 원형 봉분 |
관련 인물 | 김성대(金聲大)[1622~1695]|수원 백씨(水原 白氏) |
봉분 크기/묘역 면적 | 봉분 높이 200㎝|폭 480㎝ |
문화재 지정 번호 | 포천시 향토 유적 제34호 |
[정의]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김성대의 묘와 묘비.
[개설]
김성대(金聲大)[1622~1695]의 자는 이원(而遠)이고, 호는 율강(栗崗)·촌로(村老)이며, 본관은 안산(安山)이다. 고려 시대에 좌복야(左僕射)를 지낸 김긍필(金肯弼)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좌승지(左承旨)로 증직된 김찬(金讚)이고, 어머니는 김정삼(金鼎三)의 딸로 안동 김씨(安東金氏)이다. 부인은 부사(府使) 백대진(白大璡)의 딸로 수원 백씨(水原 白氏)인데, 정부인(貞夫人)으로 추봉되었다. 아들은 김석명(金錫命)·김석범(金錫範)·김석규(金錫圭)·김석달(金錫達)·김석보(金錫保)이고, 딸은 사인(士人) 이제안(李齊顔)에게 출가하였다. 넷째 아들 김석달은 후에 김석구(金錫龜)로 개명하였다. 경기도 장단(長湍)에서 태어나서 포천시 이동면 제비울[燕谷]에서 살았다.
[위치]
포천 방향에서 국도 47호선을 타고 가다가 이동면 이동 삼거리에서 지방도 372호선로 백운 계곡 방향으로 가면 오른쪽으로 GS 칼텍스 주유소가 나온다. 여기에서 500m 정도 가면 오른쪽으로 ‘안산 김씨 묘문(安山金氏墓門)’이라고 새긴 비석이 있고, 여기서 100m 정도 더 가면 오른쪽으로 장생 고려 인삼 조합과 이동 백운 주조라는 간판이 세워진 작은 길이 있다. 이곳으로 100m 정도 들어가면 이동 백운 주조가 나오고, 여기서 비포장 산길로 500m 정도 더 가면 작은 삼거리가 나오는데, 왼쪽으로 약 100m 지점 작은 언덕에 김성대의 묘와 묘비가 위치하고 있다. 김성대의 묘와 묘비 아래에 아들 김석명의 묘와 묘비가 있다.
[변천]
비문이 이루어진 5년 후인 1715년(숙종 41)에 백운산 아래 구정(九政)의 기방(己方)을 뒤로 한 언덕에 이장을 하였고, 13년 후인 1727년(영조 3)에 비로소 비석을 갖추었다. 현달한 모든 자손들과 어리거나 성인이 된 사람 중에서 미처 기록하지 못한 사람을 추가로 기록하였다.
[형태]
묘는 부인 수원 백씨(水原 白氏)와 단분 합장이며, 봉분 뒤에는 약 3m 높이 2단의 담이 둘러져 있다. 봉분은 원형이며, 높이 200㎝, 폭 480㎝의 규모이다. 묘역은 크게 3단으로 나뉘었는데 상계에는 봉분·혼유석이 있고, 중계에는 혼유석·상석·문인석·망주석을 갖추었고, 약 2m 아래 하계에 묘비가 세워져 있다.
묘비는 비좌와 비신, 옥개를 갖추고 있다. 비좌는 42×101×57㎝이고, 비신은 76×180×30㎝이며 전면에 총탄 자국이 있다. 옥개는 팔작지붕 형식인데, 140×91×50㎝이고 혼유석은 82×37×30㎝의 규모이다. 상석은 146×84×34㎝이고, 높이 21㎝의 북석 2기로 전면을 받치고 있으며, 북석의 후면은 높이 약 30㎝ 규모의 단이 있어 상석의 뒷부분을 자연스럽게 받치고 있다. 향로석은 28×22×35㎝의 규모이다. 문인석은 39×128×32㎝이고, 망주석은 42×152㎝이다.
[금석문]
묘비는 2면 비로 자경(字徑)은 전액 8×7㎝이고, 본문은 3.5×3㎝이다. 전액은 비문 앞면에 세로로 7행이 새겨져 있는데, 오른쪽부터 ‘유명 조선 국 증 가선대부 호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부(有明朝鮮 國 贈嘉 善大夫戶 曹參判兼同知義禁 府事五衛都摠府副)’가 기록되어 있다. 뒷면에도 세로로 7행이 새겨져 있는데, ‘총관 행통덕랑 제릉 참봉 김공 성대 묘 배 증 정부인 수원 백씨 부좌(摠管行 通德郞 齊陵 參奉 金公 聲大 墓 配 贈貞夫人 水原白氏 祔左)’가 기록되어 있다. 묘비는 숭정 기원 후 재 정미(崇禎紀元後再丁未)인 1727년(영조 3)에 세웠는데, 비문은 좌의정(左議政) 김창집(金昌集)이 짓고, 글씨는 넷째 아들인 김석달, 즉 김석구가 썼다.
[의의와 평가]
1831년(순조 31) 안산 김씨 문중에서는 학덕이 높았던 김성대를 추모하기 위하여 사당을 세우고 그의 동생들과 함께 배향할 것을 신청하였다. 그리하여 1833년 포천시 이동면 연곡리에 동음사(洞陰祠)를 건립하였다. 이후 김성대의 동생인 반성제(反省齊) 김성발(金聲發), 동구(東邱) 김성옥(金聲玉)과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의 문인인 중암(重庵) 김평묵(金平黙)을 추가로 배향하여 봄가을로 제향하고 있다.
한편 동음사는 1907년 일본인들에 의해 거의 소실되어 1914년 보수하였다. 그러나 1950년 6·25 전쟁으로 전소되어 1962년에 중건하였고, 1988년에 다시 중건하였다. 1986년 포천시 향토 유적 제34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는데, 사당 내에는 김성대와 김평묵의 영정(影幀)이 함께 보관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