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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유격대 창설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0869
한자 -遊擊隊創設址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노곡리 산146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진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50년 11월 30일 - 독수리 유격대 창설
소재지 독수리 유격대 창설지 소재지 -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노곡리 산146지도보기
성격 유적지

[정의]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노곡리에 있는 1950년 6·25 전쟁 당시 노곡리 일대 주민들이 독수리 유격대를 창설한 곳.

[개설]

독수리 유격대 창설지는 1950년 11월 포천 노곡리 일대 주민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독수리 유격대가 만들어진 곳이다. 독수리 유격대는 1950년 6월 북한군의 남침 직후 포천 노곡리 일대에서 당시 대한 청년단 간부인 최종성과 최종철 형제를 주축으로 모두 63명의 포천 지역 청년들이 참여하여 1950년 11월 30일 창설되었다. 이들은 장총, M1 소총 등으로 무장하여 수복 후 패잔병 소탕과 치안 유지에 노력하였다.

중공군이 개입한 후에 이들은 포천시 일동면 화대리로 철수해 주둔하고 있던 제2사단 17연대 1대대 유격대로 편입되었다. 이때부터 그들은 소총, 실탄, 수류탄, 배낭, 피복 등을 지급 받아 작전에 참가하였다. 당시 유격대원들은 장비나 보급품 등에서 현역과 차이 나는 대우를 받았는데도 적극적인 활동을 수행하였다. 이들은 이후 제32연대 3대대의 유격대로 편입되어 후방 지역에서 좌익 빨치산 토벌 작전에 참가하였다.

[변천]

1950년 11월 포천군 신읍에서 나라와 고향을 지키려는 포천 지역 젊은이 63명이 결성한 독수리 유격대는 국군 2사단 17연대와 합류하여 각 지역 전선에서의 수색 정찰 활동 등 활발한 군사 활동을 벌였다. 이들의 활동을 높이 평가한 제17연대 김영필 대위가 당시 제2사단 32연대 3대대장으로 진급하면서 이들 유격대를 데려 가려고 이동을 지시하였다. 그러자 독수리 유격대의 집단 이동을 뒤늦게 알게 된 제17연대 1대대장 유모 소령이 헌병을 시켜 이들을 원대 복귀시키고 이들을 집단 총살하려고 하였다.

결국 최종성 유격대장을 비롯한 간부 5명이 억울하게 총살되었고, 이들은 강제 추방되는 비운을 맞게 되었다. 그럼에도 나머지 대원들은 김익수를 새 대장으로 유격대를 새로 조직하여 충청북도에 주둔 중이던 제32연대에 편입하여 경상북도 의성·청송·안동·예천·풍기와 충청북도 제천·단양 지역에서 인민군 제10사단과 공비들을 토벌하였고, 김화 지구 전투에도 참전하는 등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들은 많은 공을 세웠으나 8명이 전사하고 5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대장 김익수는 중공군의 포로가 되었다가 휴전 후 귀향하는 등의 아픔을 겪기도 하였다.

[위치]

독수리 유격대 창설지포천시 이동면 노곡리 산146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현황]

독수리 유격대 창설지는 전쟁 당시의 원형이 변형되었으나, 1991년 그 자리에 독수리 유격대 기념 사업회에서 ‘독수리 유격대 전적비’를 건립하여 당시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의의와 평가]

독수리 유격대는 민간인 신분으로 스스로 조직한 부대이었다. 위기에 처한 나라와 고장,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불의의 전쟁에 분노하여 참전하였고 전과 또한 컸다. 그러나 이들은 신분이나 전공·상훈에 초연하였으며, 국가도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당시 유격대원들과 유족을 중심으로 독수리 유격대 기념 사업회가 만들어졌고 1989년 1월 청와대에 이들의 신원과 공로를 진정한 끝에 조사가 이루어지면서 업적을 인정받게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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