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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구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1207
한자 徐錫九
이칭/별칭 한호재(漢湖齋)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기도 포천시 군내면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이계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7년 - 서석구 출생
몰년 시기/일시 1982년 - 서석구 사망
출생지 서석구 출생지 - 경기도 포천시 군내면
성격 한학자
성별

[정의]

경기도 포천 출신의 한학자.

[활동 사항]

서석구(徐錫九)[1897~1982]의 호는 한호재(漢湖齋)이다. 지금의 경기도 포천시 군내면 울뫼 출신으로 이청열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이청열경기도 포천군 군내면 명산리 출신으로 중추원 의관이 되었으나 1910년 8월 경술 국치 이후 낙향하여 군내면 명산리에 서당을 세워 인재를 양성하는 데 힘썼다. 서석구이청열에게 천문과 주역을 전수받았다. 그는 평생 공자 상을 모시고 초하루 그믐에 분향하였으며, 조석(朝夕)으로 『주역(周易)』을 암송하였다고 한다. 또한 죽는 날까지 머리를 깎지 않았으며, 유학 이외에는 사도(邪道)라는 신념이 강하였다.

서석구는 1960년 전국 유림 대회를 열어 중국 선현을 다시 성균관에 모시기 위한 위원장으로 활약하였다. 1946년 유도회를 중심으로 재조직된 성균관의 초대 관장에 오른 김창숙(金昌淑)이 조선 시대부터 성균관 문묘에 배향되어 오던 중국 선현의 위패를 과감히 퇴출한 데 반발한 것이다. 서석구는 86세를 일기로 죽을 때까지 한학에 심혈을 기울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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