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2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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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良坪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포은로[양평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재우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3월 1일 - 영천군 임고면 양평동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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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88년 5월 3일 - 영천군 임고면 양평동에서 영천군 임고면 양평리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95년 1월 1일 - 영천군 임고면 양평리에서 영천시 임고면 양평리로 개편 |
행정구역 | 양평리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양평리 |
성격 | 법정리 |
면적 | 5.16㎢ |
가구수 | 128가구 |
인구[남, 여] | 309명[남 149명, 여 160명]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양평리(良坪里)는 고인돌이 있는 양암(良巖) 마을과 운주산의 골짜기 물이 흘러가는 수평(水平) 마을을 합쳐 ‘양평’이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양평리 동쪽 편의 양암·돌빼기 마을에 큰 고인돌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마을의 역사가 무척 오래된 곳임을 알 수가 있다. 예전에는 임고면에서 가장 인구가 많이 모여 살았을 것이라 추측된다. 새말[新村]은 돌빼기 북쪽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새마을 동네’라 불렸으며, 임진왜란 전에 경주 김씨와 달성 배씨들이 처음으로 정주했다고 한다. 양평리는 수평·양암·신평 일부가 합해서 이루어졌다.
양평리는 신라 경덕왕 때부터 임고군(臨臯郡)에 속하였고, 고려 시대에는 임고현(臨臯縣)에 속하였으며, 공양왕 때 영천부(永川府)에 소속되었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 1415년(태종 15) 영천군에 속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임고면(臨臯面)에 속하였다. 1995년 1월 1일자로 영천시·영천군 통합으로 영천시 임고면에 속하게 되었다.
[자연 환경]
양평리는 운주산(雲柱山)의 산맥이 서쪽으로 뻗어 나와서 생긴 마지막 마을이다. 마을 남쪽에는 운주산 골짜기의 맑은 물이 흐르며, 서쪽에는 자호천이 흘러 농사 짓기에 좋은 마을이다. 양평리의 지형은 아주 완만한 구릉성 산지이어서 햇볕이 잘 드는 양지바른 곳이다.
[현황]
양평리의 동쪽은 황강리 및 고천리, 남쪽은 우항리, 서쪽은 양항리, 북쪽은 선원리 및 평천리와 접한다. 자연 마을로는 돌빼기[양암]·새말[신촌]·수평·갱빈 등이 있다. 양평리의 면적은 5.16㎢, 인구는 2012년 7월 말 현재 128가구, 309명으로, 남자가 149명, 여자가 160명이다. 마을 중앙에 임고 중학교가 있으며 최근 공장 및 전원 주택이 늘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