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16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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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京植 |
영어음역 | Kim Kyoungsik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죽포리 1643번지[죽포1길 21-13]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태균,이재훈 |
성격 | 효자|의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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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죽포리 1643[죽포1길 21-13] |
성별 | 남 |
생년 | 1914년 8월 14일 |
몰년 | 1937년 3월 21일 |
본관 | 김해 |
[정의]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의인이며 효자.
[개설]
김경식은 1914년 8월 14일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죽포리 1643번지[죽포1길 21-13]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김영환이고, 어머니는 김순언심이다. 독립유공자인 김인식의 동생이다.
[활동사항]
1923년 개교한 사립 죽포보통학교[현 봉덕초등학교]에 제 1회 학생으로 입학하여 졸업하였다. 김경식은 가사를 도우며 지역 주민들에게 한글 교육 등 항일 정신을 고취시키는 일에 매진하였다. 1937년 3월 21일 병환중인 어머니를 모시고 치료 차 관내 두문포에서 장배를 타고 여수로 가다가, 여수종포(鍾浦) 하선 부두에 이르러 무리하게 많이 탄 승객들이 일본 경찰의 단속을 피하려고 배 한쪽으로 몰아 숨는 과정에서 배가 뒤집히고 말았다.
김경식은 그 조난 상황에서 자기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바다에 빠져 아우성치는 수많은 사람들을 뭍으로 끌어올려 구출해냈다. 그러나 그 중에 정작 자기 어머니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멀리 깊은 바다로 밀려가는 어머니를 발견하자, 사람들이 너무 멀어져 구조하러 간 사람마저 죽고 말 것이라고 극구 만류하며 안타까워하였다. 그러나 이를 뿌리치고 다시 바다로 뛰어들었다. 어머니를 잡아 안는데는 성공하였으나 기력이 다하여 모시고 뭍에 이르지 못하고 결국 함께 익사하고 말았다.
[상훈과 추모]
당시 여수군수는 사고 사실을 접하고 군민의 이름으로 위령제를 올리고, 돌산면장 김상연(金相連)이 중심이 된 면민은 김경식의 효성과 살신성인의 죽음을 후세에 귀감으로 전하고자 1938년 3월 21일 죽포마을에 ‘효자김해김공경식비(孝子金海金公京植碑)’를 세웠다. 그러나 이런 내용이 기록된 효자비는 현재 보존 상태와 주변 환경이 좋지 않아 비문이 마모되어 내용을 알아보기 어려운 상태이다.
[묘소]
김경식의 묘는 여수시 돌산읍 죽포리 본산 아랫자락인 솔통에 있다. 죽포 삼거리 언덕 위 찻길 건너 근접한 할머니 강(姜)씨 묘역 내에 어머니와 아버지의 합장묘가 있고, 그 옆에 묻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