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0563
한자 鰲川郡
이칭/별칭 오천군 천동면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지명/고지명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지도보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정을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 시기/일시 1901년 6월 1일연표보기 - 오천군, 대한제국 충청남도의 도서 지역 정식 설치
변천 시기/일시 1906년 9월 28일 - 오천군에서 태안군에 인접한 안면도와 황도·간월도·죽도·거아도·가의도 등을 태안군에 이속
변천 시기/일시 1914년 3월 - 오천군, 남쪽 도서인 연도·개야도·죽도·어청도가 옥구군에 편입되고, 오천군의 나머지는 보령군에 편입
변천 시기/일시 1914년 4월 - 오천군, 보령군에서 천북면을 제외한 나머지 구역 오천면으로 통합
변천 시기/일시 1914년 6월 1일 - 오천군, 하남면, 하서면, 보령군 장척면 등을 합쳐 10개의 법정리를 관할하는 보령군 오천면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95년 - 오천군, 보령군 오천면에서 보령시 오천면 개칭

[정의]

현재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천북면, 전라북도 군산시 옥도면 일부에 해당하는 옛 행정구역 명칭.

[개설]

오천군(鰲川郡)은 자라의 모양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으로 대한제국 시기에 정식 부여된 옛 행정구역 명칭이다.

[명칭 유래]

‘오천’이라는 지명은 천수만 양쪽 하단의 모양이 자라[鰲]의 모양과 같고, 양쪽에서 천수만을 지켜 주는 중간에 천수[川]가 흐른다고 하여 부르기 시작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조선시대부터 ‘오천’이라는 지명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형성 및 변천]

오천군은 보령 지역의 동쪽에 자리한다고 하여 조선시대에는 오천군 천동면이라고도 불렀다.

대한제국은 1901년 6월 1일 옛 충청수영을 중심으로 충청남도의 도서 지역에 오천군을 설치하였다. 이때 보령군의 금신면은 오천군 천동면으로, 홍주군 용천면은 오천군 천북면으로, 또한 홍주군의 안면도와 원산도·황도·월도·육도·추도·소도·고대도·효자도·내장고도·저도·두지도·대야도·외장고도·외감도·삽시도·불모도·녹도·호도·외연도·어청도, 그리고 태안군의 거아도와 가의도, 결성군의 죽도, 서산군의 간월도, 비인군의 연도와 죽도, 서천군의 개야도 등이 오천군 일부로 편성되었다.

1906년 9월 28일에는 오천군에서 태안군에 인접한 안면도와 황도·간월도·죽도·거아도·가의도 등을 태안군에 이속하였으며, 1914년 3월 남쪽 도서인 연도·개야도·죽도·어청도가 옥구군에 편입되고, 오천군의 나머지는 보령군에 편입되었다. 그리고 1914년 4월 보령군에서 천북면을 제외한 나머지 구역이 오천면으로 통합되었다가, 1914년 6월 1일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개편으로 하남면, 하서면, 보령군 장척면 등을 합쳐 10개의 법정리를 관할하는 보령군 오천면이 되었으며, 1995년에 보령시 오천면으로 개칭되었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1914년 이후 천북면은 보령군 천북면 궁포리, 낙동리, 사호리, 신덕리, 신죽리, 장은리, 하만리, 학성리로, 천동면은 보령군 오천면의 갈현리, 교성리, 소성리, 영보리, 오포리로, 하서면은 보령군 오천면의 녹도리, 삽시도리, 외연도리로 편성되었으며, 하남면은 보령군 오천면의 원산도리효자도리, 옥구군 미면의 개야도리, 어청도리, 연도리, 죽도리로 편성되었다.

[관련 기록]

대한제국 수립 전년도인 1896년 7월 충청수영은 폐지되고 보령군 김신면으로 통합되었는데, 이에 박계영(朴啓榮)은 1900년(고종 37) 4월 27일 ‘충청남도관하보령군 구역 내 폐지한 전수영에 오천군의 신설에 관한 청의서’를 의정부찬정 내부대신 이건하(李乾夏)에게 보내 본격적으로 오천군 설치를 의정부에서 논의토록 하였다. 조정은 오천군 설치를 의논하여 결국 1901년(고종 38) 6월 1일 「오천군 설치에 관한 칙령」 제11호가 반포되었다.

[참고문헌]
  • 『보령시지』(보령시지편찬위원회, 2010)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s://encykorea.aks.ac.kr)
  • 네이버 지식백과(https://term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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