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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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강천복의 후손들은 현재 진도에 살고 있으며 예인 활동가가 많다. 강천복은 무당 천소사(千召史)의 남편으로 무부(巫夫)였다. 강천복은 아버지가 돌아가실 상황에 처하자 자기 넓적다리를 베어 먹여 연명하게 하는 효행을 했다. 1789년(정조 10)에 정조는 그의 효행을 높이 사서 복호(復戶: 세금을 면제받는 조치)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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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을 시조로 하고 최덕징을 입향조로 하는 진도 세거성씨의 하나. 우리나라 최씨(崔氏) 중에서도 가장 뿌리가 굵은 경주최씨는 사로의 6촌 중 돌산고허촌장(突山高墟村長, 사량부) 소벌도리(蘇伐都利)를 원조로 받들고 있다. 그의 24세손으로 전하는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을 시조로 하여 경주를 관향으로 삼는 성씨이다. 경주최씨는 여러 갈래가 진도에 들어왔다. 26세 최덕징(崔德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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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1년부터 1794년까지 진도군수를 지낸 조선후기 무신. 정조 연간에 장연현감, 훈련원부정(訓鍊院副正), 선전관, 진도군수, 금위영 낭청을 역임하였다. 순조 연간에는 공청도 수군절도사를 지냈다. 다산 정약용과 교유하였다. 구강은 제223대 진도군수인데, 진도군수로 있던 1793년(정조 17)에 흉년이 심하게 들었다. 이에 조정에서는 전라도 전역에 번(番)의 정지, 대동(大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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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1734년(영조 10)~1735년(영조 11)까지 제181대 진도군수를 역임하였다.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원진(元鎭)·관보(觀甫), 호는 담정(澹亭)·학야(鶴野). 증조부는 남선이고, 할아버지는 도승지 남치훈(南致熏)이고, 아버지는 공조좌랑 남필명(南弼明)이다. 어머니는 한성판윤 신후재(申厚載)의 딸이다. 아들은 남현로(南玄老)·남경로(南庚老)·남인로(南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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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1756년~1758년까지 3여 년 동안 제203대 진도군수로 재임하였다. 박사검이 진도군수로 있던 시기에는 잇따른 흉년으로 세곡이 바닥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조정에서는 세수(稅收)를 늘리기 위해 군량미(軍糧米)의 확보나 진곡(賑穀)의 회수가 부진한 지방 수령을 엄하게 문초하였다. 조정에서는 군량미 확보의 성적을 삼등분(三等分)하였다. 제일 성적이 나쁜 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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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에 속하는 면. 조도면은 진도군 7개 면 중의 한 면이다. 남쪽과 서쪽의 섬 154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중 유인도는 35개, 무인도는 119개가 있다. 국내 읍·면 중에서 섬이 가장 많은 곳이기도 하다. 면적은 약 57㎢이다. 새떼처럼 섬이 많다 하여 조도(鳥島)라 하였다. 본래 진도군의 지역으로서 여러 섬으로 이루어져 제도면(諸島面)이라 하였다. 관매리, 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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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매리(觀梅里)는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관매도에 있는 마을이다. 관매리[1구]와 관호리[2구]로 이루어져 있으며, 관매도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관매도리, 또는 관매도라고 부른다. 관매도의 마을명칭, 즉 관매(觀梅)라는 이름은 일제강점기인 1917년에 조선총독부령으로 만들어진『신구대조 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진도군 조도면 지역의 명칭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