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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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가치재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가치(加峙)라 하였다. 가치리에 처음 들어온 성씨는 경주김씨이며, 이후 경주이씨와 경주정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진도군 지산면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가치에서 가치리가 되었다. 전체적으로 구릉성 산지로 서쪽, 북쪽, 남쪽은 석적막산(石積幕山)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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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백호(智伯虎)를 시조로 하고 정효분(鄭涍分)을 입향조로 하는 진도 세거성씨의 하나. 정(鄭)씨는 국내 5위 성씨로 그 본관이 122본에 달한다. 중국 귀화 성을 자처하는 서산(瑞山)정씨를 제외하고는 모두 신라 6촌장을 지낸 지백호를 시조로 단일화하고 있어서 경주 본관 정씨를 큰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동(河東), 연일(延日), 동래(東萊) 등 분파 명문 본관 정씨와는 구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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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지역에서 혈통에 따라 세습되는 무당인 단골이 독자적으로 소유·관장하는 종교적 영역. 전라남도 진도의 단골판은 여러 단골이 마을별과 씨족별로 모든 단골댁들을 나누어 소유하면서 굿, 맥이, 비손, 명다리, 택일 등의 모든 종교적 의식과 인생상담을 관장하는 독점적인 영역이다. 단골은 자기의 단골댁에서 씻김, 성주굿, 혼사굿 등은 ‘마령’이라 하는 굿대금을 받고, 간단한 환자가 생기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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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수역리에 속하는 행정리. 수역리 북쪽 고갯길에 위치한 동네라 하여 북치리(北峙里)라 하였다. 1770년에 경주정씨 정세백(鄭世伯)이 처음 들어온 후, 김해김씨·경주박씨 등이 농사를 짓기 위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군내면에 속해 있었으나 1973년 진도읍으로 편입되었다. 수유방조제가 건설되기 전에는 바다와 닿아 있어 요망바위라는 곳에 포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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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를 본관으로 하거나 진도에 세거해 온 성씨. 조선 초기에 편찬된『세종실록 지리지(世宗實錄 地理志)』 ‘진도군조’는 진도 토박이 성씨를 살필 수 있는 자료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세종실록 지리지』 ‘진도군조’에는 조선 개국 후 없어진 고을 이름과 토성(土姓)이 나오는데, 이 토성들이 고려 때 진도 토박이 성씨로 추정된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나타난 진도 성씨는 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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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에 속하는 법정리. 본래 진도군 군이면의 지역으로서, 정자나무가 있었으므로 정자몰 또는 정자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정자리라 해서 군내면에 편입되었다. 남동쪽은 군내면 월가리, 동쪽은 군내면 분토리, 서쪽은 진도읍 수역리, 북쪽은 군내면 덕병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마을의 입향조는 밀양박씨로 박맹수의 증조부이다. 주민들의 주요 소득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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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군 군내면 정자리 정자마을에서 올리는 마을제사. 본래 진도군 군이면에 속했지만,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정자리로 바뀌어 군내면에 편입되었다. 마을의 입향은 홍씨가 먼저 했다고 전하며, 다음에 들어온 밀양박씨가 현재 14대째 살고 있는 것으로 보아 400여년 이상 된 마을이다. 지금은 간척이 되었지만 예전에는 바닷가 마을이었다. 고려말에 조희주가 이곳으로 귀양을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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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진도 입향조. 본관은 경주. 경주정씨 시조 지백호(智伯虎)의 60세손이다. 정진은 석성공파(石城公派)로, 아버지는 정화중(鄭和重)[1649~1709]이고 경기도 연천에 살았다. 부인은 청주한씨이다. 아들이 정도형(鄭道亨)·정운형(鄭運亨)이다. 그 후손 중에서 정상호 전남대학교 농과대학장, 정용재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장, 정공흔 제주대학교 해양대학장 등 많은 학자가 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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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진도 입향조. 본관은 경주. 경주정씨 시조 지백호(智伯虎)의 58세손이다. 정효분은 경주정씨 문헌공파의 진도 입도조이다. 정효분은 본래 진도군 군내면이였던 북치(北峙)로 들어왔는데, 후일 정자리(亭子里)와 진도읍내로 자손이 번졌다. 정효분의 후손 중에서 미군정기 진도군수를 역임한 정승한(鄭承漢), 자생병원장 정중원 등이 배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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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에 속하는 행정리. 1950년경 김해김씨가 처음 입거하였다. 1975년 소포방조제 완성 후, 간척사업으로 조성된 농경지에 농사를 짓기 위해 전주이씨, 경주정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문마산과 남산(南山)으로 이어진 산록 완경사면에 입지한다. 북쪽 문마산을 밭으로 개간하였으며, 서쪽으로는 농경지가 펼쳐져 있다. 북동쪽은 남산리, 북서쪽은 포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