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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900382
한자 先史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기도 남양주시
시대 선사/선사
집필자 이종록

[정의]

경기도 남양주시 일대에서 전개된 역사 시대 이전의 시대.

[개설]

선사(先史)는 문자로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기 이전을 의미하며, ‘선사 시대’는 문자로 역사를 기록하는 역사시대에 대응한 이전 시기를 의미한다. 영어로는 ‘prehistory’라고 한다.

선사 시대를 포괄하는 하위의 시대는 문명이나 각국의 역사에 따라 다르지만, 한국사에서는 일반적으로는 구석 기시대, 중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초기 철기 시대까지 포괄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 선사 시대와 역사 시대 이전의 역사의 과도기를 원사 시대[protohistory]로 설정하기도 한다. 시기적으로 우리나라의 선사 시대는 약 70만 년 전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며, 그 끝은 초기 철기 시대의 편년이나 사료에서 국가가 등장하는 시기를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지만, 초기 철기 시대를 기준으로 할 경우는 대체로 기원을 전후한 시기까지로 보는 경우가 많다. 선사 시대의 연구는 문자 자료, 곧 사료가 없거나 논란이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유적과 유물을 분석하는 고고학적 분석에 크게 의존하게 된다.

선사 시대에 경기도 남양주 일대는 한강 본류와 북한강을 끼고 있기 때문에 주민들의 거주에 알맞은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한강 유역은 본래부터 한반도의 중추를 관통하는 지역으로서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거주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실제로 다수의 선사 시대 유적이 발견되는 지역이다. 경기도 남양주 일대 또한 구석기 시대부터 초기 철기 시대에 이르는 시기의 여러 유물 산포지부터 고인돌과 같은 유적들이 있다. 특히 경기도 남양주에서는 선사 시대 유적이 2000년대 이후에도 주택 건설 등과 같은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확인되고 있기 때문에, 향후 종합적인 조사를 통해 선사 시대의 생활상을 복원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구석기 시대]

한반도에서는 약 70만 년 전부터 인류가 거주한 것으로 추정되며, 1930년대 함경북도 온성군 강안리[옛 함경북도 종성군 동관진] 유적을 통하여 우리나라의 구석기 시대가 존재하였음이 최초로 확인되었다. 본격적인 조사는 1960년대부터 북한의 함경북도 웅기군 굴포리 서포항 유적, 남한의 충청남도 공주시 석장리 유적 등이 해방 이후 최초로 조사가 실시되었으며, 이들은 구석기 시대의 존재를 증명하는 유적들이다. 우리나라의 구석기 시대는 주로 동굴이나 바위 그늘을 주거지로 삼으며, 수렵 활동을 통한 이동 생활을 하였다.

경기도 남양주의 경우는 오랜 기간 구석기 시대 유적이나 유물 산포지가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아 그 존재의 가능성만이 제기되어 왔다. 하지만 2008년까지 조사된 걸쳐 경기도 남양주 호평동 구석기 유적의 존재로 구석기 시대에도 주민들이 거주하였음이 분명해지게 되었다. 호평동 유적은 2개의 문화층에 걸쳐 다수의 석기가 출토되었다. 1기 문화층에서는 석영 재질의 가죽 등을 손질하는 밀개가 발견되어 학계의 주목을 받기도 하였으며, 2기 문화층에서는 흑요석 및 혼펠스를 이용한 좀돌날석기가 출토되었다.

[신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는 돌을 갈아 만든 간석기의 이용과 토기의 제작, 그리고 정주 생활을 특징으로 하는 시기이다. 일반적으로 신석기 시대는 원시 농경 문화의 시작을 기원으로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주로 토기 출현을 기점으로 설정하고 있으며, 지금으로부터 1만 년 전에서 기원전 2000~1500년까지에 해당한다. 경기도 남양주의 신석기 시대 주민들의 존재는 다수의 유물 산포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지금동 유물 산포지, 금남리 유물 산포지, 퇴계원 유물 산포지 등에서는 우리나라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물인 빗살무늬토기의 잔편이 여러 차례 수습되었다. 그중에는 가장 잘 알려진 서울특별시 강동구 암사동의 빗살무늬토기와 형식이 유사한 경우도 있는가 하면, 바탕흙이나 색조에서 차이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수석리 선사 유적의 주거 유적과 유물은 대부분 청동기 시대로 편년되지만, 빗살무늬토기 잔편을 비롯한 신석기시대 유물도 소량 출토되어 신석기 시대부터 주민이 거주하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청동기 시대]

우리나라에서 청동기 시대는 농경 사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민무늬토기[무문토기(無文土器)]를 사용하는 동시에 청동기가 등장한 시기이다. 시기적으로는 기원전 2000~1500년에 시작되며, 사회적으로도 이후 집단 간 경제적 격차와 계급화 등이 진행되어 군장 사회[chiefdom]의 형성이 이루어졌다.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은 지역 수장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고인돌[지석묘]이 있으며, 유물은 중국 요령 지방과 한반도에서 발견되는 비파형동검, 이후 한반도 내부에서 주로 발견되는 세형동검이 있다.

청동기 시대 경기도 남양주의 양상을 나타내는 유적으로는 가운동 지석묘, 지금동 지석묘, 금남리 고인돌, 진중리 고인돌·지둔리 고인돌과 같은 고인돌 유적과 청동기 시대의 유물이 다수 수습되는 지금동 유물 산포지 및 능내리 유물 산포지 등이 있다. 또 1960년 처음 보고된 청동기 시대 수석리 선사 집자리는 한강 유역의 대표적인 주거 유적인 암사동 유적과 미사리 유적에 견줄 수 있는 곳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수석리 선사 집자리 유적에서는 6기의 집자리가 확인되었는데, 산의 경사면을 일부 깎아 집자리를 마련한 특이한 형태의 반 움집이다. 내부에서는 다수의 토기 잔편과 함께 당시 사용한 재와 숯돌이 발견되었으며, 주거지 중 6호 집자리는 신앙적 기능을 가진 사당과 같은 성격의 건물로 추정되기도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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