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보상운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900411
한자 國債報償運動
영어공식명칭 National Debt Redemption Movement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기도 남양주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양진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07년 1월연표보기 - 국채보상운동 대동광문회에서 국채 보상 취지서 발표
성격 사회 운동

[정의]

1907~1908년 경기도 남양주 일대에서 일본에 대한 국가적 채무를 상환하기 위해 전개된 사회 운동.

[역사적 배경]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은 일본에 대한 국가적 채무를 한국민의 모금으로 상환할 것을 주장하며 전개된 운동이다. 일본에 의해 대한제국의 국권이 점차 상실되어 가는 상황에서 한국민들은 일본으로부터의 경제적 종속에서 벗어나고자 국권 수호 운동의 일환으로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했다. 1907년 2월 당시 대한제국이 일본에 진 채무는 1300만 원으로, 이는 1906년 대한제국의 세입 총액이 약 1318만 환이었던 것에 비추어 본다면 상당한 액수였다. 국채보상운동은 경상북도 대구군[현 대구광역시]에서 시작되었다. 1907년 1월 경상북도 대구군의 광문사(廣文社)가 이름을 대동광문회(大東廣文會)로 바꾸고 특별회를 개최해 담배를 끊고 그 대금으로 국채를 보상할 것을 제의했다. 여기에 찬동한 많은 사람들이 담배를 끊고 의연금을 갹출했고 대동광문회가 국채 보상 취지서를 발표하면서 운동은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다.

[경과]

국채보상운동은 전국 각계각층에 걸쳐 전개되었다. 국채 보상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들이 조직되었고, 국채 보상 취지서가 발표되어 국채 보상을 위한 모금을 촉구했다. 이에 단체 단위 또는 지역·문중·개인 단위로 의연금을 황성신문사와 대한매일신보사 등으로 보내 국채 보상을 위한 모금에 참여했다.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일대가 속해 있었던 경기도 양주군에서는 1907년 6월에 ‘국채 보상금 취지서’를 발표해 “무릇 나라가 백성에게 의지하고 백성이 나라에 의지하는 것이 고금(古今)이 똑같다.”라고 하면서 “외국에 빌린 차관이 1300만 원으로 많아, 강한 이웃에게 모욕을 받고 외국인의 압제를 받는 이유”라고 하고 “많고 적음을 계산하지 말고 재산을 모아 상송(上送)”할 것을 권했다. 이에 경기도 양주군에서는 ‘국채 보상금 취지서’의 발표를 전후해 의연금을 황성신문사와 대한매일신보사에 보냈고, 그 결과 『황성신문』·『대한매일신보』의 광고란에 의연금 기부 상황이 게재되었다.

의연금 기부 상황의 일부를 보면 경기도 양주군 별비면 삼패리[현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별내면·퇴계원읍] 퇴계동에 거주하는 27명이 1907년 4월에 14환을 황성신문사로 보냈고, 양주군 상도면[현 남양주시 화도읍] 수전리에서는 같은 시기에 의연금 16원 20전을 대한매일신보사로 보냈다. 전직 및 현직 관리와 교사, 학생의 의연금 기부 상황이 눈에 띄는데 양주군 광석면[현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삼현리에 거주하는 주사 윤상구(尹相求), 경기도 양주군 동진관서숙(東眞官書塾)의 교사 이해응(李海膺)·학생 김현주(金顯周) 등이 1907년 6월에 각각 50전을 대한매일신보사로 보냈다. 당시 양주군에서 보낸 의연금의 액수는 다양했으며, 의연금 기부 횟수가 2회 이상인 경우도 있었다.

[결과]

국채보상운동 기간 동안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가 속해 있었던 경기도 양주군에서는 총 1,564명이 의연금 약 286원 89전을 기부했다. 이는 당시 경기도에서 양근군[현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강상면·강하면·옥천면·양서면·서종면,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일대]과 광주군[현 경기도 광주시] 다음으로 많은 액수의 의연금이었다. 하지만 통감부가 국채보상운동을 배일 운동으로 단정하고 방해와 탄압을 자행하면서, 경기도 남앙주시 일대에서의 국채보상운동은 좌절되었다.

[의의와 평가]

경기도 남양주시 일대에서 진행된 국채보상운동은 다양한 사람들이 대한제국의 국권을 경제적으로 수호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에서 민족적 저항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통감부의 방해와 탄압에 대해 체계적으로 대응하지 못함에 따라 운동이 지속되지 못하고 좌절되었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적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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