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900471
한자 南楊州 光海君墓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능묘
지역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 337-4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민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1575년 - 광해군 출생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1576년 - 문성군부인 출생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1623년 - 문성군부인 사망
조성 시기/일시 1623년연표보기 - 남양주 광해군묘 조성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1641년 - 광해군 사망
문화재 지정 일시 1991년 10월 25일연표보기 - 남양주 광해군묘 사적 제363호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11월 19일 - 남양주 광해군묘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사적 지정 번호 삭제
현 소재지 남양주 광해군묘 -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 337-4 지도보기
성격
양식 쌍분[묘]|운수방부[묘표]
관련 인물 광해군|문성군부인

[정의]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에 있는 조선 광해군과 문성군부인 유씨의 묘.

[개설]

남양주 광해군묘(南楊州光海君墓)는 조선 제15대 광해군(光海君)[1575~1641, 재위 1608~1623]과 부인 문성군부인(文城郡夫人) 유씨(柳氏)[1576~1623]의 묘이다.

광해군은 선조(宣祖)와 공빈 김씨(恭嬪金氏)의 아들이며, 문성군부인은 유자신(柳自新)[1541~1612]의 딸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국난을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피난지 평양에서 광해군은 세자에 책봉되었다. 이후 전란을 수습한 광해군은 1608년 왕위에 올랐으나 1623년 인조반정으로 폐위되어 ‘군’으로 강등되었다. 이후 강화도 교동, 제주도로 유배되었으며 1641년 사망하였다. 문성군부인도 광해군과 함께 유배되었으며, 아들 폐세자가 탈출에 실패하여 자결하였고, 유씨의 형제들도 이때 처형되었다. 문성군부인이 1623년 10월 사망하자 양주(楊州) 적성동(赤城洞)[현 진건읍 송능리]에 장사지냈다.

남양주 광해군묘는 1991년 10월 25일 사적 제363호로 지정되었으나,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위치]

남양주 광해군묘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 337-4번지에 있다.

[변천]

남양주 광해군묘는 1623년 10월 문성군부인 사망 후 처음 조성되었다. 묘소가 정해진 이유는 정확하지 않으나 현재 묘소 동쪽 600m 거리에 광해군의 사친(私親)인 공빈 김씨의 남양주 성묘(成墓)가 있기 때문이라고 추정한다. 문성군부인이 사망하자 인조는 특명으로 수도(隧道)를 사용하게 하고, 표석을 세우도록 하였다. 1641년 광해군이 제주도에서 사망하자 왕자군(王子君)의 예로 장사지내게 하고, 묘소는 부인 묘 오른쪽으로 정하였다. 광해군과 문성군부인의 가묘(家廟)와 묘제(墓祭)는 연산군의 사례를 따라 외손(外孫)이 주관하도록 하였다.

[형태]

남양주 광해군묘는 해좌사향(亥坐巳向)으로 동향(東向)이며, 남양주 성묘를 바라보고 있다. 봉분은 쌍분으로 뒤에는 곡장(曲墻)이 둘러져 있다. 각 봉분 앞에는 묘표(墓表), 혼유석(魂遊石), 상석(床石), 향로석(香爐石)이 설치되어 있다. 묘역 좌우에는 망주석, 문인석이 건립되어 있으며, 중앙에 장명등이 있다.

[금석문]

남양주 광해군묘 묘표는 운수방부(雲首方趺) 형태이며, 비신은 대리석, 비석 받침은 화강암으로 제작하였다. 광해군의 묘표는 1641년경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앞면에 ‘광해군지묘(光海君之墓)’, 뒷면에는 광해군의 치상(治喪)에 대한 내용이 새겨져 있다. 문성군부인의 묘표는 1623년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는데 앞면에 ‘문성군부인유씨지묘(文城郡夫人柳氏之墓)’, 뒷면에는 ‘천계삼년계해 윤시월이십구일 예장(天啓三年癸亥 閏十月二十九日 禮葬)’이라고 예장 시기를 큰 글씨로 새기고 아래에 작은 글씨로 문성군부인의 치상 내용을 새겼다.

[현황]

남양주 광해군묘 석물은 수백년간 지속적으로 제작되었는데, 인근 사능리에 사위 박징원(朴徵遠)[1625~1690]과 딸 전주 이씨[1619~1664]의 묘소 및 선영이 있어서 현대까지 관리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남양주 광해군묘는 폐위된 조선 시대 두 번째 국왕의 묘소이며, 인조에 의하여 왕자군의 예로 장례를 지냈으며, 묘역이 조성되었다. 광해군과 문성군부인 상장례에 대한 내용이 각 묘표에 새겨져 있어서 묘역 조성의 근거를 알 수 있다. 여러 석조물들의 건립 연대가 다른데 각 묘표는 장례 시 제작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망주석과 문인석도 17세기의 작품이다. 향로석은 18세기, 장명등은 19세기에 다시 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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