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900389
한자 陵墓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기도 남양주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민규

[정의]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조선 시대의 능과 묘.

[개설]

경기도 남양주시는 서울에서 가까운 곳에 있으며, 육로(陸路)와 한강의 수로(水路)의 편리성 때문에 조선 시대 다수의 왕릉(王陵) 및 선현 묘소(墓所)가 조성되었다. 그래서 능묘는 남양주시 문화재 중 사적 9건, 시도유형문화재 1건, 시도기념물 9건, 문화재자료 6건, 향토유적 10건이 있으며, 이 밖에도 중요한 묘역이 산재하여 있다.

남양주시에는 조선 왕릉이 4곳 있으며 모두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1468년에 조성된 남양주 광릉(南楊州 光陵)세조(世祖)정희왕후(貞熹王后)의 능으로 남양주시 최초의 조선 왕릉이었다. 이후 정순왕후(定順王后)의 남양주 사릉(思陵)이 1699년 조성되고, 20세기 초에는 고종(高宗)과 명성황후(明成皇后)의 남양주 홍릉(洪陵), 순종(純宗)과 순명효황후(純明孝皇后)·순정효황후(純貞孝皇后)의 남양주 유릉(裕陵)이 조성되었다.

왕실의 원묘(園墓)도 다수 조성되는데 인빈 김씨(仁嬪 金氏)의 남양주 순강원(順康園), 유비 박씨(綏妃 朴氏)의 남양주 휘경원(徽慶園), 흥선대원왕(興宣大院王) 흥원(興園) 등이 대표적이다. 더불어 여러 후궁 및 왕자 묘소가 조성되어 신빈 신씨(信嬪 辛氏)신빈신씨묘역, 공빈 김씨(恭嬪 金氏)의 남양주 성묘(成墓), 안빈 이씨(安嬪 李氏)남양주 안빈묘(安嬪墓), 영빈 김씨(寧嬪 金氏)남양주 영빈묘(寧嬪墓), 덕흥대원군묘(德興大院君墓), 남양주 광해군묘(光海君墓), 임해군묘(臨海君墓), 순화군묘(順和君墓), 능원대군이보묘역(綾原大君李俌墓域) 등이 있다.

또한 서울 경화사족의 묘역도 다수 존재하고 있다. 한양천도 이후 서울에서 가까운 양주, 파주, 광주 등에 묘소가 집중 조성되었으며, 남양주도 같은 흐름을 가지고 있다. 남양주의 선현 묘역 중 입향(入鄕) 시기가 빠른 곳은 풍양 조씨(豊壤 趙氏)의 시조인 고려 시대 조맹(趙孟)의 묘이며, 이후 14세기 후반에 의령 남씨(宜寧 南氏) 남을번(南乙蕃)[1320~1395], 원주 변씨(原州邊氏) 변안렬(邊安烈)[1334~1390], 경주 최씨(慶州 崔氏) 최청(崔淸)[1344~1414], 15세기에 사천 목씨(泗川 睦氏) 목진공(睦進恭), 청주 한씨(淸州 韓氏) 한상경(韓尙敬)[1360~1423], 청송 심씨(靑松 沈氏) 심선(沈璿)[?~1465], 양주 조씨(楊州 趙氏) 조말생(趙末生)[1370~1447], 16세기에 능성 구씨(綾城 具氏) 구수영(具壽永)[1456~1523], 청풍 김씨(淸風 金氏) 김식(金湜)[1482~1520], 여흥 민씨(驪興 閔氏) 민제인(閔齊仁)[1493~1549], 순천 박씨(順天 朴氏) 박원종(朴元宗)[1467~1510], 해주 정씨(海州 鄭氏) 정미수(鄭眉壽)[1456~1512], 안동 김씨(安東 金氏) 김번(金璠)[1479~1544], 기계 유씨(杞溪 兪氏) 유강(兪絳)[1510~1570] 등의 묘소가 조성되어 현재까지 남아 있다.

[남양주 능묘의 의의]

남양주의 능묘는 조선 시대 정치, 문화사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귀중한 유적이다. 남양주 광릉이 조성된 이후 원찰로 봉선사(奉先寺)가 창건되어 남양주의 불교 중심이 되었으며, 남양주 광릉의 숲이 광릉수목원으로 보존될 수 있었다. 조맹 묘소는 공빈 김씨의 남양주 성묘가 덧붙여 조성되어 수난을 겪기도 하였으며, 남양주 성묘가 조성된 후 원찰인 봉인사(奉印寺)가 창건되었으며, 광해군에 의하여 석가사리탑이 건립되기도 하였다. 이후 임해군묘, 남양주 광해군묘가 인근에 조성되었고, 멀지 않은 곳에 광해군의 봉사손인 음성 박씨(陰城 朴氏) 묘역이 조성되어 문화권역의 역할도 하고 있다.

조선 후기 정치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풍양 조씨와 양주 조씨는 남양주를 본관으로 하고 가문이다. 풍양 조씨에서는 진종(眞宗) 비 효순왕후(孝純王后), 문조(文祖) 비 신정왕후(神貞王后), 양주 조씨에서는 인조(仁祖) 비 장렬왕후(莊烈王后)가 배출되었다. 정순왕후는 노년에 조카 정미수 일가의 봉양을 받았으며, 사후 남양주에 있는 정미수 묘역에 안장되었기 때문에 이후 사릉이 조영될 수 있었다. 더불어 사릉 내에 정미수 일가 묘소가 존재하는 것은 정순왕후에 대한 해주 정씨 일가의 의리를 존중한 숙종의 배려이기도 하였다.

청풍 김씨, 여흥 민씨, 안동 김씨는 조선 후기 노론(老論)의 대표 가문으로 주요 인물들의 묘소가 남양주에 조성되었다. 청풍 김씨 묘역에는 대동법(大同法)을 시행한 김육(金堉)[1580~1658], 영조(英祖) 때 군권의 책임자인 김성응(金聖應)[1699~1764], 정조(正祖)의 국구(國舅) 김시묵(金時默)[1722~1772] 등의 묘소가 있으며, 묘소들에 있는 비석과 석인상 등은 당대 최고의 작품으로 가치가 높게 평가되고 있다. 청풍 김씨에서는 현종(顯宗) 비 명성왕후(明聖王后), 정조(正祖) 비 효의왕후(孝懿王后), 안동 김씨에서는 순조(純祖) 비 순원왕후(純元王后), 철종(哲宗) 비 철인왕후(哲仁王后) 등이 배출되었다.

남양주의 안동 김씨는 입향조 김번 이래로 장동 김씨(壯洞 金氏)라는 별칭이 생길 정도로 조선 후기에 끼친 영향이 크다. 병자호란 때 강화에서 순절한 김상용(金尙容)[1561~1637], 척화대신(斥和大臣)인 김상헌(金尙憲)[1570~1652], 노론의 핵심인 김수항(金壽恒)[1629~1689], 김수흥(金壽興)[1626~1690], 김수증(金壽增)[1624~1701] 형제 및 자손들의 묘소가 남양주에 있다.

주요 인물들의 묘소가 남양주에 있음으로써 조선 시대 역사와 남양주의 중요성을 파악할 수 있으며, 묘역에 존재하는 우수한 석조 문화재를 통하여 조선의 문화 수준과 사대부 가문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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