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경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900694
한자 金允京
영어공식명칭 Kim Yungyeong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기도 남양주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명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69년 2월 24일연표보기 - 김윤경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5일 - 김윤경 경기도 양주군 와부면 3·1운동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25일 - 김윤경 징역 8월 선고
활동 시기/일시 1920년 3월 - 김윤경 석방
몰년 시기/일시 1945년 1월 6일연표보기 - 김윤경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6년연표보기 - 김윤경 대통령표창 수여
출생지 송촌리 -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지도보기
활동지 송촌리 -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활동지 덕소리 -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남성
대표 경력 3·1운동

[정의]

경기도 남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김윤경(金允京)[1869~1919]은 1869년 2월 24일 태어났으며,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에 해당하는 양주군 와부면 송촌리에 거주하면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활동 사항]

1919년 3월 14일 김춘경(金春經), 김현모(金顯模), 이정성(李正成) 등은 경기도 양주군 와부면 송촌리에 있는 경진학교에 모여 주민들에게 배포할 태극기를 직접 인쇄·제작하고 1919년 3월 15일 만세 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정하였다.

1919년 3월 15일 김윤경3·1운동의 취지에 동조하는 동시에 시위를 통하여 독립을 이루고자 김덕여(金德汝), 이갑동(李甲同), 정일성(鄭一成) 등과 함께 태극기를 앞세우고 소리 높여 조선 독립 만세를 부르짖으면서 시위대를 이끌었다. 면사무소가 소재한 양주군 와부면 덕소리[현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로 행진하는 과정에서 3명이 체포되자 시위대는 곧바로 3명의 석방을 요구하면서 헌병 주재소를 습격하였다. 일제 헌병은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강제로 시위대를 해산하고 관련자를 체포하는 한편 1919년 3월 17일 양주군 와부면 송촌리로 출동하여 나머지 가담자를 연행하였다.

만세 시위의 주동자로 체포된 김윤경은 1919년 4월 2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8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김윤경은 자신의 행위는 정의와 인도에 기초한 민족자결주의의 발로이며 결코 범죄가 아니라는 취지로 항소를 제기하였다. 그러나 김윤경의 항소는 7월 5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김윤경은 1920년 3월 석방을 맞았다.

김윤경은 1945년 1월 6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김윤경은 독립운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1996년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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