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라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300436
한자 禾羅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강원도 영월군 산솔면 화원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엄흥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자연마을

[정의]

강원도 영월군 산솔면 화원리에 있는 자연마을.

[개설]

석항에서 녹전으로 가는 수라리재 아래에 있는 공마을, 덕밭골, 뒷대골, 바닥터, 솔안이, 점골(店谷) 등 화원1리에 있는 자연 부락을 통틀어 화라리(禾羅里)라 한다.

화라리망경대산 줄기로 고갯길이 험악한 수라리재가 있어서 예부터 원집이 있었다. 원(院)에는 여러 개의 목로방이 있었고 부엌에는 쌀과 반찬이 준비되어 있어 잠을 자고 난 길손들은 새벽 밥을 해 먹고 나무로 만든 엽전꽂이에 돈을 꽂아 놓고 길을 떠났다고 한다.

화라리에 있는 수라리재는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恭讓王)이 삼척 궁촌으로 유배될 때 고개에서 수라[왕이 먹는 음식]를 들었다 하여 ‘수라리재’라고 한다. 공양왕은 태조 이성계에 의하여 원주군 부론면 손위실에 유배되었으나 한양과 너무 가까운 곳이라 하여 1392년 8월 7일에 고성군 간성읍 탑동리(塔洞里)의 수타사(壽陀寺)로 옮겨 가서 굴욕의 나날을 보냈다. 공양왕은 삼척군 궁촌으로 세 번째로 유배되었다가 결국은 1394년(태조 3) 4월 17일에 죽임을 당하였다.

[명칭 유래]

화라리 마을의 진산(鎭山)에 해당하는 망경대산 수라리재는 그 지세가 너무 강하여 동네를 위협하였다. 이에 주민들은 솔안이돌단배기에다 조산(造山)인 돌탑을 쌓아 나쁜 기운을 막았다. 그리고 마을 이름도 벼가 물과 함께 자라듯이 ‘수라리재’의 ‘수(水)’와 화합하는 ‘화(禾)’를 넣어 ‘화라리’라 하여 마을의 기를 보강하였다.

[형성 및 변천]

화라리가 있는 산솔면 화원리는 1914년 행정구역 통합에 따라 화라리소미원(小味院)에서 한 자씩 따서 강원도 영월군 상동면 화원리로 개설되었다. 화원리는 1973년 상동면상동읍으로 승격되어 영월군 상동읍 화원리가 되었다. 1974년에 석항출장소[석항리·연상리·화원리]를 설치하였다. 1986년 녹전출장소[녹전리·직동리·이목리]와 석항출장소 관할 지역이 상동읍에서 분리되어 강원도 영월군 중동면 화원리로 개편되었고, 1998년 석항출장소가 폐지되었다. 이후 주민들이 면 명칭의 변경 필요성을 제기함에 따라 주민 투표를 거쳐 2021년 11월 2일 중동면에서 산솔면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강원도 영월군 산솔면 화원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화라리망전리에서 흘러내리는 냇물이 이 마을 앞에서 수라천과 이목천(梨木川)으로 갈라져 흐르므로 ‘갈라진내→가르내→가이천’이라 한다.

[현황]

산솔면 석항에서 국도 제38호선국도 제31호선이 만난다. 국도 제31호선석항에서 화라리를 가로질러 수라리터널을 거쳐 녹전리를 지나간다. 옛 국도 제31호선인 태백산로 주위에 형성된 수라리마을에는 효성레미콘화원산업이 있고, 태백산 산신이 된 단종에게 산과일을 바친 우천 추익한선생 신도비(愚川秋益漢先生神道碑)가 있다. 2021년 현재 42가구 70여 명의 주민들이 주로 밭농사에 종사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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