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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유옹주 묘 출토 유물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600223
한자 和柔翁主墓出土遺物
영어공식명칭 Relic from the Tombs of Hawyu Princess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경기도 부천시 작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희태성주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토|발굴 시기/일시 1991년 6월 - 화유옹주 묘 출토 유물 발굴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8월 2일 - 화유옹주 묘 부천시 향토문화재 제7호로 지정
현 소장처 국립고궁박물관 - 서울특별시 종로구 효자로 12[세종로 1-57]
원소재지 국립민속박물관 -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37[세종로 1-1]
출토|발견지 화유옹주 묘 - 경기도 부천시 작동
성격 유물
재질 옥제 비녀|금동제 비녀|도자기 등
크기(높이,길이,너비) 옥제석류잠: 30.5㎝[ 길이]|3.8㎝[너비]|금은제석류잠: 28.7㎝[길이]|3.8㎝[너비]

[정의]

조선 후기 경기도 부천시 작동에 조성된 화유옹주 묘에서 출토된 유물.

[개설]

화유옹주(和柔翁主)[1740~1777]는 영조(英祖)와 귀인 조씨(貴人趙氏) 사이에서 태어난 열 번째 옹주이다. 14세 때인 1774년(영조 29) 황인점(黃仁點)과 혼인하여 1남 1녀를 두었다. 아들 황기옥(黃基玉)은 이조참판을 지냈으며, 딸은 김제만(金濟萬)과 혼인하였다.

화유옹주 묘는 원래 부천시 작동 126번지에 있었다. 묘역은 곡장을 두르고 옥개형 묘비와 혼유석, 상석, 향로석 등을 갖추고 있었다. 1991년 6월 도로 확포장 공사로 인해 부천시 작동 산28-6번지로 이장하였으며, 다시 2005년 6월에 다시 부천시 원미로281번길 35[여월동 산32]로 이장하였다. 1991년 6월에 이장하는 과정에서 유물이 출토되었다. 화유옹주 묘 출토 유물은 처음에는 경복궁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장되었다가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옮겨져 보관되고 있다. 2021년 8월 2일 여월동 전주이씨 묘역화유옹주 묘가 부천시 향토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었다.

[형태]

화유옹주 묘 출토 유물 화유옹주가 생전에 사용한 생활 용구로 옥제 비녀, 금동제 비녀, 도자기 등 모두 30여 점이 있다. 백옥석류잠(白玉石榴簪), 도금석류잠(鍍金石榴簪), 휘녹석 벼루, 휘녹석 벼룻집, 휘녹석 연적, 도금은담배합, 청화백자연화문합, 옥제쌍이잔, 녹유리장경각병, 은제과형주전자, 청화백자잔, 청화백자합, 옥제연리문쌍이잔, 황채장미문병 등이 있다. 대표적인 유물인 옥제석류잠의 길이는 30.5㎝이고 너비는 3.8㎝이다. 금은제석류잠의 길이는 28.7㎝이며, 너비는 3.8㎝이다.

[특징]

화유옹주 묘 출토 유물 의 부장품 가운데 보이는 중국 청나라의 공예품은 화유옹주의 남편 황인점이 청에 사신으로 오가면서 들여온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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