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8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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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濯纓宗宅所藏古文書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토평리 145-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광우 |
소장처 | 탁영 종택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토평리 14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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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고문서 |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토평리에 있는 탁영 종택에 소장된 조선 시대의 고문서.
[개설]
김해 김씨(金海金氏) 일문은 조선 시대부터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토평리에 세거해 오고 있다. 특히 무오사화 당시 화를 입은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1464∼1498]을 비롯하여, 16세기 전후 다수의 사림파 인사들을 배출시키며 청도 지역의 명문 사족 가문으로 자리 잡았다. 김일손의 후손들도 청도 지역에 자리 잡으며 탁영 종택(濯纓宗宅)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족세(族勢)를 유지해 오고 있다.
탁영 종택 소장 고문서(濯纓 宗宅 所藏 古文書) 는 김일손 후손들이 생활을 영유하면서 작성 및 수급 받았던 조선 시대 고문서로 현재까지 22점이 전해진다.
[제작 발급 경위]
전해지고 있는 탁영 종택 소장 고문서는 모두 17세기 이후 제작되었으며, 19세기 중반 이후의 것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교지(敎旨)와 시권(試券), 상서(上書) 등의 청원서, 통문(通文) 등이 전해지는데, 과거 시험이나 문중 활동, 추숭 사업 등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김일손의 후손들에 의해 작성되었다.
[구성/내용]
(1) 가락 왕릉 참봉 통문(駕洛王陵參奉通文) : 1712년(숙종 38) 김대(金垈) 등이 김해 김씨 시조묘인 수로왕릉 관리에 관련하여 종중에 보낸 통문이다. 1매에 가로 95.8㎝, 세로 151㎝이다.
(2) 교지 : 1710년(숙종 36) 김우항(金宇杭)을 대광보국숭록대부 행의정부 우의정 겸 세자좌빈객(大匡輔國崇祿大夫 行議政府右議政 兼 世子左賓客)에 임명한다고 국왕이 내린 임명장이다. 1매에 가로 63.7㎝, 세로 55.2㎝이다.
(3) 교지 : 1882년(고종 19)에 국왕이 내린 교지로 유학(幼學) 김창발(金昌潑)의 진사시(進士試) 합격 증서이다. 백패(白牌)라고도 하는데, 이때 김창발은 진사 3등으로 합격하였다. 1매에 가로 44㎝, 세로 80.2㎝이다.
(4) 교지 : 1882년 국왕이 김창발에게 내린 교지로, 김창발을 절충장군 행용양위 부호군(折衝將軍 行龍驤衛 副護軍)에 임명한다는 내용이다. 1매에 가로 68.3㎝, 세로 51.7㎝이다.
(5) 교지 : 1882년 김창발의 품계를 1등 더하여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승급한다는 내용의 교지이다. 1매에 가로 70.3㎝, 세로 52.3㎝이다.
(6) 등장(等狀) : 박정춘(朴廷春), 장대일(張大一), 박취덕(朴就德) 등이 1845년(헌종 11) 청도 군수에게 올린 등장이다. 김일손의 후손 김창윤(金昌潤)의 효성이 지극하니 상전을 내려 주기를 청원하고 있다. 1매에 가로 53.4㎝, 세로 106.5㎝이다.
(7) 상서 : 1720년(숙종 46) 자계 서원(紫溪書院)의 유생 곽홍습(郭泓習) 등이 청도 군수에게 올린 상서이다. 청도군에 자계 서원의 지원을 청하고 있다. 1매에 가로 65㎝, 세로 80㎝이다.
(8) 상서 : 1846년(헌종 12) 자계 서원의 유생들이 경상도 관찰사에게 올린 상서이다. 김일손의 문집 중간(重刊) 사업의 지원을 청원하고 있다. 1매에 가로 124㎝, 세로 86㎝이다.
(9) 상서 : 1864년(고종 1) 이정화(李庭和), 장용규(蔣龍圭), 박용덕(朴龍德) 등이 경상도 관찰사에게 올린 상서이다. 김일손의 봉사손 김창윤의 효성에 대한 포장(襃獎)을 청원하고 있다. 1매에 가로 57.1㎝, 세로 97.2㎝이다.
(10) 상서 : 1892년(고종 29) 김우석(金佑奭), 김창근(金昌根), 김창진(金昌鎭) 등이 청도 군수에게 올린 상서이다. 탁영 종택의 선영(先塋)에 어떤 사림이 투장(偸葬)하였기에 이에 대한 처분을 청원하고 있다. 1매에 가로 50.4㎝, 세로 86.8㎝이다.
(11) 상서 : 1904년(광무 8) 박중평(朴重枰), 박경림(朴瓊林), 이석권(李碩權) 등이 청도 군수에게 올린 상서이다. 김맹(金孟)[1410∼1483]의 향사(享祠)를 청원하고 있다. 1매에 가로 79㎝, 세로 142㎝이다.
(12) 상서 : 1867년(고종 4) 박기주(朴基株), 이귀상(李龜祥), 류재만(柳在萬) 등이 어사(御史)에게 올린 상서이다. 김창윤의 효성에 대한 포장(襃獎)을 청원하고 있다. 1매에 가로 58.7㎝, 세로 107.7㎝이다.
(13) 상언(上言) : 1903년(광무 7) 전 사헌부 장령 김영훈(金永薰)이 국왕에게 올린 상언으로, 1매에 가로 55.0㎝, 세로 104.0㎝이다.
(14) 서목(書目) : 1845년(헌종 11) 동수(洞首) 박(朴)[마멸로 동리는 확인되지 않음]이 청도 군수에게 보고하며 올린 서목이다. 김창윤의 효성에 대해 보고하는 첩(牒)을 올리며 작성하였다. 1매에 가로 32.6㎝, 세로 31.9㎝이다.
(15) 서목 : 1845년(헌종 11) 풍헌(風憲)이 청도 군수에게 올린 서목이다. 김창윤이 효성으로 밭을 지급받는 일을 보고하고 있다. 1매에 가로 32.5㎝, 세로 31.7㎝이다.
(16) 시권(試券) : 1848년(헌종 14) 김창윤이 40세 때 과거에 응시하며 작성한 답안지이다. ‘시(詩)’에 대한 답안으로 성적은 ‘차하(次下)’로 나타난다. 1매에 가로 163㎝, 세로 72.2㎝이다.
(17) 시권 : 1882년(고종 19) 84세의 김창발이 진사시에 응시할 때의 답안지이다. 이때 김창발은 진사 3등으로 합격하였다. 1매에 가로 173.2㎝, 세로 81.5㎝이다.
(18) 시권 : 1884년(고종 21) 76세의 김창윤이 과거에 응시하며 작성한 시권이다. 과목은 ‘책문(策問)’이며, 성적은 ‘차하’로 나타난다. 가로 165㎝, 세로 70.2㎝이다.
(19) 시권 : 1892년(고종 29) 84세의 김창윤이 과거에 응시하며 작성한 답안지이다. ‘시(詩)’에 대한 답안으로 성적은 차하로 나타난다. 1매에 가로 136.5㎝, 세로 70㎝이다.
(20) 지도 : 천안군 갈전면 병천리 도동 서원(道東書院)의 옛 터 부근을 그린 1900년의 지도로, 1매에 가로 53.2㎝, 세로 97.5㎝이다.
(21) 춘추 묘향(春秋墓享) : 춘추 묘향 때의 축문으로, 첩장(帖裝)이며 1매에 가로 79.5㎝, 세로 33㎝이다.
(22) 통문 : 1661년(현종 2) 이광의(李光義) 등 21인이 삼도 수군통제사에게 보낸 통문이다. 자계 서원에 대한 지원을 청하고 있다. 1매에 가로 80.5㎝, 세로 89.8㎝이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 사족들의 존재 양상, 특히 과거 활동과 조상의 추숭 사업 등 신분 유지 등과 관련된 생활 일면을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