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06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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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烈女 |
영어의미역 | Virtuous Woman |
이칭/별칭 | 열부(烈婦),절부(節婦)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장영복 |
[정의]
경상북도 칠곡 지역에서 조선시대에 정절을 지킨 여자.
[개설]
정절녀 혹은 열녀는 위급함을 당하여 목숨으로 정조를 지켰거나 또는 오랜 세월에 거쳐 고난과 싸우며 수절한 부녀자를 말한다. 열녀는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나 있는 법이다. 그러나 신분을 막론하고 과부가 되면 마땅히 수절을 하여야 하고 위기를 당하면 목숨을 바쳐 정조를 지키는 것이 부녀자의 도리로서 정착된 것은 조선시대에 와서이다. 당시에는 열녀들에게 열녀문을 세워주고 그 자손들에게 특혜를 주며 가문에서는 이를 칭송하기 위해 열녀전을 짓는 등 열녀를 강조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다.
[정절윤리의 전파]
우리나라에서 정절 윤리의 흔적은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인열전 3권에 나오는 설화로 인물 설씨녀와 도미(都彌)의 아내 이야기가 함께 나오는데, 신라 제26대 진평왕 때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이후 『고려사(高麗史)』 열전에는 많은 설화를 수록하였는데 대부분 외적의 침입으로 겁탈을 당하게 되자 죽음으로 외적에 항거하는 여인이 많았으며 조선 건국 이후에는 신분을 막론하고 여인의 수절과 목숨을 바쳐 정조를 지키는 것이 부녀자의 도리로 정착하게 되었다. 열녀에 대한 정문(旌門)은 1413년(세종 13) 강원감사 고약해(高若海)의 주청에 의해 정문을 내린 것이 처음이다. 이후 조정에서는 연초에 충신·효자·열녀를 조사하여 왕에게 보고하고 정문을 세워 표창하였는데, 1592년 임진왜란으로 전국에 정절을 지킨 여인들이 많아 356인의 열녀를 선정하여 정문을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칠곡의 열녀들]
팔거현과 인동현의 읍지인 『칠곡지(漆谷誌)』와 『칠곡지리지(漆谷地理誌)』에는 1,114명의 역사 인물이 실려 있는데, 이 중 효·열·부로 이름을 남긴 65인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이들의 행적을 살펴보면 이들은 특히 임진왜란 때는 왜적의 만행에 항거하여 정절을 지켰고, 시부모를 섬김에 효도하고, 지아비를 대함에 공경으로 대했다. 남편이 병들면 하늘에 빌었으며, 남편이 난치병으로 여러 해 고생할 때는 자기 몸을 훼손하여 병을 낫게 하기도 하였으며, 초상을 당함에 같은 날 남편을 따라 순절하기도 했으며, 상례를 마쳤음에도 물고기와 고기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고 머리를 다스리지 아니하고 항상 변고가 생겼을 때 입던 옷을 입었으며, 자신의 몸으로 대신하기를 원했다. 조선 건국 이후에는 신분을 막론하고 여인의 수절과 목숨을 바쳐 정조를 지키는 것이 부녀자의 도리로 정착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칠곡군에서 효·열부로 이름을 남긴 65인을 정리하여 살펴보면 다음의 표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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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군의 효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