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원경
-
고대 남북국시대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초명은 우두(牛頭) 혹은 자두(字頭). 석탈해왕(昔脫解王)의 18세손으로 아버지는 육두품 11관등 내마(柰麻) 석체(昔諦)이다. 강수의 조상은 경상남도 고령의 대가야 출신으로 대가야가 멸망하면서 신라에 귀화한 것으로 보인다. 강수는 중원경(현 충주시) 출신으로 어머니가 꿈에 머리에 뿔이 난 사람을 보고 임...
-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만들어진 건물이나 구조물. 건축 문화는 시대 조건의 반영으로 그 시대에 지역적 특성을 지닌 건축적 총체를 의미한다. 충주의 건축 문화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한반도의 중원이라는 지역적인 특성을 지닌 건축적인 총체라고 할 수 있다. 충주 지역이 중원의 중심이라고 한다면 중원 지역은 제천·단양·청주·보은·진천·원주·영월·여주·안성·영주에 이르는 넓은 공간...
-
기원 전후부터 후삼국시대까지 충청북도 충주시의 역사와 문화. 중국의 『삼국지(三國志)』에는 3세기 한반도 상황이 기록되어 있다. 당시 한반도의 중부와 남부 지역은 마한·변한·진한으로 구분되었으며, 70여 개의 소국(小國)이 있었다. 백제와 신라도 각각 백제국(伯濟國)과 사로국(斯盧國)이란 이름의 소국으로 등장하여 주변 소국들과의 경쟁을 통해 성장하였다. 한국 고대사회는...
-
918년에서 1392년까지 고려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충청북도 충주시 역사. 충주란 고을 이름은 태조 왕건(王建)이 후삼국을 통일한 후 940년(태조 23) 전국의 군·현을 개편하고 주·부·군·현의 명칭을 고칠 때 중원부(中原府)를 고쳐 부르면서 나타났다. 충주란 명칭은 이 지역 인사들이 태봉시대부터 태조 왕건의 우익이 되어 고려를 건국하고 후삼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
충청북도 충주시에 분포하는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의 무덤. 충주는 중원문화권의 중심지로 삼국시대에 백제·고구려·신라에 의해 차례로 영유되었으며, 통일신라시대에는 중원경(中原京)이 설치되었다. 충주에 분포하는 고분은 고대 충주의 역사와 문화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금릉동·용관동 백제 고분군과 대소원면 두정리의 고구려 석실분은 신라가 충주로 진출하기 이전에...
-
충청북도 충주시 금릉동에 있는 문화재 연구기관.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는 경주(신라)·부여(백제)·창원(가야)·나주(호남)에 이어 대전에 본소를 두고 있는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산하의 다섯 번째 지방문화재연구소이다. 충청북도 및 경기도·강원도 일부 지역에 걸쳐 있는 중원문화권의 문화유산에 대한 국가 차원의 조사·연구 및 보존·관리를 담당하기 위하여 2007년...
-
삼국시대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던 고구려의 지명. 국원성은 만주 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하던 고구려가 한반도 남쪽으로 영역을 확장하면서 확보한 거점 지역인 오늘날 충주 지역에 성을 쌓고 붙인 이름이다. 이 지역은 신라가 차지한 후 진흥왕 대에는 국원소경(國原小京)으로, 경덕왕 대에는 중원경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고려가 건국되고 나서 태조에 의해 충주라는 명칭으로 변...
-
신라시대 충청북도 충주시에 설치된 행정구역. 6세기 중엽 신라의 진흥왕은 활발하게 영역을 확장하며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였다. 그 결과 동북쪽으로는 함경도의 마운령과 황초령, 서북쪽으로는 한강 하류지역까지 차지하였다. 557년(진흥왕 18)에는 고구려가 장악했던 국원, 즉 충주 지역에 소경(小京)을 설치하였다. 이듬해 귀족 자제와 왕경(王京) 6부(部)의 부유한 백성을 국원소경으로...
-
통일신라시대 중원경 대윤을 역임한 종친.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위흔(魏昕). 신라 태종무열왕의 9세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이찬을 지낸 김주원(金周元), 할아버지는 소판을 지낸 김종기(金宗基), 아버지는 파진찬을 지낸 김정여(金貞茹)이다. 김양(金陽)은 836년(흥덕 3) 고성태수를 거쳐 중원경(현 충주)의 대윤(大尹)으로 부임하여 선정을 펼쳤다. 이후 무주(현 광주)...
-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겨울철에 먹기 위하여 늦가을 또는 초겨울에 담그는 김치. 충주 지역의 김장김치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전하지 않으나, 고구려 국원경, 신라 중원경으로서 목계를 중심으로 내항이 발달하고 수운으로 소금이 들어와 경상도, 강원도까지 운반된 소금창고가 있었고 겨울이 추운 내륙 지방인 탓에 김장김치가 발달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충주 지역에서는 조선...
-
822년(헌덕왕 14) 3월 웅천주 도독 김헌창이 일으킨 반란 사건. 『삼국사기』에는 “822년 3월에 웅천주 도독 헌창(憲昌)이 그의 아버지 주원(周元)이 왕이 되지 못한 것을 이유로 반란을 일으켰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825년에는 김헌창의 아들 김범문(金梵文)이 고달산(高達山)의 산적 수신(壽神)과 함께 다시 반란을 일으켰으나 곧 진압되었다. 김헌창이 반란을 일으키...
-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무덤. 충주는 신라시대 중원경(中原京)으로 운영된 이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충청도의 중심지로 기능하면서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으며, 많은 인물이 충주에 거주하고 묻혔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기록된 충주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서(徐)·석(石)·최(崔)·유(劉)·강(康)·양(梁)·진(秦)·안(安)·박...
-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문반직과 무반직에 임용된 충청북도 충주 출신 관인. 충주는 국토의 중앙부에 위치하여 일찍부터 군사와 교통의 요지로 중시되어 고구려의 국원성(國原城)과 통일신라의 중원경(中原京)이 설치되었다. 고려시대 이후에도 행정상의 중심지로 충주목(忠州牧)이 설치되어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다. 충주 출신으로 문무관료가 된 인물은 충주목이 오늘날의 음성군과 괴산군 일...
-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입적 승려를 추모하는 묘탑 형태의 조형물. 부도는 고승이 입적한 후 유체를 풍장(風葬) 또는 다비하고 나온 유골이나 사리를 수습하여 봉안하기 위한 기념적인 조형물이다. 부도는 목재·석재·벽돌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여 만들어졌지만 우리나라는 대부분 석재로만 건립되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석조 부도라고 한다. 석조 부도는 기능적인 측면에서 고승의 유골...
-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불교의 예배 대상을 조성한 조각상. 불상(佛像)이란 불교의 교리에 의한 예배 대상을 석재나 금속 또는 흙이나 나무 등의 시각 매체를 통하여 조성한 조각상을 말한다. 엄격한 의미로는 붓다 즉, 여래(如來)의 존상만을 의미하나, 넓은 의미로 보살상·천왕상·명왕상·나한상 등 불교의 모든 예배의 대상을 포함한다. 이들은 재질에 따라 석불·마애불·금동불·철...
-
충청북도 충주시 호암동에서 사천개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충주시 남산초등학교 서편의 하천 부근을 사천개라고 부른다. 「사천개」이야기는 이 하천 부근의 지명유래담이다. 1981년 충주시에서 간행한 『내고장 전통가꾸기』에는 「옛날의 번화가 사천개」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으며, 2002년 충주시에서 간행한『충주의 구비문학』에는 「사천개」라는 제목으로 실...
-
국원성은 고구려가 평양 천도 후 남진을 계속하여 5세기 전반 충주 지역을 점령하고 설치한 수도 다음 가는 부도(副都)였다. 고구려의 남방 경영 책원지이자 신라 공격의 전초기지였다. 충주 고구려비는 이러한 고구려 남진 정책의 성공을 기념하는 비로, 한반도에 남아 있는 유일한 고구려비이기도 하다. 고구려가 충주에 국원성을 설치하여 고구려 영역으로 편입한 것은 충주...
-
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본래 충주군 지역으로, 옛날에 성태양면(省太陽面)이라 칭했으며, 율현리(栗峴里)·덕산동(德山洞)·청룡동(靑龍洞)·무동(武洞)·조기암리(造奇岩里)·부동리(釜洞里) 등의 6개 리로 나누어져 있었다. 조선 중기에는 태양면(台陽面)·태양소내면(台陽小內面)이라고도 불렀으며, 중청동(中靑洞)의 자작에서 해마다 성황제를 올리는 풍습이 전해 오고 있...
-
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충주시의 남동단에 위치한 수안보면은 고구려식의 상모(上芼)라는 지역 명을 쓰다가 2005년 대외적으로 많이 알려진 수안보라는 명칭으로 개편하였다. 수안보온천으로 유명한 고장이며, 월악산국립공원과 사조스키장, 충주호와 중원 문화를 살필 수 있는 문화재 등이 주변에 산재한 천혜의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지형적으로 소백산맥의...
-
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에 신석면(薪石面)의 신(薪) 자와 신니곡면(申尼谷面)의 니(尼) 자를 따서 신니면(薪尼面)이라 하였다. 신니면은 삼한시대에 마한에 속하였고 삼국시대에 백제는 낭자곡성, 고구려는 국원성, 신라는 중원경의 관할이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는 충주목(忠州牧) 관할이었다. 신니면은 개경 또는 한성에서 영남...
-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충청북도 충주의 역사. 지리상으로 한반도의 중앙에 위치한 충주는 선사시대부터 다른 지역에 비해 사람이 살기에 좋은 곳이다. 충주시 용탄동과 조동리 등의 유적과 그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이를 시사해주고 있다. 이들 유적과 유물은 선사 문화의 시원과 이동, 전파 및 취락의 형태를 밝혀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들 선사 유적이 형성된 배경은 어업에 편리...
-
충주를 포함한 중원 지방에는 다른 어떤 지역보다 많은 산성이 분포하고 있다. 이처럼 중원 지방에 산성이 많이 축조된 것은 중원 지방이 한반도의 허리부에 위치하고 있다는 지리적인 중요성에 기인한다. 고대의 고구려·백제·신라는 중원 지방을 장악하기 위해 쟁투를 벌였는데, 중원 지방의 장악은 한반도 지배권의 장악을 의미하고 있었다. 또한 중원 지방은 고대 국가의 가장 중요한...
-
충청북도 충주시 용관동 상용관마을에 있는 고대 산성. 용관동 산성은 충주 방어를 위한 외곽 방어선 중 하나로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산성이 위치한 용관동 상용관마을은 충주시내에서 서쪽으로 달천 건너편에 위치한다. 이곳은 주덕읍에서 시내로 진입하는 국도 3호선과 인접하고 있으며, 산은 높지 않지만 경사가 급하고 산세가 험하다. 산성에서는 달천 동안의 넓은 들판...
-
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도촌리에서 용왕단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충주시 금가면 도촌리와 잠병리 초당마을 뒤에 위치한 태고산에 용왕단이 있는데, 이곳에서 부부가 기도를 올리고 강수를 낳았다고 한다. 「용왕단 전설」은 강수의 탄생 및 결혼 등 그의 일생을 다룬 일종의 영웅담이다. 2002년 충주시에서 간행한 『충주의 구비문학』에 수록되어 있는데, 이는...
-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용전리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대소원면에서 중앙탑면 방면 599번 지방도를 따라 법현마을을 지나면 음달말에 이른다. 이 마을의 북서쪽 해발 116.5m 지점의 남서쪽 사면에 해당한다. 1997년 중부내륙고속국도 건설 예정 구간에 대한 지표 조사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지표 조사 당시에는 둘레 약 6m 정도의 봉분을 가진 돌덧널무덤으로...
-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행해지는 공자의 사상과 관련한 학문과 의례 및 활동 일반. 유교는 공자(孔子) 및 맹자, 증자 등 유가(儒家)의 정치 사상과 학문 수양, 그리고 의례 등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현세적 사상이자 종교이다. 충주에서 유교 문화가 성립, 전개되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인물은 신라 때의 문장가로 유명한 강수(强首)이다. 김생(金生)은 명필로도 유명...
-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음식물을 조리하여 판매하는 가게. ‘식품위생법’시행령 제7조 제8호에서 분류하는 식품접객업으로, 식사류와 술을 판매하는 일반음식점 영업, 주류를 조리하여 판매하고 노래를 할 수 있는 단란주점 영업, 주류를 조리하여 유흥종사자가 판매하는 유흥음식점 영업, 단체 급식을 하는 위탁급식 영업, 휴게음식점 영업 등을 하는 곳을 음식점으로 총칭할 수 있다....
-
충주 출신이거나 충주 지역과 연관이 있는 사람을 ‘충주 사람’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충주는 국토의 중심이었고 예부터 사통팔달의 도시였기에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다. 또한 충주 지역 자체에서 인물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격려하는 풍토가 조성되어 있었음도 한 몫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다른 고장과 비교하여 손색이 없는 면면을 지녔기에 충주를 인물의 고장이라 칭하...
-
중앙탑은 9세기에 접어들면서 옛 백제·고구려 지역에서 등장하는 지방 세력의 반발과 반신라적 민심의 대두를 잠재우고 국가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호국적인 불교의 힘을 빌려 세운 비보적 의미를 지닌 원탑이다. 중앙탑이 충주에 건립된 이유는 그 위치가 신라 영토의 중앙에 해당되어 건탑의 목적을 널리 떨치기에 좋은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점, 그리고 수도 다음가는 소경(小京)이라는...
-
통일신라시대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구역. 6세기경 신라는 고구려가 차지하고 있었던 충주 지역을 빼앗은 뒤 그곳에 국원소경을 설치하였다. 7세기에 접어들어 한반도에서는 고구려·백제·신라 3국과 중국의 당, 일본까지 관련된 격렬한 전쟁이 벌어졌다. 그 결과 신라는 백제를 통합하고 한반도의 중남부 지역을 장악했으며, 고구려는 당에 의해 멸망되고 그 땅에서 발해가 건국되었...
-
1956년 충주읍이 충주시로 승격됨에 따라 1995년까지 읍의 외곽 지역 12개 면을 관할했던 행정구역. 중원군의 인구는 충주시와 분리된 1년 후인 1957년 12월 현재 113,114명이었으며, 1966년에는 153,487명으로 충청북도 내에서도 으뜸가는 거대한 군이었다. 그러나 1993년 말 현재는 주민등록상 18,951가구에 67,749명(남 34,531, 여 33...
-
995년(성종 14)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었던 지방 행정구역.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 태조는 전국을 통일된 국가체제로 다잡기 위하여 지방 행정구역에 대한 일대 개편을 단행하지만 중앙에서 전국을 대상으로 목민관을 파견하지는 못하였다. 이 후 983년(성종 2) 12목이 설치되어 목사가 파견된 데 이어, 995년 7월에 중앙정부에 의한 실질적인 지방통치를 시행하기 위한 목적에서 고려...
-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매년 중원 문화와 관련하여 열리는 학술 행사. 중원 문화라는 말은 충주 지역을 중심으로 한 중원 문화권 지역에 형성되었던 역사·문화·사회·정치·경제 등 모든 상황을 총체적으로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보통 중원이라 하면 중국을 지칭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실은 과거 통일신라시대부터 나라의 중심이라는 개념으로 중원경, 중원소경 등의 지명으로 사용됐...
-
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가신리와 음성군 감곡면 지당리 경계에 있는 터널. 중원터널의 중원이란 이름은 충주의 옛 지명인 중원경에서 따 왔다. 중원터널은 왕복 4차선인 중부내륙고속국도에 폭 23.6m, 길이 988m로 만들어진 왕복 6차선 터널이다. 입구는 아치형으로 만들어졌고, 내부에는 전등과 환풍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편도 3차선 왕복 6차선 터널...
-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에 있는 고대 야철지. 창동리 쇠꼬지 야철지는 문화유적분포지도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창동리 일원을 큰 범위로 표시하여 설정하면서 그 범위가 확대되었다. 창동리 쇠꼬지 야철지는 처음 조사한 야철지의 흔적에 제한하고, 나머지 건물지 등은 충주 창동리 유적으로 구분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된다. 충주에서 탄금대교를 건너 중앙탑면쪽...
-
1979년 김풍식·이재준이 충주 지역 기와 사진을 모아 놓은 도록. 1970년대 초반부터 충주 지역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예성동호회와 청주 지역의 서원학회가 주축이 되어 충청북도의 문화유산을 찾아다녔다. 이들이 모은 자료를 예성동호회와 서원학회 소속의 김풍식·이재준 두 작가가 도록으로 만들어 햇빛을 보게 되었다. 목조 건축에 있어 중요한 위치에 있는 기와는 시대적·사상적 측면을 기초...
-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견학리에 있는 삼국시대 판축 토성. 충주 견학리 토성은 낮은 구릉지역의 끝자락에 축초된 토축성으로 규모가 작은 판축 공법이 적용되었다. 1991년과 2000년 충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2차례에 걸쳐 발굴조사 되었으며, 이를 통해 9세기를 전후한 시기의 특징적인 양상이 확인되었다. 또한 청동기시대의 문화층과 초기 철기시대와 원삼국시기에서...
-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석탑.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은 남한강변에 인접하여 세워졌다. 홍수 등으로 인한 석탑의 붕괴를 막기 위하여 높은 토단을 조성한 다음, 그 위에 대형의 석탑을 건립하였다. 이러한 것으로 보아 건립할 때 상당한 관심과 인력이 동원되었음을 알 수 있다. 칠층석탑 일원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에 걸쳐 지표와 발굴 조사가...
-
고려시대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었던 지방 행정구역. 현재 충청북도 충주 지역은 신라의 중원경에서 고려 940년(태조 23년) 충주(忠州)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충주라는 이름은 이때부터 사용되기 시작하는데, 983년(성종 2년)에 전국에 12목(牧)을 설치하면서 처음으로 이곳에 목(牧)이 설치되었다. 이후 고려의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부분적으로 행정 단위의 명칭이 변경되기도 하였으...
-
충청북도 북부에 위치한 시. 충주시는 중부 내륙 광역권의 거점 도시로 수도권에 인접해 있고 풍부한 용수로 기업하기 좋은 산업 기반이 구축된 도시이다. 국토의 중앙에 위치한 전국 교통망의 중심이며, 남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중원 문화의 중심 도시이자, 충주호와 월악산, 수안보온천·앙성온천·문강온천이 있는 국제적인 관광 도시이다. 충주시를 상징하는 꽃...
-
1985년 충주시와 중원군이 충주 지역 역사와 일반 현황을 정리하여 간행한 향토지. 충주 지역은 고구려 때 국원성, 신라 때 국원소경, 통일신라 때 중원경, 고려 때 전국의 8목 중 하나였으며, 조선시대 전기 충청감영이 설치된 충청도 지방의 중심 도시였다. 그런 만큼 충주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많이 남아 있다. 충주를 다룬 기록으로는 조선시대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
-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는 예배의 주요 대상이 되는 불교 조형물. 탑은 탑파(塔婆)·불탑(佛塔)·부도(浮圖)·솔도파(窣堵婆)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었다. 탑은 재료와 성격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된다. 재료에 따라서는 목탑·전탑·석탑·모전석탑·청석탑·금동탑·동탑·유리탑·철탑 등 다양하다. 성격에 따라서는 불사리탑(佛舍利塔)·표식탑(標式塔)·비보탑(裨補塔)·묘탑[부도] 등...
-
음양오행설을 기초로 충청북도 충주 지역의 땅에 관한 이치를 설명하는 이론. 풍수지리란 산의 배치와 물의 흐름, 지형과 방위, 하늘과 땅의 기운 등을 고려하여 인간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일을 하는 것이다. 풍수지리는 과거 역사 속에서 삶의 터전을 만들어 가는 데 있어 중요한 기준으로 활용되었다. 충주 지역의 풍수지리는 삼국시대부터 언급되고 있으나 자연과 사람을 연결시켜 비교적 자세히...
-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하구암리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중앙탑면 소재지에서 충주 고구려비를 지나면 하구암리로 들어서면 좌우의 산자락과 능선에 하구암리 고분군이 위치해 있다. 하구암리 고분군은 일찍부터 돌방무덤과 돌덧널무덤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최근까지도 도굴이 자행되던 곳이었다. 1992년 충주 누암리 고분군에 대한 지표 조사에서 하구암...
-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공공 문제 해결 및 공공 서비스의 생산·분배와 관련된 지방자치단체의 제반 활동. 행정은 공행정과 사행정으로 나누며, 사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활동인 사행정과 구분하기도 하며, 법적으로 공공 기관의 제반 활동을 대상으로 하거나 정책 집행에 대한 행정부의 활동으로 논하기도 한다. 또한 행정을 중앙과 지방을 구분하여 중앙 행정과 지방 행정으로도 구분할 수...
-
충청북도 충주시의 영역을 국가 행정상의 목적에 따라 나눈 행정 단위. 행정구역은 모든 행정의 기초가 되는 개념일 뿐만 아니라 지역 구분으로 주민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현재 충주시의 행정구역은 13개 읍면과 12개 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2개 동은 다시 26개 법정동으로 나누어져 있다. 행정구역을 나누는 일은 그 지역의 전통과 역사에 근거하고 있다. 그리고 그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