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61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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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却說-打令[西區] |
영어공식명칭 | Gakseori-taryeong|Song of Singing Beggar |
이칭/별칭 | 장타령,품바타령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작품/민요와 무가 |
지역 | 대구광역시 서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서은 |
채록 시기/일시 | 1983년 - 「각설이타령」[서구] 대구직할시 서구 중리동에서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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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록지 | 「각설이타령」[서구] 채록지 - 대구광역시 서구 중리동 |
가창권역 | 대구광역시 - 대구광역시 |
성격 | 민요 |
토리 | 경토리 |
출현음 | 솔|라|도|레|미|솔'|라' |
기능 구분 | 유희요 |
형식 구분 | 독창|제창 |
박자 구조 | 2소박 4박 |
가창자/시연자 | 김분선 |
[정의]
대구광역시에서 전승되는 가창 유희요.
[개설]
각설이는 원래 장터나 길거리에서 「장타령」을 부르면서 구걸하는 동냥아치를 낮추어 부른 말이다. 「각설이타령」[서구]는 바로 「장타령」의 하나이며, 「품바타령」이라고도 한다. 원래는 구걸을 위한 노래였지만,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지금은 대개 가창 유희요로 불리게 되었다.
[채록/수집 상황]
1983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간한 『한국구비문학대계』에 의하면 1983년 대구직할시 서구 중리동[현 대구광역시 서구 중리동] 지역에서 「각설이타령」[서구]이 가창자 김분선에게서 채록되었다. 채록된 음원과 사설 등은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운영하는 한국구비문학대계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구성 및 형식]
원래 「각설이타령」은 각설이패의 노래이므로 제창 형식이나, 일반에 유행되면서 독창으로 불리기도 한다. 박자는 2소박 4박이며 솔·라·도·레·미·솔'·라'가 출현하는 경토리이다.
[내용]
「각설이타령」[서구]는 간략하기는 하지만 1자부터 10자까지의 사설이 모두 불린다. 사설은 다음과 같다.
“시고시고 들어간다/ 어절시고 들어간다/ 언간에 춘절이 나오신다// 일 자나 한 자 들고오 봐/ 일선에 가신 우리 낭군/ 돌아오기만 기다련다// 어허 품바 각설이// 이 자나 한 자 들고오 봐/ 이승만이는 대토옹령/ 아주 가면 무통령// 어허 품바 각설이// 삼 자나 한 자 들고오 봐/ 삼천만의 동포들이/ 해방되기를 고대한다// 사 자나 한 자 들고오 봐// 사천이백팔십팔 년// 해방 소식이 들려온다// 오 자나 한 자 들고오 봐/ 오천만의 괴뢰군이/ 남한 일대를 꿈을 꾼다// 육 자나 한 자 들고오 봐/ 육이오사변에 집 태오고/ 거지 생활로 들어간다// 칠 자나 한 자 들고오 봐/ 칠십 리 밖에 대포 소래/ 인천 시내를 둘러뺀다// 팔 자나 한 자 들고오 봐/ 판문전에 정전 회담/ 아주가가 철론했네// 구 자나 한 자 들고오 봐/ 구인간제 구 년만에/ 구정전이 윈 일인가// 장 자나 한 자 들고오 봐/ 장가가던 첫날밤에/ 소집영장이 윈 일인가/ /어허품바 각설이// 이 각설이가 이래도/ 정승감사 자제로서/ 곗돈양돈을 마다하고/ 한푼 돈에 팔리이서/ 각설이재이가 되였네// 어하품바 각설이// 이 각설이가 이래도/ 한 대목만 빠지만/ 지접자석이 굶는다/ 어 품바 품바 각설아.”
[현황]
「각설이타령」[서구]을 비롯한 여러 「장타령」은 이제 동냥과는 상관없이 공연을 하는 연행자들에 의하여 변형된 모습으로 불리고 있는데, 일반인에게 「장타령」을 널리 알린 계기로는 「장타령」을 소재로 1981년 초연된 연극 「품바」가 대중적으로 크게 인기를 끌었던 것을 들 수 있다. 현재 큰 장이나 각종 행사에서 장타령꾼이 등장하는 공연을 벌이고는 하는데, 이러한 공연 형태를 ‘품바’라고 부르기도 한다.
[의의와 평가]
「각설이타령」[서구]은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 한국전쟁이 일어나는 과정 등의 시대 상황을 숫자풀이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