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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효공 안맹담과 정의공주 묘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0349
한자 良孝公安孟聃-貞懿公主墓表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63-1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은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건립 시기/일시 1463년연표보기 - 양효공 안맹담 묘표 건립
조성|건립 시기/일시 1477년연표보기 - 정의공주 묘표 건립
현 소재지 양효공 안맹담과 정의공주 묘표 소재지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63-1(N37° 39′ 53.406″, E127° 01′ 19.893″)지도보기
성격 유적지|능묘 석물
양식 화관 방부형
관련 인물 안맹담(安孟聃)[1415~1462]|정의공주(貞懿公主)[1415~1477]
크기(높이) 안맹담 묘표 165㎝[총 높이]|정의공주 묘표 165㎝[총 높이]
소유자 사유
관리자 안민영 외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는 조선 전기 세종의 둘째 딸 정의공주와 남편 안맹담의 묘표.

[개설]

연창위(延昌尉) 안맹담(安孟聃)[1415~1462]과 정의공주(貞懿公主)[1415~1477]의 묘표는 안맹담 묘 쌍분 앞에 각각 위치하고 있다. 동쪽이 정의공주 묘표, 서쪽이 안맹담 묘표이다. 둘 다 대리석 재질이고 화려한 형태의 화관 방부형(花冠方趺形)이다.

[건립 경위]

정의공주세종소헌 왕후(昭憲王后) 심씨(沈氏)[1396~1446] 사이의 8남 2녀 중 둘째 딸로 큰딸 정소 공주(貞昭公主)가 일찍 세상을 떠난 탓에 세종의 사랑을 독차지하였다. 또한 성품이 총명하고 지혜로우며 역산(曆算)에 밝아 세종이 그 지혜를 매우 아꼈다고 전하며, 저자도(楮子島) 등 후한 상을 많이 내렸다. 안맹담이 1462년 마흔여덟의 나이로 병사하자 세조는 조회를 2일간 정회하고 애도하였으며, 시호를 ‘양효(良孝)’라 내렸다. 안맹담정의공주의 묘 터는 원래 고려 시대 상장군인 강택(康澤) 묘소가 있던 곳이다.

안맹담이 세상을 떠난 후 주부(主簿) 이승욱(李承旭)이 지금의 묘지인 양주 해동촌 자좌원(子坐原)을 명당으로 지목하자, 정의공주세종의 넷째 아들 임영 대군을 졸라 세조께 아뢰어 강택의 묘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게 하고, 1463년(세조 9) 2월 25일 현 위치에 장례를 치렀다. 현재 이 묘역 일대는 정의공주에게 내려진 사패지(賜牌地)로 죽산 안씨(竹山安氏) 집안의 묘역이다. 안맹담 묘표는 몰년 다음 해인 1463년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정의공주가 세상을 떠난 후 묘를 조성하면서 1477년(성종 8)에 정의공주 묘표를 추가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위치]

도봉산의 한 지맥인 시루봉[증봉] 남쪽 기슭에 안맹담정의공주의 묘가 있고, 그 묘역 안 쌍분 앞에 묘표가 있다. 묘역은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 사거리에서 우이 계곡 입구 방향으로 방학로를 경유하여 가다가 고갯길이 나오기 전 도로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다. 묘역의 서쪽으로는 천주교 공원묘지가 있다. 주소지는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63-1번지이다.

[형태]

양효공 안맹담과 정의공주 묘표는 둘 다 대리석 재질에 화려한 구름무늬를 개석(蓋石)으로 하고 있어 왕친(王親)의 묘임을 드러내고 있다. 폭이 얇고 형태가 가늘고 긴[細長] 편인데, 개석 안에 다양한 구름무늬를 가득 새기고[陽刻], 대석 윗면에는 꽃잎이 밑을 향한 연꽃무늬[伏蓮]를 조각하여 세부 묘사에 충실하였다. 이러한 형태를 화관 방부형이라고 하는데, 경기도 파주시 파평 윤씨(坡平尹氏) 묘역의 윤계겸 신도비 등에서 나타나는 형식이다. 유사한 형식과 양식을 지닌 이 두 묘표는 매우 특이한 형태로, 좌우로 나란히 배치되어 금슬 좋기로 소문났던 두 부부의 모습을 보여 주는 듯하다.

안맹담 묘표의 앞면 가운데에는 ‘유록대부 연창위 시 양효 공 안맹담 지묘(綏祿大夫延昌尉諡良孝公安孟聃之墓)’라고 적혀 있고, 뒷면에는 기록이 없다. 정의공주 묘표의 앞면 가운데에는 ‘정의공주 지묘(貞懿公主之墓)’라고 적혀 있으며 뒷면에는 ‘성화 십삼 년 이월 십일 일 졸 삼월 초 오일장(成化十三年二月十一日卒 三月初五日葬)’이라는 명문이 있어 1477년(성종 8)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안맹담 묘표는 총 높이 165㎝, 개석 55.5×10×40.5㎝, 대석 69.5×37.5×23㎝이다. 정의공주 묘표는 총 높이 165㎝, 개석 55.5×10×41㎝, 대석 75×45×23㎝이다.

[현황]

초장지(初葬地)에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다만, 두 묘표 모두 약한 대리석 재질로 만들었는데, 풍해 등으로 대리석 재질이 벗겨져 많이 약화되었다. 특히 지의류(地衣類) 등의 이물질로 오염되어 변색이 심하게 진행되었고, 마모로 무늬가 명확하지 않다. 정의공주 묘표는 횡으로 절단된 것을 이은 상태이다.

[의의와 평가]

양효공 안맹담과 정의공주 묘표는 15세기 후반기에 유행한 묘비 중 화관 방부형의 전형을 보여 준다. 특히 한 쌍으로 남아 있어 조선 전기 지붕 모양 개석 이전의 묘비 연구에 좋은 자료이다. 아울러 같은 묘역에 있는 1466년(세조 12) 제작된 안맹담 신도비는 왕릉을 제외한 사대부 묘에서 최초로 이수 귀부형 신도비가 조성된 예로 왕실에서 관여하여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묘표도 조선 사대부가 중 왕실 예장과 관련되어 조성한 비석 연구에 중요한 묘표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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