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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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다식리에서 고아읍 및 다식동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7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출간한 『한국구비문학대계』 구미시·선산군 편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 현재의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다식리의 한 마을에 큰 연못이 있었는데 연못에서 나는 연밥을 임금한테 진상하였더니 ‘임금이 많이 먹고 배가 불렀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다식동이라 불렀다 한다. 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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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노상직이 경상북도 구미시의 금오산을 지날 때 길재를 추모하며 지은 한시. 노상직은 경상남도 김해시 생림면 금곡리에서 태어났다. 생부는 극재 노필연인데 후에 숙부인 우당 노호연의 양자가 되었다. 5세에 『효경』을 배우기 시작해 12세 때 사서삼경을 다 읽었다. 15세 때 향시에 응시했으며 17세 때 당시 김해부사인 박원석이 고을의 자제들을 모아 하과(夏課)를 실시하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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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대 한국에 들어온 외국 선교사들은 평양과 서울, 제물포(인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 지역에 비해 영남 지역의 복음 전파는 상대적으로 늦은 편이었다. 영남 지역을 책임지고 있던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는 오늘의 부산·경남 지역(밀양 제외)을 1899년 10월 호주 장로교 선교부에 이양하고, 대구·경북 지역 담당 북장로교 선교지부를 경상감영이 있었던 대구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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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운동 시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 구미 지역의 3·1운동은 3월 12일 진평동에서 시작되어 약 한 달 동안 전개되었다. 진평동 독립만세운동은 3월 12일부터 14일까지 3일 동안 4차례에 걸쳐 적게는 20~30명에서부터 많게는 200여 명이 참여했으며, 체포되어 6개월 이상 감옥 생활을 한 인사만도 25명이나 되었다. 또 4월 3일 해평면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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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황상동에 속하는 자연마을. 검성곡(劍城谷)은 곽재우가 왜적을 물리친 곳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검소하게 사는 곳이라는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예전에 이곳에 금광이 있어서 금성곡(金城谷)으로도 불렸다고 하는데, 마을 사람들은 금이 많이 나왔던 곳이라고 하여 지금도 금성골이라고 부른다. 마을 앞에 뜨발등이라 불리는 작은 앞산이 있고, 동쪽은 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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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광평동에 있는 대한배구협회 산하 경상북도 지부. 배구 보급의 활성화를 통하여 지역민들의 체력 증진 및 활기찬 여가생활 영위에 기여하고 나아가 밝고 명랑한 지역 시민 사회의 건설에도 이바지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1946년부터 경상북도 배구협회가 대구·경북 지역 일원의 관련 사업을 전개해왔으나 1981년 대구 지역을 관할하는 협회가 별도로 분리되어 나갔다. 이후 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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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이루어지는 재화·용역의 생산·분배·소비와 관련되는 활동. 과거 구미는 선산군 중심의 농업이 산업의 주축이었으나, 1970년대 초 정부의 수출드라이브 정책에 힘입어 구미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되면서 내륙 최대의 첨단 수출 산업단지를 보유한 도시로 발돋움하였다. 2007년 기준으로 구미시에는 구미1공단·구미2공단·구미3공단·구미4공단을 포함한 구미국가산업단지, 고아농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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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를 연결하는 교통망과 교통 현황. 구미시는 동남쪽으로는 칠곡군, 서쪽으로는 김천시, 북쪽으로는 상주시, 동북쪽으로는 군위군과 의성군에 접하고 있는 경상북도 서남부 지역의 중심 도시이다. 역사적으로 구미시는 경상북도 서남부 지역의 경제 중심지이고, 경부선 철도 및 경부고속국도가 통과하여 경상북도의 북부 지방과 연결해주는 교통의 결절지이다. 대구와 대전을 연결하는 경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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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낙산리에 있는 통일신라 때의 삼층석탑. 구미 낙산리 삼층석탑에 관하여는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에 “해평면 낙산동 전체 높이 4간반 기석 2간반각의 삼층석탑 조각이 정교 완전함[海平面 洛山洞 全高 四間半 基石二間半角ノ 三重石塔ニ ヅテ彫刻 精巧 完全ナリ]”이라는 기록이 보인다. 이 일대의 경작지에서 연꽃 무늬가 새겨진 막새기와를 비롯하여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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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상송리 수다사에 있는 조선 후기 아미타여래좌상. 연악산(淵岳山) 수다사는 830년(흥덕왕 5) 진감선사에 의하여 개창되었다. 그 후 976년(경종 1) 화재로 인하여 건물이 소실되고 극락전과 청천료만 남았다. 다시 1185년(명종 15) 각원대사에 의하여 대대적인 불사가 이루어졌다. 그 후 1273년(원종 14) 수해로 인하여 대부분의 전각이 유실되었고,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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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공단동 일원에 있는 구미국가산업단지 중 제1단지. 구미국가산업단지 조성의 시발이라 할 수 있는 구미1공단 조성은 처음부터 2개의 사업주체가 구심점이 되어 시작하였다. 경상북도가 주체가 되어 1970년 1월 1일에 제정된 「지방공업개발법」에 따라 섬유업종을 중심으로 하는 일반단지가 조성되었고, 한국전자공업공단이 주체가 되어 「전자공업육성법」에 따라 전자업종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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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공단동과 산동읍, 칠곡군 석적읍 일원에 걸쳐 있는 국가산업단지. 6·25전쟁 후 완전히 피폐하였던 국가 경제를 살리려고 4·19민주주의혁명과 5·16군사정변 이후 개혁적 사회분위기 속에서 정부는 강력한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하게 된다. 외자 유치를 통해 경제개발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데 한계를 느낀 정부는 수출지원에 중점을 두는 경제 정책을 수립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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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신평동에 있는 구미시·김천시·상주시·성주군·칠곡군·고령군·군위군의 소상공인 지원기관. 구미소상공인지원센터는 소상공인 시장 진흥 공단 산하 대구경북지역본부의 지역 소상공인지원센터로, 같은 권역 내 소상공인지원센터가 대구 2개소, 포항·구미·김천·안동·경산·경주에 각 1개소가 설치되어 있다. 소상공인에 대한 창업, 경영 상담 및 자금 지원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소상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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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서남부에 위치한 공업 중심 도시. 구미시는 경상북도의 중앙부로부터 서남부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이다. 극동은 장천면 명곡리 산 54번지이며 극남은 오태동 산 59번지, 극서는 무을면 안곡리 산 57번지이고 극북은 옥성면 구봉리 산 13번지이다. 동서 간의 연장 거리는 33.8㎞이고 남북 간의 연장 거리는 33.4㎞이다. 구미시는 동남쪽으로는 칠곡군, 서쪽으로는 김천시, 북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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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권경보는 3·1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을 때, 이상백 등과 함께 진평동의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7일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 이영식(李永植)이 독립선언서 20매를 가져와 마을의 유지 이상백 등에게 전달하였는데, 권경보는 이상백 의 만세 운동 권유를 받아들여 거사일을 3월 12일로 정하고, 3월 11일에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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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권영해는 3·1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을 때, 이상백 등과 함께 진평동의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7일 대구 계성학교 학생 이영식(李永植)이 독립선언서 약 20매를 가지고 진평동에 사는 이상백(李相柏)의 집으로 찾아왔는데, 권영해는 이상백의 권유를 받고 이범성(李範成)·이내성(李乃成)·이영래(李榮來)·임점석(林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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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이후부터 현대까지 경상북도 구미시의 역사. 구미 지역은 1895년 지방제도의 개편 때 선산군·인동군으로 설립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선산군은 선산면과 고아면으로 분리되고, 인동군은 폐지되어 칠곡군에 병합되었다. 해방 후 1963년 선산군의 구미면이 구미읍으로 승격되었고, 1978년에는 구미읍과 인동면이 통합하여 구미시로 승격하면서 선산면에서 분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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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1년을 주기로 하여 반복되는 대기 현상. 구미시는 수리적으로 동쪽은 동경 128°34′00″ 북위 36°06′13″, 서쪽은 동경 128°08′06″ 북위 36°15′48″, 남쪽은 동경 128°21′25″ 북위 36°04′58″, 북쪽은 동경 128°15′58″ 북위 36°21′34″에 위치하고 있다. 경상북도의 서남부에 위치하고 있는 구미시는 동남쪽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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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도길(金道吉)은 1919년 3월 14일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에서 전개된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진평동의 만세 운동은 1919년 3월 7일 대구 계성학교 학생 이영식(李永植)이 독립선언서 20매를 가져와 마을 유지 이상백(李相柏)과 상의하면서 추진되었다. 이상백과 김도길 등은 3월 12일 오후 8시 200여 명의 주민들을 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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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동석(金東錫)은 호가 매암(梅巖)이며, 순충공(順忠公) 김선궁(金宣弓)의 32세손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장사랑 김지복(金志複)이고, 증조할아버지는 호조참판 김기열(金基烈)이다. 할아버지는 숭인전참봉 김진규(金鎭奎)이며, 아버지는 농산중추원참의관 김희수(金熙洙)이며, 어머니는 단양장씨(丹陽張氏) 장옥선(張玉善)이다. 김동석은 대구협성학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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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낙동강 수계의 수질 개선 및 주민지원사업의 효율적 추진을 위해 제정된 법률. 1996년 대구의 위천국가공단 조성계획으로 인한 수질 오염의 가능성을 둘러싸고 낙동강 상류 지역인 대구와 하류 지역인 부산·경상남도 지역 간에는 격렬한 의견 대립이 발생하였다. 이후 치열한 갈등을 거쳐 2002년 1월 14일 「낙동강 수계 물 관리 및 주민지원 등에 관한 법률」(약칭 낙동강특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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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낙산리는 사기점, 대문동, 하도, 중리, 원촌, 칠창, 여진 등 일곱 개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사기점은 숭신산성 아래에 있는 마을로 천주교도 박해 때 신도들이 이곳에 피신하여 사기를 만들어 붙여진 이름이다. 대문동은 조선 선조 때 홍문관교리를 지낸 경암 노경임(盧景任, 1569~1620)이 이곳에 대궐 같은 큰 집을 지었는데, 대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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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임금 노동자가 생활 조건을 유지, 개선하기 위해 벌이는 조직적인 운동.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약칭 민주노총)이 합법화됨에 따라 우리나라 노동운동계는 양대 노총으로 조직 분화가 이루어졌다. 두 노총은 노동자들의 구체적인 요구를 반영한 노동운동 과정에서 노동운동의 방향성이 동질화하는 면이 엿보이고 때로는 공동보조를 취하기도 하였다. 노동운동은 산업사회의 성숙과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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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금호리에 있던 돌섬. 위로는 냉산(冷山) 웅봉(雄峰)이 굽어보고 아래로는 매학정(梅鶴亭)을 바라보는 녹전암은 옛날 모든 장사꾼들이 부산과 대구 등지에서 상품을 배에 싣고 상주·안동 방면으로 올라오다가, 이곳에 와서 돛을 풀고 물귀신에게 순풍을 빌며 뱃길이 무사하기를 제사 지냈다는 곳이기도 하다. 또 귀양지로서 충신암이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나 오늘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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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신천동에 있었던 구미 지역을 포함한 경북 지역을 대상으로 활동했던 지역사회발전 추진기관. 2004년 5월 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가 전국 최초로 행정구역의 경계를 넘어 생활·경제공동체를 출범하였다. 이에 따라서 대구경북지역혁신협의회는 중앙과 지방의 의사소통 창구기능, 지역혁신발전계획 심의, 각종 워크숍과 토론회 개최를 통한 지역사회의 혁신분위기 확산과 공공기관 유치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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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월호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해평현이 있을 때 관가의 큰 창고 60채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창고는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옛날에는 태인경씨, 영양오씨 등 몇 가구가 살고 있었으며 임진왜란 이후에 번창한 마을이라 한다. 해평면의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형도에는 대창걸로 표시되어 있다. 도문동에서 시작하여 낙동강에 직접 연결된 도문천(너비,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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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황상동에 있는 배터리 제조업체. 델코는 1985년 5월 한미 합작 투자 계약을 체결하고 같은 해 10월 한국델코전지로 설립되었다. 1986년 12월 구미공장(본사)을 준공하였으며, 1995년 4월 (주)델코로 상호를 변경하였다. 델코는 세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배터리 제조업체로 전제품을 전해액 회수를 극대화한 기체 액체 분리 구조와 칼슘 합금으로 만들어 수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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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구미 청소년 야영장이 위치한 뒷개들의 맨 위쪽에는 고려시대에 조성하여 수해의 근심을 막았다고 하는 소나무 숲 ‘해평장림’이 있다. 마을주민들은 ‘뒷개솔숲’이라고도 부르는데, 뒷개들에 있는 소나무 숲이라는 뜻이다. 『선산부읍지(善山府邑誌)』 임수조(林藪條)에는 ‘해평수(海平藪)’라고 소개되어 있으며, 고려시대 정승 윤석(尹碩)이 솔씨를 뿌려 숲을 만들어서 수해의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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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세계를 올곧고 비옥하게 가꾸며 사는 것은 아름답다. 더구나 남들이 근접하기 어려운, 가치 있는 것을 위해 한평생을 바치는 일은 아름답다 못해 숭고하다. 판소리 명창 가운데 이런 삶을 살았던 명창이 적지 않지만 근래의 명창 중에서 박록주만큼 그렇게 산 이도 흔치 않다. 수많은 소리꾼 중에서 어떤 소리꾼을 명창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적어도 다음과 같은 조건을 두루 갖추어야 명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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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6월 최재화가 주동이 되어 경상북도 청년들을 만주 신흥무관학교로 보낸 사건. 3·1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각지의 뜻있는 인사들은 새로운 투쟁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다. 해평 산양리의 최재화(崔載華, 1892~1962)는 1919년 4월 2일 밤 동민들을 이끌고 고향인 해평경찰서(海平警察署) 주재소(駐在所)를 습격하였다. 또한 대구로 나가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 김수길(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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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 및 작품. 구미는 1995년 선산군과 구미시가 통합되어 오늘날의 구미시가 되었으며, 1970년대 이후 급격한 도시화·산업화의 길로 나아간 한국 사회의 변화에서 가장 중심에 있는 대표적 도시이다. 따라서 구미라고 하면 산업과 경제를 떠올리기는 쉽지만 문화나 문학을 연상하기는 어렵다. 이런 연유로 인근의 경주, 포항,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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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평이라는 지명은 신라후기부터 사용되었는데, 그 전에는 파징(波澄)이라고 하였다. 큰물이 났을 때 주산인 갈마산에 올라 보면 사방이 물로 가득하여 마을 전체가 마치 바다를 이룬 것 같았다고 한다. 다시 물이 빠졌을 때는 들판 역시 바다 크기만 하였을 것인데, 그런 맥락에서 마을 이름도 예로부터 해평(海平)이라고 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주민들은 자신들이 사는 곳이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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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박근술(朴根述)은 1919년 3월 12일과 3월 14일 두 차례에 걸쳐 칠곡군 인동면(仁同面)에서 이상백(李相柏)을 비롯한 주민 3백여 명과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인동면 진평동에서의 만세 운동은 3월 7일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 이영식(李永植)이 선언서 20매를 이 마을의 유지 이상백에게 전달하면서 추진되었다. 이들은 거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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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박명언(朴明彦)은 1919년 칠곡군 인동면(仁同面) 진평동에서 이상백(李相柏)을 중심으로 이영식(李永植)·이내성(李乃成) 등과 함께 독립 만세 운동에 참가하였다. 1919년 3월 7일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 이영식은 독립선언서 20매를 가지고 이상백을 찾아와 동지를 모이게 하여 상의하고 태극기를 만들었다. 박명언은 마을에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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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구미 출신의 유생이자 의병장.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명술(明述), 호는 와유당(臥遊堂)·소암(巢巖). 용암(龍巖) 박운(朴雲)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건재(健齋) 박수일(朴遂一)이며 어머니는 평양조씨(平壤趙氏) 인의(引儀) 조인복(趙仁復)의 딸이며, 장인은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이다. 박진경은 1596년(선조 29) 16세에 장인 장현광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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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종교인. 박태희는 옥계교회를 설립한 박용하의 12남매 자녀 중 여덟째(아들로는 셋째)로 태어났다. 처는 박태희보다 7살 아래로 옥계교회에서 분가해 나간 성전교회의 신자였으며 장모가 그 동네에서 처음으로 교회를 다녔을 만큼 신앙이 깊은 집안에서 자랐다. 형제 중 맏아들과 차남이 옥계교회의 장립집사이고 셋째 아들이 서리집사이며, 맏사위가 상모교회 장로이고, 막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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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호리의 전문적인 축산업은 1970년대 정부로부터 젖소를 불하받아 처음 시작하였다. 이후 1990년대 초중반 김창용, 김기용, 김정록, 김교철, 김호익 씨 등이 본격적으로 축산업에 발을 디뎠다. 현재 김창조, 김경묵, 김창용 씨는 고령으로 은퇴하고, 김교철 씨는 젖소에서 한우로 변경하였고, 가구당 젖소의 사육두수는 김기용 씨 100두, 김정록 씨, 김호익 씨 50두의 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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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8월 6·25전쟁 시 국군이 북한군의 낙동강 도하(渡河)를 저지하기 위해 비산진에서 벌인 전투.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은 6월 28일 수도 서울을 점령하고, 7월 20일 대전(大田)을 장악한 뒤, 8월 15일까지는 낙동강 선을 넘으려는 작전을 계획하였다. 따라서 7월 말 북한군 제15사단(총병력 약 5,000명)은 낙동강으로 진출하기 위해 상주(尙州) 정면에서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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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은 여러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주로 ‘새올(월)’로 불린다. 신곡(新谷)은 신동 마을 전체를 이르는 또 다른 이름이다. 새로운 골을 이루었다는 뜻이다. 마을 안에는 못둑마, 웃마와 아랫마, 가리마, 새마 등의 작은 마을들이 자리하고 있다. 동쪽으로 칠곡군(漆谷郡) 가산면(架山面)과 경계한 구미시의 최동단 마을이다. 서쪽으로 구평동(九坪洞)과 접하고 있으며 행정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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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3·1운동이 일어나자 진평동에서 애국지사들은 만세 시위를 결의하였는데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대구 계성학교 학생이던 이영식이 「기미독립선언서」 20매를 가지고 이상백의 집을 찾아가 취지를 설명하고 이범성, 이내성(李乃成) 등과 만세 시위를 모의하였다. 여기에 동리 유지들이 동참하여 3월 12일에 거사하기로 하고 「기미독립선언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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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3·1운동이 일어나자 진평동에서도 만세 시위를 결의하였다. 대구 계성학교 학생이던 이영식이 「기미독립선언서」 20매를 가지고 이상백의 집을 찾아가 취지를 설명하고 이범성, 이내성(李乃成) 등과 만세 시위를 모의하였다. 여기에 동리 유지들이 동참하여 3월 12일에 거사하기로 하고 「기미독립선언서」를 필사하고 태극기를 만든 뒤 거사 당일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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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산이 양반 고을은 양반 고을인 모양이다. 온전히 체신 지키면서 살아갈 마땅한 곳 없어 삶터 찾아 헤매던 안동 양반들이 선산 땅을 알아보고 영주지로 자리 잡았으니 말이다. 안동 양반들이 찾아든 양반 고을 선산 땅 한편에서는 공업단지를 만든다고 붙박이로 살던 양반마을 사람들을 통째로 쫓아내는 일도 있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역사적으로 타의에 의해 강제로 이사 간 사례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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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산을 본관으로 하여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 살았던 성씨. 선산은 신라 눌지왕 때 일선군(一善郡)이라 칭하였고, 614년(진평왕 36) 주(州)로 승격되었지만 687년(신문왕 7)에 폐지되었다. 757년(경덕왕 16) 숭선군(崇善郡)으로 이름을 고쳤으며, 995년(성종 14)에 다시 선주(善州)로 고쳤고, 1018년(현종 9) 상주의 속주가 되었다. 1143년(인종 21)에 일선현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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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 있는 행정구역. 조선시대 태종 때부터 불린 이름으로, 고을에 도적이 없고 인심이 좋아 살기 좋은 곳이므로 선산이라 하였다. 신라시대에 일선주·숭선군, 고려시대에 선주부, 조선시대에 일선현·선산군 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동내방(東內坊)·독동방(禿同坊)·무래방(舞來坊)·서내방(西內坊)을 통합하여 선산면이 되었다. 1979년 5월 선산읍으로 승격하였고, 1983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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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4월 12일 경상북도 구미 선산장터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 3·1운동은 일제하 최대의 항일 민족항쟁으로 전국 각지에서 독립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선산에서는 선산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3월 13일 만세 계획이 있었으나 실패로 끝나고 4월 12일 권오환(權五煥)을 중심으로 선산장터에서 만세운동을 벌였다. 경상북도 지역에서는 3월 8일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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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천연섬유와 합성섬유 및 섬유 가공품을 생산하는 산업. 섬유산업은 면사방적·견사방적·제사·연사·제강·직물·메리야스·봉제·끈·로프·레이스 및 제망까지를 포함한다. 천연섬유에는 면섬유·모섬유·견섬유·마섬유 등이 있으며, 천연섬유소를 화학적으로 처리하여 만드는 레이온·아세테이트 등 인조섬유와 석탄·석유·물·공기 등으로 합성하는 나일론·비닐론·테트론 등 합성섬유를 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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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신평2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자기의 장단점을 깨닫고 장점을 키우는 어린이, 자기 학력 수준을 깨닫고 열심히 탐구하는 어린이, 자기 건강을 깨닫고 계속 운동하는 어린이, 자기 소질을 깨닫고 계속 키우는 어린이, 미래 사회를 깨닫고 항상 대비하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밝게 깨닫고 바르게 행하는 신기 어린이’이다. 1988년 3월 1일 신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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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공단동에 있는 전자 악기 제조업체. (주)아리아는 1950년 로얄산업공사로 설립되어 오르간을 생산, 시판하면서 탄생하였다. 1960년 대구공장을 준공하였으며, 1962년 홍콩에 아리아 오르간을 수출하였다. 1976년에는 자유중국 대리점을 개설하였다. 1977년 아리아악기제조(주)로 상호를 변경하고 서울 지점을 설립하였으며, 1979년에 대지 21,157.12㎡의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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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용산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대구 팔공산의 지맥인 만경산에서 내려다 보면 낙동강으로 둘러싸인 마을이 한송이 연꽃이 물위에 떠 있는 것 같아 연산(蓮山)이라고도 하고 만경산 지맥의 낮은 산이 가산리를 거쳐 낙동강까지 이어졌다고 연산(連山)이라고도 한다. 옛날에는 의성군 단밀면에 속해 있었으나 1987년에 선산군으로 편입되었고 현재는 구미시 도개면 용산리이다. 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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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의 대표적 의병장 허위는 경상북도 구미시 임은동 출신이다. 한말과 일제강점기를 통해 허위 가문은 수많은 항일운동가를 배출하였다. 허위의 맏형 허훈은 진보의진의 창의장이었고, 셋째 형 허겸은 형과 아우를 도와 의병 투쟁에 참여하였다. 1910년 국권 상실 이후에는 허겸·허형·허필은 그 일가를 이끌고 만주와 노령으로 망명하여 항일 투쟁을 계속하였다. 허위는 한말에 거유(巨儒)로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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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봉곡동에 있는 원불교 구미 교당. 원불교는 1916년 전라남도 영광에서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이 개창한 불교 계통의 신흥 종교이다. 우주의 근본 원리인 일원상(一圓相)의 진리를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삼는 종교로, 진리적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을 통하여 낙원 세계를 실현시키려는 이상을 내세우고 있다. 1977년 성정재 교무가 구미에 거주하며 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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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원평동에 있는 천주교 대구대교구 소속 성당.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 때 천주교 신자들이 전국의 산골로 숨어들었는데, 이들이 모여서 살게 된 신자촌이 영남 지역에만 일곱 곳이 있었다고 한다. 1827년에는 대구 지역을 포함하여, 모두 68개의 신자촌이 영남 지역에 자리 잡게 되었다. 이때 상주 지역에서 대구 지역 사이의 길목에 터를 잡은 곳이 여진공소이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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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속하는 법정리. 태인경씨, 영양오씨 몇 가구가 살다가 임진왜란 이후에 번창한 마을로 대창걸, 어리게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대창걸은 해평현 때에 관가의 큰 창고가 60여 채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창고는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되었다. 어리게는 남평문씨가 개척한 마을이다. 2009년 1월 현재 면적은 2.83㎢이며, 총 189가구에 467명[남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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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소리를 소재로 하여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나타내는 예술 활동. 음악에 사용되는 소리 소재는 모든 음이 해당된다. 서양 음악에서는 맑은 음을 추구하며, 우리나라를 비롯한 민속 음악에서는 소음이 주가 된다. 소리 소재는 그대로 음악이 되는 것은 아니며, 어떠한 형식과 법칙에 의해서 조합해서 사용된다. 음악은 시대나 민족에 따라 다양한데, 그것은 각기 그 시대나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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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낙산리 의구총 일선교에서 대구로 오다가 일선리를 지나자마자 국도변인 구미시 해평면 낙산리 148번지에는 잘 정비된 의구총(義狗塚)이 있어 사람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이 의구총에는 다음과 같이 주인을 살리고 죽은 의로운 개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전 연향(延香, 현 구미시 해평면 낙산리)에 노성원(盧聲遠)이라는 우리(郵吏, 지금의 우체부)가 살고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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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호가 이문댁이다. 구미시 상모동에 있는 이문동이라는 마을에서 시집와서 그렇게 부른다. 택호는 마을 어른들이 지어주었다. 동네에 시집오면 친정 동네 이름에 따라 택호를 지어준다. 새댁일 때는 내 택호를 부르지 않고 시어머니 택호를 불렀다. 사람들이 날 ‘사남댁이 새댁’이라고 했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부터 내 택호를 불렀다. 엄마 얼굴도 모르고, 언제 돌아가셨는지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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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경상북도 구미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상백(李相栢)은 1919년 3월 12일 인동면(仁同面) 진평동의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동하였다. 당시 인동교회의 목사로서 대구 서문외(西門外) 시장의 독립 만세 운동을 계획하고 3월 7일 이곳에 온 대구 계성학교 학생 이영식(李永植)과 만나 독립선언서 20매를 전해받고 함께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동하기로 결심하였다. 이상백은 자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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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대구 계성학교 학생이던 이영식은 「기미독립선언서」 20매를 가지고 인동면 진평동에 있는 이상백의 집을 찾아가 취지를 설명하고 이범성, 이내성(李乃成) 등과 만세 시위를 모의하였다. 여기에 동리 유지들이 동참하여 3월 12일에 거사하기로 하고 「기미독립선언서」를 필사하고 태극기를 만든 뒤 거사 당일 오후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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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3·1운동이 일어나자 진평동의 애국지사들은 만세 시위를 결의하는데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대구 계성학교 학생이던 이영식이 「기미독립선언서」 20매를 가지고 이상백의 집을 찾아가 취지를 설명하고 이범성, 이내성(李乃成) 등과 만세 시위를 모의하였다. 여기에 마을 유지들이 동참하여 3월 12일에 거사하기로 하고 「기미독립선언서」를 필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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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임용의 자는 종식(鍾植), 호는 월호(月湖)이다. 아버지는 이희원(李希元)이다. 이임용은 대구 계성학교를 졸업하고 칠곡공립보통학교에서 3년간 교직 생활을 하다가 대구 동산병원으로 직장을 옮겨 4년간 근무하였다. 1919년 3월 8일 대구 서문시장 장날을 기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하고, 김수길·이영식·이영옥·김삼도 등과 함께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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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인의동에 있는 천주교 대구대교구 소속 성당. 1905년경 인동 지역의 가실방씨 중 한 사람인 방우영(다두)이 서병조의 권유로 대구 계산성당에서 영세를 받게 되었으며, 영세를 받은 후 고향으로 돌아와 아버지 방세종(아가비도)과 할아버지 방사권(베드로) 등 가족들을 권면하여 방씨 일가 10여 가구가 당시 왜관의 가실성당에서 영세를 받게 되었다. 그 후 할아버지 방사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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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황상동에 있는 재래시장. 인동시장은 오일장으로 황상동 지역에 상가가 들어서기 이전부터 장이 활성화되었으며, 1987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1989년 3월에 현대식으로 시장 건물을 완공하고 상설시장을 개장하였다. 인동시장은 부지 면적 3,541㎡에 건축 면적 5,932㎡로 이루어져 있으며, 4개 동의 상가와 268개의 점포로 구성된 상설시장이다. 매월 2·7·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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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 지역의 지표와 연계되어 나타나는 인문적 사상(事象)들. 구미시는 경상북도의 중앙부로부터 서남부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이다. 극동은 장천면 명곡리 산 54번지이며 극남은 오태동 산 59번지이며 극서는 무을면 안곡리 산 57번지이며 극북은 옥성면 구봉리 산 13번지이다. 동서 간의 연장 거리는 38.8㎞이고 남서 간의 연장 거리는 33.4㎞이다. 구미시는 동남쪽으로는 칠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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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궁을 시조이자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구미시 세거 성씨. 일선(一善)은 선산의 옛 이름으로, 신라 눌지왕 때 일선군이라 칭하였고, 614년(진평왕 36) 주(州)로 승격되었지만 687년(신문왕 7)에 폐지되었다. 757년(경덕왕 16) 숭선군(崇善郡)으로 이름을 고쳤으며, 995년(성종 14)에 다시 선주(善州)로 고쳤고, 1018년(현종 9) 상주의 속주가 되었다. 114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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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3·1운동이 일어나자 진평동의 애국지사들은 만세 시위를 결의하는데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대구 계성학교 학생이던 이영식이 「기미독립선언서」 20매를 가지고 이상백의 집을 찾아가 취지를 설명하고 임삼선, 이범성, 이내성(李乃成) 등과 만세 시위를 모의하였다. 여기에 마을 유지들이 동참하여 3월 12일에 거사하기로 하고 「기미독립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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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용섭은인동면(仁同面) 진평동에서 이상백, 이내성(李乃成) 그리고 대구(大邱)에서 온 이영식(李永植)과 함께 독립 만세 운동을 계획하고 「기미독립선언서」를 필사하고 태극기를 만들어 동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1919년 3월 14일 마을 뒷산에 모인 시위 군중 200여 명과 함께 태극기를 들고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인동주재소로 행진하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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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4월 8일 경상북도 구미시 임은동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 3·1운동은 일제하 최대의 항일 민족항쟁으로 전국 각지에서 독립만세시위가 일어났다. 한말 의병장 허위(許蔿)의 출신지인 구미시 임은동은 항일의 기풍이 강한 곳으로, 1919년 4월 8일 강용준(姜龍俊)·유시동(劉時東)을 중심으로 독립만세운동을 벌였다. 경상북도 지역에서는 3월 8일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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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점석은 진평동 독립 만세 운동의 주동자로 진평동의 만세 시위를 결의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대구 계성학교 학생이던 이영식이 「기미독립선언서」 20매를 가지고 이상백의 집을 찾아가 취지를 설명하고 이범성, 이내성(李乃成) 등과 만세 시위를 모의하였다. 여기에 마을 유지들이 동참하여 3월 12일에 거사하기로 하고 「기미독립선언서」를 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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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두경(斗卿), 호는 임졸재(任拙齋).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며 극명당(克明堂) 장내범(張乃範)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만회당(晩悔堂) 장경우(張慶遇), 아버지는 선교랑(宣敎郞) 장원(張厡)이다. 형으로 장우주(張宇柱), 장우상(張宇相)이 있다. 장우추는 당시의 인동도호부(仁同都護府)에서 태어났다. 1679년(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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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장주서는 1919년 3월 12일과 3월 14일 두 차례에 걸쳐 경상북도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이상백(李相柏)을 비롯한 주민 3백여 명과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3·1운동이 일어나자 대구의 계성학교 학생이던 이영식이 「독립선언서」 20매를 가지고 이상백의 집을 찾아가 취지를 설명하자, 이상백(李相栢)·이범성·이내성·이영래 등이 적극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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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0년 조선이 일제에 강점될 때 이상백(李相栢)·이범성·이내성 등은 경상북도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 살고 있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대구의 계성학교 학생이던 이영식이 「독립선언서」 20매를 가지고 이상백(李相栢)의 집을 찾아가 취지를 설명하자, 이상백(李相栢)·이범성·이내성·이영래 등이 적극적으로 찬동하였다. 동리의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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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에 경상북도 구미에서 활동한 언론인이자 학자. 장지연은 1864년(고종 1) 경상도 상주목 목내면 동곽리에서 출생하였다. 처음 이름은 장지윤(張志尹)이고 호는 위암(韋庵) 또는 숭양산인(崇陽山人)이다. 소매당 장영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운소(雲沼) 장용상(張龍相)이고, 장석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4세 때 경상북도 구미시 오태동으로 이거했다가 20세 때 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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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 있는 행정구역.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를 개편하면서 마을 앞을 흐르는 내[川]의 길이가 길다하여 장천(長川)이라 하였다. 옛날에는 남웅곡방(南熊谷坊)과 북웅곡방(北熊谷坊) 지역으로 군위군 효령현에 속하였고, 조선 초기에 북웅곡방으로 통합되어 선산군에 속하였다. 1895년 지방 관제 개편에 따라 장천면이 되어 신점, 신방, 석적, 홍계, 불동, 아동,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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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상장리에 있는 재래시장. 장천시장은 옛날 장천면 상장리 주민과 하장리 주민이 줄다리기를 하여 상장리 주민이 이겨서 현재의 자리인 장천면 상장리 918번지[상장5길 4]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장천시장은 조선 전기 세조 때부터 대구 지역의 인접 시장으로 소규모로 형성되었다. 1940년대 후반부터 정기시장이 만들어졌으며,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가장 성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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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금호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옛날부터 재궁[재실]이 있는 곳이라 해서 재궁골 또는 쟁골로 통하고 있다. 마을에 후삼국 통일에 큰 공을 세운 삼중대광문하시중선주백순충공(三重大匡門下侍中善州伯順忠公) 김선궁(金宣弓)의 묘소 및 재사신도비각(齋舍神道碑閣) 및 생육신(生六臣) 경은(耕隱) 이맹전(李孟專)의 묘소와 재사(齋舍)가 있어 재궁이라 이름 붙였다. 마을 형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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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제사는 돌아가신 조상을 기억하고 정성을 표시하는 것이라고 한다. 원호리 선산김씨의 경우 집집마다 차이는 있지만, 거의 4대 봉사를 지키고 있다. 마을 안에 장손이 거주하는 경우가 적고 구미나 대구 등지에 나가 살아 제사 때면 원호리에 거주하는 차남들이 구미나 대구 등지로 나가서 모신다고 한다. 제수의 진설을 하는 방식을 보면, 제일 앞줄에 포·조(棗 대추)·율(栗 밤)·시(柿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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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던 시기 구미 지역의 역사. 구미시의 ‘구미’ 명칭은 조선시대 선산도호부 상구미면(上龜尾面)·하구미면(下龜尾面)에서 비롯되어 1914년 상하구면·하구미면이 개칭된 상고면·하고면이 구미면으로 통합, 개칭된 데 기인한다. 독립된 행정구역으로서의 구미시는 1978년 선산군 구미읍과 칠곡군 인동면이 통합되어 시로 승격하면서 성립하였고,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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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10월 18일 장진홍이 조선은행 대구지점에 폭발물을 배달시켜 폭발토록 만든 사건. 3·1운동에 나타난 만세시위 위주의 평화적·수세적 방식으로는 독립이 요원해지자, 1920년대에는 독립운동이 행동적·공세적인 방식으로 변해갔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 많은 비밀결사체가 조직되고, 독립운동의 전선도 사상이나 이념에 따라 커다란 변화를 보이게 되었다.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발사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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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이루어지는 제반 신앙 행위. 구미 지역은 고대부터 불교가 번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금오산 일대에는 현존하는 수 개의 사찰과 함께 그 정상과 산록에 남아 있는 폐사지(廢寺址)만도 20여 개에 이른다. 신라에 불교를 전했다는 아도화상의 연기설화가 전해지고 있는 도리사, 신라 탑의 웅대함을 보여주는 죽장사 오층석탑, 선산 낙산동 삼층석탑 등 찬란했던 불교 유산들이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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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대원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1447년(세종 29)에 개척하였으며 옛부터 대나무가 많았으며, 마을 앞에 큰 내가 흐르고 있었다고 하여 죽계라 하였다. 지금의 용포고개도 죽현(竹峴)이라 불렀다. 당초에는 죽원리에 속하였으나, 어감상 죽원리가 좋지 않다는 주민들의 진정에 따라 1990년 1월 6일 선산군 조례 1247호에 의거하여 대원리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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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2일과 14일 경상북도 구미시 인동 진평동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 3·1운동은 일제하 최대의 항일 민족항쟁으로 전국 각지에서 독립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인동 진평동에서는 3월 12일과 14일 두 번에 걸쳐 학생과 지역 유지들이 결합하여 독립만세 시위를 벌였다. 경상북도 지역에서는 3월 8일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의거를 시발로 비안·김천·포항을 거쳐 안동·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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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온갖 사물을 이해하는 데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여기서 전통적인 마을의 모듬살이를 이해하기 위해 채택한 방법 중 하나가 경관(景觀, Landscape)을 통한 이해이다. 마을 경관은 기록이 없는 마을의 역사와 주민의 삶의 양태를 보여준다. 집성마을은 일반적으로 다음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먼저 종가(宗家)가 자리를 잡고 있다. 그 다음으로 이름난 조상과 관련된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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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같은 성을 가진 사람이 모여 사는 촌락. 조선왕조는 성리학을 지배 이데올로기로 강조하면서 숭유억불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였다. 그러나 고려왕조의 불교적 색채는 조선 전기까지 끈질기게 남아 있었으며, 조선왕조가 추진하는 성리학적 지배이데올로기는 중종 연간을 지나면서 서서히 지방 양반과 일반 백성에게 영향을 미쳤다. 특히 남귀여가(男歸女家)의 혼인, 재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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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흥 종교. 천리교는 1836년 나카야마 미키[中山美枝]가 일본 나라현[奈良縣] 천리시(天理市)에서 창립한 신흥 종교이다. 우리나라에는 1900년에 일본인 포교사에 의하여 부산에서 포교가 시작되었다. 1903년 10월부터 서울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포교 활동을 시작하여 1917년 서울 동작동에 천리교포교관리소를 설립하였다. 일제시기 동안 천리교의 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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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서 활동하는 로마가톨릭교회. 천주교회는 로마가톨릭교회라고도 한다. ‘가톨릭(Catholic)’이라는 말은 원래 그리스어로 ‘보편적’이라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은 특정한 개인·인종·시대를 초월한 전체 인류를 위한 것이라는 뜻에서 이 명칭을 사용한다. 1800~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 때 신자들이 전국 산골로 숨어들었는데, 이들이 모여서 살게 된 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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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목사. 최재화의 호는 백은(白恩), 본관은 경주이다.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산양리에서 최도원(崔道源)의 큰아들로 태어났다. 이명으로 최재하(崔在河), 최동수(崔東秀)를 사용하였다. 최재화는 서울 경신중학교를 졸업하고 해평면 산양동에 내려와 신앙 활동을 하고 있었다. 1919년 만세 시위가 전국에서 일어나자 4월 3일 해평면 해평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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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 지역 출신 명창이 부르거나 구미 지역에서 불리고 있는 창악(唱樂). 판소리는 한 사람의 창자(唱者)가 고수(鼓手)의 북장단에 맞추어 긴 서사적인 이야기를 소리[唱]와 아니리[白]로 엮어 발림(너름새)을 곁들이며 구연(口演)하는 창악적 구비서사시(口碑敍事詩)이다. 12마당이 전해 왔는데 현재는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등 5마당이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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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공단동에 위치한 한국산업단지공단 산하 경북 지역 본부. 한국산업단지공단은 1964년 8월 한국수출산업공단으로 발족한 뒤, 1996년 10월 정부의 5개 국가 산업단지관리공단 통폐합 결정에 따라 산업집적 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이듬해 1월 10일 설립되었다. 2010년 1월 현재 수도권 광역지역(서울·경인), 강원 광역지역(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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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산업 생산 75조 원, 수출 330억 달러 목표 달성” 이것은 외국에 있는 어떤 첨단도시의 이야기도 국내의 대도시 이야기도 아닌, 바로 인구 39만 명의 한국의 지방도시인 경상북도 구미시의 2011년 경제 목표이다. 구미시는 한국 내륙 최대의 첨단 전자·정보통신 산업단지와 선진 농업을 기반으로 2011년에 생산 75조 원, 수출 330억 달러를 달성하기 위해 매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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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원평동에 있는 불교 계통의 신흥 종교 단체. 한국 SGI는 일본의 니치렌[日蓮] 대성인의 불법을 올바르게 계승하여 불법의 근본이념인 생명 존중 사상을 실천하면서 각 개인이 행복을 추구하고 국가 번영과 세계평화를 실현하는 데 기여하고자 하는 평신도들로 구성된 신흥 종교 단체이다. 한국 SGI는 1960년대 초반 일본에 있는 친인척으로부터 직접 신심(信心)을 권유받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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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 지역의 조선시대 행정구역 명칭. 이 지역은 낙동강 동쪽의 분지로 대구에서 다부를 거쳐 해평·낙동·태봉·문경으로 이어지는 도로와 의성·군위·개령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교차하여 육상 교통로의 중요한 거점이면서 또한 낙동강 유역의 해상 교통로였으므로 일찍부터 창(倉)이 설치되어 물자 수송의 요충지가 되었다. 또한 해평(海平)이라는 지명처럼 넓고 비옥한 평야 지대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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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허종(許鍾)의 자는 성증(聖曾), 호는 중산(重山)이다. 아버지는 방산 허훈의 장자인 허숙이다. 외조부는 한주 이진상이다. 일찍이 조부인 허훈으로부터 글을 배웠다. 허종은 종조부인 허겸과 같이 신민회에 회원으로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20년 전후에는 백농(白儂) 이동하(李東廈)가 경영하였던 대구의 삼산여관을 중심으로 김응섭(金應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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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평해. 자는 국서(國瑞), 호는 월정(月庭). 1888년 4월 17일 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성수리에서 황봉수(黃鳳秀)의 둘째 아들로 출생하였다. 황진박은 1910년 조선이 일본에 합병되자 책장을 박차고 일어나 약장사로 변장하여 뜻있는 동지를 찾아 각처를 두루 다녔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 서울로 가서 구국 투쟁을 벌였다. 고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