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11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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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校村里洞祭 |
영어공식명칭 | Village ritual Gyochon-ri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교촌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류한선 |
중단 시기/일시 | 1996년 - 교촌리 동제 중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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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 장소 | 검흔석 -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교촌리 |
성격 | 동제 |
의례 시기/일시 | 음력 1월 15일 정월대보름 0시 |
신당/신체 | 검흔석|동장군 |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교촌리에서 마을의 평화를 기원하며 지낸 마을 제사.
[개설]
교촌리 동제는 음력 1월 15일 0시에 검흔석에서 동장군에게 지냈다.
[연원 및 변천]
옛날 자인 지역에 왜적들이 침범하여 도천산에 자리잡고 백성들을 괴롭혔다. 한장군은 이들을 없애기 위하여 여장을 한 뒤 누이와 꽃관을 쓰고 버들못에서 춤을 추었다. 이때 춘 춤이 여원무로 춤에 홀린 왜적들이 버들못으로 내려왔다. 한장군이 섬멸하라 외치자 왜적들은 미리 깔아둔 칡으로 만든 그물에 휘말렸고, 춤추던 이들과 구경꾼으로 변장한 병사들이 한장군과 함께 칼을 들고 왜적들을 무찔렀다. 왜적들은 몰죽음을 당했고 못물은 핏빛으로 변하였다. 검흔석은 한장군이 왜적들을 벨 때 칼자국이 남은 바위로 한장군이 버들못에서 왜장의 목을 쳤다고 하여 ‘참왜석’이라고도 부른다. 버들못에서 한장군이 돌팔매질을 하며 놀다가 던진 돌이라는 설도 있다. 이에 따라 검흔석의 신격은 한장군으로 알려져 있지만 마을 사람들에게는 동장군으로 통한다. 한편 마을 사람들은 단옷날이 다가오면 버들못의 못물이 붉게 변하기 때문에 서둘러 빨래를 해야했다고 한다.
검흔석은 본래 도천산 아래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1996년 자인공단 신설로 버들못을 메우게 되면서 현재의 위치[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교촌리 381-20]로 옮기게 되었고 이후 자연스레 동제를 지내지 않게 되었다. 주민들은 검흔석을 신성하게 여겨 함부로 만지지 않았기에 버들못을 메우고 비석을 옮기면 마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여겨 우려를 표했다. 한 주민은 검흔석을 옮기기 전 꿈자리가 뒤숭숭했고, 실제로 검흔석을 옮긴 이후 마을 남성들이 많이 사망하였다고 한다.
[신당/신체의 형태]
검흔석의 크기는 높이 150㎝, 폭 63~80㎝ 정도이며 장방형이다. 석질은 화강암이고 하부는 대리석으로 고정되어있다.
[절차]
오래전에는 일주일 전 대내림을 통해 제관을 선정하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동회의를 통해 제관을 선출하였으며 상을 치르지 않은 40대 이상의 깨끗한 남성이 윤번제로 하기도 하였다. 제관들은 일주일 전부터 찬물에 목욕을 하고 금주금색하며 부정한 것을 보지 않아야 하였다. 제의에 앞서 검흔석 주변에는 미리 금줄을 쳐두었다. 음력 1월 14일 22시가 되면 검흔석에 제관이 장만한 제물을 진설하고 15일 0시가 되면 제를 지냈다. 절차는 일반적인 유교식 의례와 유사하였다.
[부대 행사]
음력 1월 15일 아침이 되면 주민들이 모여 풍물을 치고 음식을 나눠 먹었다.
[현황]
교촌리 동제는 1996년 자인공단이 조성되면서 도로 확장공사로 검흔석이 현재 위치로 옮겨지게 되자 자연스럽게 중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