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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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금동에 있는 도로. 전라북도 남원시 금동의 옛 지명이기도 하며, 금동 281-6번지에서 금동 174-1번지[검멀길 17-41]까지의 작은 도로를 말한다. 검멀은 큰 마을이라는 뜻을 가졌으며, 금말·금마을, 혹은 검머리로 불렸다. 검멀길은 금동의 옛 마을 이름이다. 금동은 고려시대 남원부의 남쪽 2리에 위치한 남안향(南安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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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향교동에 있는 경주김씨 수은공파의 족보를 펴내기 위해 제작한 유물. 경주김씨 보판각은 1998년 11월 27일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161호로 지정되었다. 수은공파의 시조인 수은공은 고려 후기 충신으로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는 것에 반대하여 두문동에 은둔하였으며, 후에 남원으로 낙향하였다. 경주김씨 보판은 1711년에 발간한 『신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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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지역을 지나는 대강면 풍산리와 인월면 성산리 사이에 있는 도로. 국도 24호선은 전체 구간 중 익산지방국토관리청 남원국도유지건설사무소에서 52.4㎞를 관리한다. 대강면 풍산리에서 국도 13호선, 시장 사거리에서 고죽교차로까지는 국도 17호선, 고죽교차로에서 요천삼거리까지는 국도 19호선과 중복된다. 남원시의 중앙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관통하는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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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노암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사묘. 조선 전기 문신인 금남(錦南) 오응(吳凝)이 자신의 할아버지 묘소 근처에 세운 별장이다. 지은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오응의 호가 금남이라 금남재(錦南齋)라 불렀다. 오응의 할아버지 오상덕(吳尙德)은 고려 후기의 충신으로 이성계가 역성 혁명을 일으켜 스스로 왕위에 오르는 것에 반대하여 두문동에 은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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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에 있었던 조선시대 향촌 사회에 설립된 사립 중등 교육 기관. 1766년(영조 43)에 창건된 서원으로 두동방의 향촌 사회를 근거로 하여 학문을 펼치던 사립 중등 교육 기관이다. 고려 고종 때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를 지냈던 명암(明庵) 김인경과 고려 말의 충신 두계(杜溪) 김충유(金冲裕), 고려 6은(六隱) 수은(樹隱) 김충한을 주벽으로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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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두신리는 행정리인 신촌리와 두곡리의 2개 행정리로 나뉘어 있다. 남원시에서 10㎞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요천수를 경계로 금지면과 인접하고 있다. 본래 남원군 두동면 두곡리 지역으로 두실, 망골 또는 두곡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신촌리·두곡리를 병합하여 두곡과 신촌의 이름을 따서 두신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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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죽산(竹山). 호는 송암, 시호는 충현. 남원에서 세거한 죽산박씨의 조상이다. 박문수는 고려 말에 우정승을 지냈으나, 조선 개국 후 두문동에 들어가 고려왕조의 신하로서 절개를 지켰다. 조선 개국 후 아들 박포가 2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에게 대항하다가 참수당했다. 당시 박문수의 손자인 박자량이 전라관찰사였는데, 숙부 박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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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영동리는 영촌리와 손동리를 행정리로 포함하고 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손동리와 영촌리, 오산리, 장포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영촌과 손동의 이름을 따서 영동리라 하였다.영촌리는 정착조인 김수은이 이곳에 정착하기까지 수많은 고개를 넘어왔다고 해서 잿말, 재마을로 부르다 영촌(嶺村)으로 바뀌었다. 손동리는 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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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 호곡리에 있었던 조선 후기 호곡마을이라는 향촌 사회를 근거지로 하여 설립된 사립 초등 교육 기관. 옥산재(玉山齋)는 1790년(정조 14)에 호곡리에서 죽산박씨(竹山朴氏) 가문의 박규형과 마을 유지들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주로 『사자소학』과 사서삼경 및 『명심보감』 등의 유학을 가르쳤다. 옥산재(玉山齋)는 오랜 전통의 촌합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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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영천(寧川)[현재는 전라북도 임실군 지사면 영천리로 조선시대에는 남원부 관할이었음]. 영천이씨(寧川李氏)의 시조인 이능간의 3세손이다. 이탕휴(李湯休)는 고려조에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역임하였으나, 1392년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자 자신이 살던 곳을 스스로 방화하고 자손을 고향인 남원으로 보내었다. 그리고 자신은 관과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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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 풍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원. 조선 전기 세종 때의 영의정 황희(黃喜)를 주벽(主壁)으로 삼아 오상덕(吳尙德)과 황위(黃暐) 3현을 배향하고 있다. 황희(黃喜)의 선조는 장수와 남원 등지에서 살았고, 부친 황군서(黃君瑞)는 개성으로 옮겨 살았다. 황희는 1363년(공민왕 12)에 개성 가조리에서 출생하였다. 고려 후기 두문동에 들어간 황희는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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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남원에 유배된 문신. 황희는 조선 초기의 명재상(名宰相)으로 천하에 이름을 떨쳤다. 태조 이성계의 등극을 전후해서 조선 건국이 왕권 정통대업의 원칙에 벗어난다 하여 한때 두문동 깊은 골짜기에서 세상을 비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주위의 권유에 못 이겨 관문에 발탁되면서 태조·정종·태종·세종에 이르기까지 4대 왕조를 섬겼다. 그는 조선왕조의 확고한 기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