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15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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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郭性鎭 |
영어음역 | Gwak Seongji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중앙리 117[옥녀봉로18번길 16-7]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이시경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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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중앙리 117[옥녀봉로18번길 16-7] |
성별 | 남 |
생년 | 1899년 |
몰년 | 1973년 |
본관 | 현풍 |
[정의]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사항]
곽성진은 1899년 10월 6일 논산시 강경읍 중앙리에서 출생하였다. 전라남도 순천 외가에서 순천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1917년 서울 보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서울 보성고등보통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1919년 학우들과 함께 서울 탑동공원에서의 만세시위운동에 참가한 것이 계기가 되어 고향인 논산 강경에서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심하였다.
귀향 후 석광열(石光烈), 박금봉(朴今奉), 강세형(姜世馨) 등과 만세운동을 모의하고 구체적인 준비를 시작하다가 강경에서 이미 시위를 준비했던 엄창섭(嚴昌燮), 추병갑(秋炳甲), 고상준(高相俊) 등과 함께 3월 10일 ‘강경 옥녀봉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때 시위 군중에 맞서 출동한 재향군인(在鄕軍人)과 소방조(消防組) 등에게 검거되었고, 같은 해 4월 1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태 90도를 받았다. 이후에도 박금봉, 강세형 등과 혜성단(慧星團)을 조직하여 약 5년간 일제에 항거하여 일제의 요시찰 인물로 지목되기도 했다. 1973년 5월 20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2년 대한민국 건국의 공을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