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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0373
한자 東山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동산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곽현옥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동산리 개설
법정리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동산리 지도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3.87㎢
가구수 81가구
인구[남/여] 155명[남 74명/여 81명]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동산리(東山里)옥천 조씨(玉川趙氏)가 터를 닦고 행주 기씨(幸州奇氏)가 고을을 이어 오다가 고려 때 전주 이씨(全州李氏)가 터를 잡았다. 원래는 이곳 형상이 구유[가축에게 먹이를 주는 그릇]처럼 생겨 구실[構洞]이라 불렀고, 마을이 번창하자 웃구실[上構洞], 아랫구실[下構洞]로 불렀다. 복흥현의 고을 터가 될 만큼 좋은 자리였으므로 1914년 일본 사람들이 이곳의 지기를 희석시키고자 행정 구역 개편 때 안산리와 궁산리, 그리고 조동을 병합하고는, 옛 마을 이름 중 ‘산’ 자만 따고 ‘동’ 자는 근거가 없이 붙여 동산리(東山里)라 하였다고 전한다.

[형성 및 변천]

동산리 앞에 5,000여 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기 시대 대표적인 무덤인 고인돌이 산재한 것으로 미루어 오래전에 마을이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순창군 복흥현에 속해 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동산리로 재편되었다. 동산리의 자연 마을인 안산리는 동산리 서남쪽에 있는데 지금은 ‘안산(案山)’이라 표기하지만 옛날에는 지형이 말의 안장처럼 생겼다고 해서 ‘안산(鞍山)’으로 표기하였다. 궁산리는 안산에서 반월리 월성으로 넘어가는 고개의 잔등이 활처럼 구부러진 지형 안쪽에 마을이 있어 궁산(弓山)이라 하였다.

동산 마을은 현감이 있던 곳이며, 자포에는 향교가, 하마 마을 앞에는 시장이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이 마을이 백제 때는 도실군(道實郡), 통일 신라 때는 순화군(淳化郡), 고려 이후에는 복흥현 터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농암리는 예전의 삼치리로 삼치장(三峙場)이 있었으니 복흥현 시절에는 제법 번창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동산리는 정읍시 내장동과 경계하고 있는 장군봉(將軍峰)[693m]에서 동남쪽으로 뻗은 산맥이 백토 고개에서 남쪽 방향으로 내려 다시 동남쪽으로 돌아 솟아 오른 봉우리가 망대봉이다. 이 봉우리가 동남쪽으로 내려오다 동산 저수지 앞에서 머무르고 산줄기를 따라 서남쪽을 향하여 취락이 형성되어 동산리 마을이 된 것이다.

구실[조동]의 ‘조’는 ‘구유 조’ 자로 갈마음수(渴馬飮水) 형상의 정면에 있는 상대성 지명이 마을 이름이 되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변음되어 구실이라 하게 되었고, 더욱 비화되어 주위의 냇물이 구슬처럼 맑다는 뜻의 옥천으로까지 와전되었다. 옥룡자(玉龍子)[도선 국사]가 지은 「답산가」에 ‘조령을 넘어서니 옥천(玉川) 복흥 여기로다’라 하였는데, 이곳을 옥천으로 생각하고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그러나 옥천은 현 순창읍의 고호(古號)로, 순창군에 속한 복흥현이라는 표현이 와전된 것이다.

[자연 환경]

동산리복흥면 북쪽에 위치한다. 궁산잔등과 수박등, 점심등 등이 있는데, 수박등은 마을 남쪽을 병풍처럼 막아선 나지막한 등성이며, 점심등은 동산리에서 서마리로 넘나드는 마을 뒤쪽 고개를 말한다. 또한 동산리에는 뒷들과 모시랭이들, 성개들이 있다. 뒷들은 동산리 북서쪽 화양 마을로 가는 곳이며, 모시랭이들은 안산 마을 남쪽에 있는 들, 성개들은 동산리 동쪽 들로 살찐 개 형상의 성견을 말하는데, 밤어굴 앞에 있으며 동산 마을에서는 제일 큰 들이다. 동산리의 농경지는 거의 대부분 평야로 이루어져 있다.

[현황]

2021년 12월 현재 동산리의 면적은 3.87㎢이며, 인구는 81가구, 155명으로 남자가 74명, 여자가 81명이다. 2개 행정리와 4개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으며, 농가 대부분이 복분자, 오디, 오미자 등을 재배하며, 고랭지 지역 특성에 맞는 고추, 배추 등 다양한 소득 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한우 사육 역시 소득 증대에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안산 마을에서 마산리로 넘어가는 궁산과 수박등 사이 잔등으로 지금은 복흥과 정읍 간 국가 지원 지방도 49호선이 나 있다.

동산 초등학교는 1947년 4월 4일 인가를 받았으나 6·25 전쟁이 일어나면서 개교하지 못하다가 1963년 3월 7일 개교하여 현재에 이른다. 성리학의 대가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비가 있으며, 마을 안에 할아버지와 할머니 느티나무가 있었으나 할아버지 나무는 왜정 때 공출당하고, 800여 년 된 할머니 나무만 남아 있다. 지금도 정월 대보름이면 할머니 나무에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당산제를 올린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2.10.11 현행화 [상세정보] 가구수, 인구 변경, [현황] 인구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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