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응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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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선무원종공신들에게 발급한 증서. 선무원종공신록은 1592년부터 1598년까지의 7년에 걸친 임진왜란 중 나라에 공헌한 자를 선조(宣祖)가 도승지 신흠(申欽)을 시켜 공신도감(功臣都監)에서 발급했으며 3등까지의 명단과 신분이 기록되어 있다. 1604년 선정의 선무공신(宣武功臣)이 1,2,3등 전체 18명에 불과해, 이듬해 재정리하여 공헌자 9,060명을 녹훈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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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김해. 자는 집성(集成). 1569년 전라남도 진도군에서 부친 김견과 모친 창녕조씨 사이에서 3남 중 장남으로 태어나 아버지 형제 중 둘째인 김환(金環)의 양자로 입적됐다. 진도 창읍 때 공을 세운 김석곤(金碩崑)의 현손이며, 명량대첩에서 순절한 조응량(曺應亮)이 사촌 처남이기도 하다. 부인은 남양이씨 이귀영(李貴榮)의 딸로, 2남 3녀를 두었다.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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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 정유재란에서 전사한 무신. 본관은 창녕. 아버지는 조응량(曺應亮)이다. 부인은 비인최씨이고 아들은 조익온(曺益溫)이다. 관직이 참봉(參奉)에 이르렀다. 정유재란 때 아버지를 따라 명량대첩에 참가하였다가 아버지의 배가 뒤집혀 침몰하는 것을 목격하고 적선에 뛰어들어 격전을 벌이다 함께 순절하였다. 전남 진도군 고군면 도평리 산117-3외에 소재한 진도정유재란순절묘역(珍島丁酉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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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진도 출신의 무신. 본관은 창녕. 임진왜란 시 선무원종공신 조응량(曺應亮)의 동생 조응설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조성업(曺誠業)이고, 어머니는 경주박씨이다. 부인은 현풍곽씨이다. 무과 시험에 합격하여 군관을 역임하였다. 진도군 지산면 고야평(古野坪)에 파손되어 방치되어 있던 제방을 사재로 인력을 동원, 보수하였다. 이에 고야평의 농토가 옥토가 되어 군민들에게 혜택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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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 정유재란 때에 공을 세운 무신. 조응량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임진왜란 와중에서 이순신을 돕다가 명량해전에서 부자가 함께 순절한 선무원종공신이다. 본관은 창녕. 진도 입도조 조희직(曺希直)의 13세손이다. 아버지는 조찬상(曺纘商), 어머니는 경주이씨이다. 임진왜란 순절자 조수의(曺守義)의 종질이다. 5남 중 넷째이다. 부인은 김해김씨이며 아들은 조명신(曺命新)이다. 진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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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정유재란 때 순절한 진도 군민의 무덤이 모여 있는 곳. 정유재란은 진도 울돌목을 중심으로 수군전이 치러진 전쟁이었다. 1597년 9월 15일 진도 벽파진에 도착한 이순신은 9월 16일 명량해협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곧바로 신안 당사도로 후퇴했기 때문에 진도는 상륙한 일본군에 의해 큰 희생을 치러야 했다. 당시 진도 관군은 군수인 송덕일(宋德馹)이 이끌었고,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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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정유재란 때 명량해협에 철환을 가설한 곳. 1956년 진도교육청 교육감이었던 곽충표는 벽파진에 이충무공 전첩비를 건립할 때 녹진등대 옆에(현 진도대교 밑)에 ‘정유재란 철환가설지’라는 표지석을 세웠다. 정유재란 시 명량해전에서 순절한 조응량(曺應亮)[?~1597]의 표충비에 명량해협에 철환(鐵環) 또는 철쇄(鐵鎖)를 매설해 놓고 왜선을 유인해 대승을 거뒀다는 내용에 근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