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014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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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珍島丁酉再亂殉節墓域 |
영어의미역 | Jindo Memorial Monument of the Jeongyu Wars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도평리 산117-3![]()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정호,조진선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1년 9월 2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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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진도정유재란순절묘역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에 따라 문화재 지정번호 삭제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4년 5월 17일 - 진도정유재란순절묘역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16호에서 전라남도 문화유산자료로 변경 |
성격 | 분묘 |
건립시기/연도 | 1597년![]() |
면적 | 50,553㎡ |
소재지 주소 |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도평리 산117-3 |
문화재 지정 번호 | 전라남도 문화유산자료 |
[정의]
조선 중기 정유재란 때 순절한 진도 군민의 무덤이 모여 있는 곳.
[개설]
정유재란은 진도 울돌목을 중심으로 수군전이 치러진 전쟁이다. 1597년 9월 15일 진도 벽파진에 도착한 이순신은 9월 16일 명량해협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곧바로 신안 당사도로 후퇴했기 때문에 진도는 상륙한 일본군에 의해 큰 희생을 치러야 했다. 당시 진도 관군은 군수인 송덕일(宋德馹)이 이끌었고, 명량대첩 때 전사한 진도 사람 중 관군으로 이름이 나오는 인물은 조응량 등 8명이다.
[건립경위]
진도군 고군면 도평리와 오일시장 사이의 산기슭에 있는 이 묘역은 벽파진이나 명량진에서 15리 거리이며, 진도 설군 당시인 1440년대는 토반인 창녕조씨와 김해김씨들에게 하사된 땅이었다고 한다. 정유재란이 끝날 무렵인 1597년경부터 이 묘역이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형태]
이 묘역의 면적은 50,553㎡이고, 232기의 무덤이 있다. 이 묘역의 많은 봉분 중 창녕조씨나 김해김씨 등 진도 토반씨족 인물들 16기 이외에는 주인 없는 무덤들이다.
진도 군내 사족인 조응량(曺應亮)[선무원종공신], 그의 아들 조명신(曺命新)[선무원종공신], 박헌(朴軒)[병조참판 증직], 김성진(金聲振)[선무원종공신, 남원전투 순직], 김홍립(金弘立) 등의 무덤도 있지만, 나머지는 이름 없이 종군했던 현지 향민들의 무덤들로 추정된다.
[현황]
진도군은 1995년부터 이곳 묘역을 다듬고 봉분을 손질해 보호하고 있다. 진도정유재란순절묘역은 2001년 9월 27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16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번호가 삭제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에서 전라남도 문화유산자료로 변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