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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진도문화대전 > 진도향토문화백과 > 삶의 주체(성씨와 인물) > 전통시대인물 > 효자, 열녀

  • 열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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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난을 당하여 목숨으로 정조(貞操)를 지켰거나 또는 오랜 세월에 걸쳐 고난과 싸우며 수절(守節)한 부녀자. 유교를 국가이념으로 하는 조선 사회에서는 사회 구성의 기본단위이고 근간인 부부의 도리인 부위처강(夫爲妻綱)을 3대 강령의 하나로 삼았다. 부부란 성적 결합 이전에 자녀 생산과 가문 계승의 사회 기초단위였으며, 가정의 안정은 지역공동체 안정질서의 바탕이었다. 그렇다고 조선 사회...

  • 효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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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도군 일대의 지역에서 역대로 부모를 섬김에 있어 효를 극진히 한 자식. 유교를 이념으로 성립한 조선왕조는 지배체제와 사회질서의 요체를 예(禮)에 두었다. 예 중에서도 특히 자연적인 혈연관계에서의 효제(孝悌)를 기본 덕목으로 삼아 인위적인 정치체제에 중첩시킴으로서 치국(治國)의 주요 수단으로 삼았다. 이로 인해 조선왕조에 있어 효는 가정 질서의 기본이면서 사회 질서의 기둥이었고,...

  • 강천복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의 효자. 강천복의 후손들은 현재 진도에 살고 있으며 예인 활동가가 많다. 강천복은 무당 천소사(千召史)의 남편으로 무부(巫夫)였다. 강천복은 아버지가 돌아가실 상황에 처하자 자기 넓적다리를 베어 먹여 연명하게 하는 효행을 했다. 1789년(정조 10)에 정조는 그의 효행을 높이 사서 복호(復戶: 세금을 면제받는 조치)를 내렸다....

  • 김련벽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김해. 자는 백이(百而), 호는 성재(誠齋). 아버지는 김만도(金萬道)이고 어머니는 박종관의 딸이다. 부인 창녕조씨와의 사이에 4형제를 두었다. 1679년(숙종 5)에 태어났으며 1744년(영조 20)에 향년 66세로 세상을 떠났다. 김련벽은 7세에 아버지를 여의자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3년 시묘를 살아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모친이 병이 들어 유자를...

  • 박대형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진도군 진도읍 동외리에 정려가 있는 조선 중기 효자. 본관은 경주. 아버지는 박총룡(朴叢龍)[1494~1532]이고, 어머니는 장흥임씨(長興任氏) 임처경(任處京)의 딸이다. 박대형의 12세손으로 박천재(朴薦在)가 있다. 박대형(朴大泂)[1532~1590]은 5세에 자신이 유복자임을 알고 부친의 묘를 찾아 조석으로 통곡했으며, 편모 임씨에 대한 효성 또한 지극했다. 편모가 병을 얻어...

  • 박진종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밀양. 자는 후옥(厚玉), 호는 구절재(九節齋). 박용(朴容)의 둘째 아들 박정(朴挺)의 11세손이다. 아버지 박유징(朴宥徵), 어머니 현풍곽씨 사이의 3남 2녀 중 막내로 1818년 10월 10일 진도군 의신면 가단리에서 태어났다. 창녕조씨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두었다.『호남삼강록(湖南三綱錄)』에는 박진종(朴震宗)으로 기록되어 있다. 박진종은 1800년...

  • 소휘철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말기의 효자. 본관은 진주. 호는 겸와(謙窩)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당대 문장가였던 소세량(蘇世良)[1476~1528]의 후손이다. 소휘철은 말이나 글이 사람을 놀랠 만큼 뛰어났고 효행이 극진하였다. 조선말기 고종 때에 독실하고 품행이 방정하다 하여 통례원(通禮院) 인의(引儀)에 제배되었다. 그러나 정중하게 사양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평소 효성이 남달랐던 그는 부모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