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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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인 지도 제작 측면에서 볼 때 현대지도와 구별되는 지도.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사기(三國史記)』나 『삼국유사(三國遺事)』 등의 고문헌과 벽화 등을 통하여 고대 지도의 윤곽을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지도가 제작되기 시작된 것은 조선시대부터였다. 현존하는 지도로서 가장 오래된 것은 1402년(태종 2)에 김사형·이무·이회 등이 제작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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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신임사화로 진도에 유배된 광산김씨 인물. 조선후기 광산김씨 집안은 격화되는 노론·소론 당쟁의 중심부에 있었다. 김춘택(金春澤)[1670~1717]은 노론으로 광산김씨 명문가 출신이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인경왕후(仁敬王后)[1661~1680]의 아버지이자 숙종의 장인이었던 김만기(金萬基)였고, 숙부는 당대 문장가로 유명한 김만중(金萬重)이었다. 장희빈의 소생이 원자로 책봉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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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제59대 진도군수로 부임하여 1553년(명종 8)부터 1554년(명종 9)까지 재임하였다. 아들은 김호(金琥)이고, 증손은 영조 때 문과에 급제한 김종수(金宗洙)이다. 진도군수로 있던 1554년(명종 9) 6월에 흑산도에서 왜인을 잡아 참하고 그 배를 나포하는 데 큰 공을 세워 상을 받았다. 1555년(명종 10) 5월 군관으로 있다가 왜구의 침입이 심한 전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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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신임사화로 진도에 유배된 광산김씨 인물. 조선 후기 광산김씨 집안은 격화되는 노론·소론의 당쟁의 중심부에 있었다. 김춘택(金春澤)[1670~1717]은 노론으로 광산김씨 명문가 출신이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인경왕후(仁敬王后)[1661~1680]의 아버지이자 숙종의 장인이었던 김만기(金萬基)였고, 숙부는 당대 문장가로 유명한 김만중(金萬重)이었다. 장희빈의 소생이 원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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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1739년(영조 15)~1740년(영조 16)까지 제186대 진도군수를 역임하였다. 본관은 여흥(驪興). 초명은 민기(閔圻), 자는 국보(國輔)·군보(君輔). 아버지는 병마절제도위 민진환(閔震煥)이고, 할아버지는 민정백(閔挺栢), 증조부는 민위(閔湋)이다. 아들은 1738년(영조 14)에 문과급제한 민사홍(閔師弘)과 민사의(閔師毅)이다. 형은 민해(閔垓)·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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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전라남도 진도군의 역사. 진도는 반도의 서남쪽 모서리에 위치하여 작게는 서남해 섬 지역과 섬 지역, 그리고 크게는 서해와 남해를 연결하는 중간다리 역할을 한다. 지도를 펴놓고 고대 한·중·일 삼국을 연결했던 바닷길이 지나는 중요한 길목들을 살펴보면, 서해로는 흑산도가 먼저 상기되고 영산강과 연결하여서는 목포와 영산포가 돋보인다. 그리고는 해남의 화원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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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에 유배되었던 조선 후기의 문인, 서화가. 본관은 전주. 자는 도보(道甫), 호는 원교(園嶠) 또는 수북(壽北). 아버지는 예조판서를 지낸 전주이씨 이진검(李眞儉)이다. 이광사는 조선 후기의 명필로서 영조의 등극과 더불어 소론이 실각함에 따라 벼슬길에 나아가지 못하였다. 큰아버지인 이진유(李眞儒)[1669~1730]가 1755년(영조 31)에 나주벽서사건(羅州壁書事件)으로 처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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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명(子明), 호는 연계(蓮溪). 효령대군 이보(李𥙷)의 12대손으로, 아버지는 공조판서 이중경(李重庚)이다. 용력이 뛰어나고 병서에 정통하였다. 1743년(영조 19) 사리평(沙里坪)에서 무술 연습을 할 때 그 실력을 인정받아 영조에게 표범 모피를 하사받기도 하였으며, 활 쏘는 솜씨가 출중하여 60세가 넘은 나이에도 모화관(慕華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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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사극(士克), 호는 퇴수재(退修齋). 조박(趙璞)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견소(趙見素)이고, 아버지는 감역 조시채(趙始采)이다. 어머니는 최득일(崔得一)의 딸이다. 아내는 변세구(邊世耉)의 딸이다. 형으로 조성집(趙聖集)이 있다. 1681년(숙종 7) 태어났다. 문과 급제 후 지평, 정언, 장령, 헌납 등을 지내다 1723(경종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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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유량(幼亮), 호는 이우당(二憂堂)이다. 조존성(趙存性)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형조판서 조계원(趙啓遠)이고, 아버지는 괴산군수 조희석(趙禧錫)이다. 어머니는 백홍일(白弘一)의 딸이다. 조태구(趙泰耉)의 종제이며, 조태억(趙泰億)의 종형이다. 1660년(현종 1)에 태어났다. 1686년(숙종 12) 별시문과에 종형 조태구와 함께 병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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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문화권에서 한자(漢字)로 창작된 시. 전라남도 진도군은 여러 전란을 겪었던 불운의 섬이기도 했으나 서해와 남해가 만나는 곳에 위치하여 지리적으로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수많은 문화유적이 남아 있어 섬 자체가 문화유적지라고도 할 수 있다. 지리적 위치상 서울과 멀리 떨어져 있어 조선시대까지 유배지로서의 역할을 했던 섬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로, 진도 사람들의 문집과 한시작품은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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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5년부터 1726년까지 제174대 진도군수를 지낸 조선 후기의 관리. 진도군수 재임 중인 1726년(영조 2)에 사간원 정언(正言) 유겸명(柳謙明)으로부터 흉년의 곡물(穀物)을 횡령하여 군민을 굶주리게 하였다는 탄핵을 받았다. 영조는 풍문은 믿을 것이 못되니 다시 조사하라 지시하였다. 후에 영부사(領府事) 민진원(閔鎭遠)이 홍우귀의 치적이 볼 만한 것이 없으니 잡아다가 가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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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군 일대의 지역에서 역대로 부모를 섬김에 있어 효를 극진히 한 자식. 유교를 이념으로 성립한 조선왕조는 지배체제와 사회질서의 요체를 예(禮)에 두었다. 예 중에서도 특히 자연적인 혈연관계에서의 효제(孝悌)를 기본 덕목으로 삼아 인위적인 정치체제에 중첩시킴으로서 치국(治國)의 주요 수단으로 삼았다. 이로 인해 조선왕조에 있어 효는 가정 질서의 기본이면서 사회 질서의 기둥이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