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011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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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匡師 |
영어음역 | Yi Gwangsa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정호 |
진도에 유배되었던 조선 후기의 문인, 서화가.
본관은 전주. 자는 도보(道甫), 호는 원교(園嶠) 또는 수북(壽北). 아버지는 예조판서를 지낸 전주이씨 이진검(李眞儉)이다.
이광사는 조선 후기의 명필로서 영조의 등극과 더불어 소론이 실각함에 따라 벼슬길에 나아가지 못하였다. 큰아버지인 이진유(李眞儒)[1669~1730]가 1755년(영조 31)에 나주벽서사건(羅州壁書事件)으로 처벌될 때 이에 연루되어 함경북도 회령(會寧)으로 유배되었다가 진도로 옮겨졌다. 다시 전라남도 강진군 신지진에 속한 약산도로 유배되었고, 1777년에 약산도에서 죽었다고도 하나 일부 기록에는 진도에서 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
윤순(尹淳)[1680~1741]에게서 글씨를 배워 진서(眞書)·초서(草書)·전서(篆書)·예서(隸書)에 모두 능하였다. 원교체(圓嶠體)라는 특유한 필체를 이룩하여 동국진체(東國眞體)를 완성하고 집대성하였다.
이광사는 정제두(鄭齊斗)에게서 양명학을 배워 아들 이영익(李令翊)에게 전수한 강화학파(江華學派)의 한 사람이다. 또한 강화학의 정신을 문학과 논문으로 표출한 문학가이자 사상가이기도 하다.
저서로는『동국악부(東國樂府)』외에 서예의 이론을 체계화시킨『원교집선(圓嶠集選)』과 『원교서결(圓嶠書訣)』 등이 있다.
서예 작품으로는「영의정이경석표(領議政李景奭表)」, 「우의정정우량지(右議政鄭羽良誌)」, 「행서4언시(行書四言詩)」 등이 있다.
그림은 산수와 인물, 그리고 초충(草蟲)을 특히 잘 그렸는데, 산수는 새롭게 유입된 오파(吳派)의 남종영법(南宗怜法)을 토대로 소박하면서도 꾸밈없는 문인 취향의 화풍을 보였고 인물에서는 남송원체화풍(南宋院體畵風)의 고식(古式)을 따랐다. 대표작으로는 1746년(영조 22) 오대(五代)의 인물화가 왕제한(王齊翰)을 그렸다는「고승간화도(高僧看畵圖)」외에「산수도(山水圖)」 등이 있다.
조선시대 서예 중흥에 크게 공헌하였고 후진들을 위해 남긴 이광사의 저술과 작품들은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