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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청룡리 청룡마을에 있는 못에 얽힌 이야기. 「기생못 전설」은 고려 후기 배중손이 이끄는 삼별초군이 승화후 온[왕온]을 왕으로 추대한 뒤, 진도를 본거지 삼아 몽골과 맞서 싸우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이다. 1979년 7월 30일 진도군 의신면 청룡리 청룡마을에서 지춘상이 조사하였고, 제보자는 그 마을의 이덕순(남, 82세)이다. 삼별초군이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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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용장리에 있는 바위에 얽힌 이야기. 망바위전설은 고려후기 배중손이 이끄는 삼별초군이 승화후 온(溫)을 왕으로 추대한 뒤, 진도를 본거지삼아 몽골과 맞서 싸우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이다. 망바위는 군내면 용장리 방북(현 오룡초등학교)의 주산인 대암석을 말한다. 고려후기 진도로 내려온 삼별초군들이 이 바위에 올라, 세곡이나 보물을 싣고 가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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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리(龍藏里)하면 한자로 용을 품는다 또는 감춘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용은 예로부터 임금을 상징하는 말이다. 한양도성에서 천리 먼 길 떨어진 이곳이 이런 이름을 갖게 된 데에는 필시 곡절이 있을 것이다. 군지에는 1772년 남양홍씨가 처음 입향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995년(성종 14)에 진도군을 옥주군(沃州郡)으로 개칭하였다가 1018년(현종 9)에 옥주를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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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무신정권기에 특수부대였던 삼별초가 몽고의 간섭에 대항하여 일으킨 반란. 무인정권(武人政權) 말기 최우가 집권하여 도적이 횡행하자, 이들을 잡기 위해 용사를 선발, 경찰부대를 조직하고 이를 야별초(夜別抄)라 하였다. 그 뒤 인원이 늘고 기구가 확대되어 좌별초·우별초로 나누어져 편성되었다. 이후에 몽고군에 잡혔다가 탈출해온 군사와 장정들이 새로 신의군이라는 별초부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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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의 삼별초정권이 조운로(漕運路)를 장악하자 개경정부의 재정상태는 곤핍을 극하게 되었다. 당장 시급한 군량(軍糧)조차 제대로 맞춰서 대줄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하루 빨리 진도 를 되찾는 것이 개경정부 존립의 관건이었던 셈이다. 원나라의 입장에서도 삼별초와 남송의 동맹을 방지하고 또한 일본을 정복하려는 야욕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진도 를 점령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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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별초는 반개경정부(反開京政府) 그리고 반몽고(反蒙古)의 노선을 표방하며 거사하였다. 1270년(원종 11) 6월 초하루의 일이었다. 앞서 같은 해 5월 23일에 재상들이 회의에서 개경으로 환도할 것을 결정하자 삼별초는 그에 반대하며 반란을 일으킬 속셈을 처음 드러냈었다. “재추(宰樞)가 모여 옛 서울로 돌아갈 것을 의논하고 날을 정하여 방(榜)을 붙이니, 삼별초가 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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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에 도착한 삼별초는 곧바로 새 수도를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도성인 용장성(龍藏城)을 중심으로 그 주위를 둘러싼 용장산성(龍藏山城)의 안쪽, 즉 현재의 용장리 일원이 그곳이다. 여기에 처음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주변의 고인돌 등으로 미루어 늦어도 청동기시대 즈음에 주민이 거주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이후 삼국을 거쳐 고려와 조선에 이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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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관광을 위한 계절별, 주제별, 권역별 경로. 진도는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섬으로 조도면 일대 해역의 서남해 해상국립공원, 울돌목, 진도 용장성, 백조 도래지, 진도 첨찰산의 상록수림 등과 많은 민속무형문화재, 국립남도국악원, 향토문화회관, 기념관, 미술관 등과 아울러 진도개, 구기자, 대파, 검정 쌀, 진도 미역, ‘신비의 바닷길’ 까지 다양한 자연 관광자원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