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중기 진도에 정착한 입도조(入島祖). 도강김씨(道康金氏) 조사공파 파조 김일(金鎰)의 8세손이다. 아버지는 김척강(金陟岡)이다. 부인은 조복명(曺腹明)의 딸이며 아들은 김분(金盆)[1497~1569]이다. 그 후손들의 집성촌이 진도군 임회면 연동리에 있다.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에서 진도군 고군면 향동으로 들어와 정착했다. 후손 김몽규가『옥주지(沃州誌)』를 지었다. 진도군 고군면...
전라남도 진도지역에서 성씨가 대대로 세거한 지역. 고려조는 940년(태조 23)에 지방 구역과 명칭을 새로 정하고 그 지역 공무를 맡을 토성(土姓)을 정했다. 당시 정부는 지방 토호 중에서 가장 세력이 있는 토호를 호장(戶長) 또는 상대등(上大等)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지방 업무를 관할하게 했다. 이들은 그 지역의 토박이 성인 토성을 썼다. 조선조 초엽까지도 고을마다 토박이 성씨들...
조선중기 정유재란 때 공을 세운 무신. 본관은 진주. 진도 향동 입촌조 하익창(河益昌)의 6세손이다. 아버지는 하응숙(河應淑)이고 어머니는 창녕조씨이다. 부인은 조민성의 딸이며 아들이 하해(河海)이다. 1563년 진도군 고군면 향동에서 태어났다. 무과에 급제하여 수문장(守門將)을 지냈다. 이후 훈련원(訓練院) 봉사(奉事)로 있다가 김성진 등 많은 향인과 더불어 1597년(선조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