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덕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900675
한자 姜德汝
영어공식명칭 Kang Deokyeo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기도 남양주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태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8일~1919년 3월 19일 - 강덕여 경기도 양주군 화도면 마석우리 3·1운동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9일 - 강덕여 시위 도중 중상
출생지 화도읍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지도보기
활동지 마석우리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마석우리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3·1운동

[정의]

경기도 남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강덕여(姜德汝)[?~?]는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에 해당하는 경기도 양주군 화도면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1919년 3월 13일 경기도 남양주시 평내동에 해당하는 경기도 양주군 미금면 평내리의 만세 시위가 확산하여 양주군 와부면 송촌리[현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등 남양주 지역 전반으로 퍼져 나갔다. 현재의 화도읍 주민들도 만세 운동을 추진하기 위하여 준비하고 있었다. 특히 월산교회 교인 이인하·이택하·김우동·김필규와 양주군 화도면 월산리[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 마을 주민 이달용·이승보·이재하·이덕재·이택주·유인명·홍순철·윤태익 등이 거사를 모의하였다. 하지만 1919년 3월 16일 일본 경찰에 의하여 거사가 사전에 발각되었고 이승보·이재하·이택하가 체포되었다. 마을 주민 수십 명은 이승보·이재하·이택하의 석방을 촉구하기 위하여 1919년 3월 18일 밤 10시경 마석우리[현 남양주시 화도읍 마석우리]에서 조선 독립 만세를 외쳤고, 점차 늘어나서 200명이 되었다.

강덕여도 1,0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경기도 양주군 화도면 마석모루에 있는 헌병 주재소로 몰려가 구금자 석방을 요구하며 공격을 가하였다. 일본 헌병대는 시위대의 규모가 커지고 분위기가 과열되자 시위 군중을 향하여 무차별 발포를 시작하였다. 김필규강선원·권은·남궁우룡은 체포되고, 일본 헌병대의 총격에 이달용손복산·신영희·유상규·이교직 등 4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하였다. 1919년 3월 19일 강덕여도 중상을 입고 시위대와 함께 해산당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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