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삼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900708
한자 孫三男
영어공식명칭 Son Samnam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기도 남양주시 오남읍 오남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조형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29일 - 손삼남 경기도 양주군 진건면 오남리[현 경기도 남양주시 오남읍 오남리] 만세 시위에 참여
출생지 오남리 - 경기도 남양주시 오남읍 오남리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3·1운동

[정의]

경기도 남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1919년 3월 1일 경성부 인사동[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 태화관에서 민족 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이후 독립 만세 운동의 열기는 전국으로 확산하였다. 현재 경기도 남양주시 일대를 포함하는 경기도 양주군도 당시 3·1운동이 활기차게 일어난 지역 중 한 곳으로, 3월 13일 이래로 4월 초순까지 20여 회에 달하는 독립 만세 운동이 전개되었음을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다.

[가계]

손삼남(孫三男)[?~?]은 현재의 경기도 남양주시 오남읍 오남리에 해당하는 경기도 양주군 진건면 오남리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손삼남은 1919년 3월 29일 같은 마을 사람인 나상규(羅相奎)·엄본성(嚴本成)·이종갑(李鍾甲)·여원필(呂元弼)·권노적(權魯赤)·한백석(韓白石) 등과 함께 수십 명의 군중을 이끌고 조선 독립 만세를 외쳤다.

해당 시위는 일제에 의하여 해산되었고, 시위 후 체포된 손삼남은 1919년 5월 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다. 해당 판결문은 손삼남이 “손병희(孫秉凞) 등의 조선 독립선언의 취지에 찬동하여 모두 정치 변혁의 목적으로, 1919년 3월 29일경 피고들의 거주지인 경기도 양주군 진건면 오남리에서 수십 명의 군중과 함께 조선 독립 만세를 외침으로써 안녕질서를 방해하였다.”라고 적고 있다. 손삼남은 판결에 불복하여 다른 이들과 함께 공소하였으나, 1919년 6월 21일 경성복심법원은 공소를 기각하였다.

[상훈과 추모]

손삼남에게 2012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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