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900720
한자 吳成俊
이칭/별칭 오흥석(吳興錫)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강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5년 3월 30일연표보기 - 오성준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5일 - 오성준 만세 시위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25일 - 오성준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8월 선고
활동 시기/일시 1920년 3월 5일 - 오성준 만기 출옥
몰년 시기/일시 1940년 2월 12일연표보기 - 오성준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2년 4월 13일연표보기 - 오성준 대통령표창 추서
출생지 오성준 출생지 -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지도보기
활동지 오성준 활동지 -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지도보기
활동지 오성준 활동지 -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남성

[정의]

경기도 남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오성준(吳成俊)[1885~1940]은 오흥석(吳興錫)이라고도 한다. 1885년 3월 30일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에 해당하는 양주군 와부면 송촌리에서 출생하였으며, 농업에 종사하였다.

[활동 사항]

오성준은 1919년 3월 15일 이정성(李正成), 김현덕(金顯德), 김정하(金正夏), 이춘경(李春經) 등이 주도하였던 경기도 양주군 와부면 독립 만세 시위에 김덕여(金德汝), 정일성(鄭一成), 이갑동(李甲同), 김덕오(金德五), 이정운(李正蕓), 김윤경(金允京), 이건흥(李建興)과 함께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5일의 시위는 경기도 양주군 와부면 진중리(鎭中里)·조안리(鳥安里)·능내리(陵內里)·팔당리(八堂里)를 거쳐 면 소재지가 있었던 양주군 와부면 덕소리(德沼里)[현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까지 나아갔다. 덕소리에 도착한 시위대는 면사무소 앞에서 ‘조선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 과정에서 일본 헌병과 충돌이 있었고, 그 결과 주민 40명이 연행되었으며 17명이 기소되었다.

오성준은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되어 1919년 4월 2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았고, 보안법을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1심 결과에 항소하여 상고하였으나 1919년 5월 3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치러진 2심에서 기각당하였고, 1919년 7월 5일 상고심 역시 기각당하였다. 서대문형무소에서 8개월을 복역한 뒤 1920년 3월 5일 만기 출옥하였고, 1940년 2월 12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19년 경기도 양주군 와부면에서 진행된 3·1운동에 참여한 공을 인정받아 1992년 4월 13일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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