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300181
한자 -岾
분야 지리/자연 지리
유형 지명/자연 지명
지역 강원도 영월군 산솔면 화원리|이목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엄흥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전구간 수라리재 - 강원도 영월군
해당 지역 소재지 수라리재 - 강원도 영월군 산솔면 화원리|이목리지도보기
성격 고개
높이 600m

[정의]

강원도 영월군 산솔면 화원리이목리 사이의 고개.

[개설]

수라리재망경대산[1,088m] 자락에 있는 해발 600m의 높은 고개이다. 2013년 수라리터널이 개통되기 전에는 석항에서 녹전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국도 제31호선이었다. 수라리고개 아래에는 새벌마을, 잿마을, 점골 등 자연부락이 있는데, 진산(鎭山)에 해당하는 수라리재의 지세가 너무 강하므로 마을의 기를 살리기 위하여 돌단배기에다 조산(造山)인 돌탑을 쌓고 마을 이름도 수라리재의 ‘수(水)’와 대립되는 ‘화(火)를 넣어 화라리(禾羅里)라 하였다.

고려 공양왕(恭讓王)은 태조 이성계에 의하여 원주군 부론면 손위실에 유배되었으나 한양과 너무 가까운 곳이라 하여, 1392년 수라리재를 넘어 8월 7일[음력]에 고성군 간성읍 탑동리(塔洞里)의 수타사(壽陀寺)로 옮겨져서 굴욕의 나날을 보냈다. 이후, 삼척군 궁촌으로 유배지를 옮겼다가 태조 3년인 1394년 4월 17일에 죽임을 당하였다.

수라리재 위쪽 높은 언덕 마을인 고비덕에는 단종이 태백산 산신으로 신격화되어 고비덕을 지날 때 충신 추익한(秋益漢)이 머루, 다래를 바쳤다는 이야기가 전하여 오고 있다. 1970년대까지 수라리재에는 추계추씨들이 많이 살았고 추익한의 묘역은 2021년 현재 석항리 돌고개에 있다. 추익한의 묘비는 1906년 태백산에서 의병 활동을 하였던 남필원(南弼元)이 지었다.

[명칭 유래]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이 1392년 삼척의 궁촌으로 유배될 때 수라[왕이 먹는 음식]를 들었던 고개라 하여 ‘수라리재’라 한다.

[자연환경]

수라리재는 해발 600m의 높은 고개이다.

[현황]

1960~1970년 초 상동 중석광산과 한일탄광이 성황을 이룰 때 석탄과 텅스텐을 운반하는 화물차들이 국도 제31호선수라리재를 넘어 탄광촌인 석항리 기차역 집하장으로 모였다. 김삿갓면 모운동에 있던 옥동탄광의 무연탄은 삭도를 만들어서 석항역으로 운반하였다.

수라리재 정상에는 1994년에 세워진 ‘충신 추계추익한선생 신도비(忠信秋溪秋益漢先生神道碑)’가 있고 추익한의 묘비 우측에는 1998년 영모전충절사를 건립할 때 추한호 영월종친회장이 세운 ‘우천공충절사봉안기념비’가 있다. 정상에 있는 거리 표지판에는 동해 104㎞, 상동은 28㎞가 남았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2013년에 국도 제31호선인 수라리재터널이 완공되어 산솔면 석항에서 녹전으로 가는 시간을 많이 단축시켰다. 수라리재터널을 촬영지로 만든 재난 영화 「터널」이 2016년에 개봉하여 큰 호응을 얻었다.

[참고문헌]
  • 엄흥용, 『영월의 금석문』(영월문화원, 2019)
  • 인터뷰(강원도 영월군 산솔면 화원리 주민 권상수, 남, 80세, 2021.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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