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18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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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寺刹 |
영어의미역 | Temple |
이칭/별칭 | 절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
집필자 | 이희돈 |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에 현존하고 있는 전통 사찰.
[개설]
구미 지역은 삼국시대부터 불교가 번성하였던 지역이다. 금오산 일대에는 현존하는 수 개의 사찰과 함께 그 정상과 산록에 남아 있는 폐사지만 20여 개에 이른다. 신라에 불교를 전했다는 아도화상(阿道和尙)의 연기설화가 서려 있는 도리사, 신라 탑의 웅대함을 보여주는 선산 죽장동 오층석탑과 선산 낙산동 삼층석탑 등 찬란한 문화유산이 남아 있다.
특히 구미 지역은 신라 불교의 초전지로 주목받는 곳이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신증동국여지승람』, 『일선지』 등에는 신라 불교가 처음으로 시작된 곳이 일선군 즉 선산 지역으로 나타나고 있다. 기록과 유적·유물, 그리고 전설 등을 종합해 볼 때 신라 불교의 발상지는 도개면 도개2리 일대일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구미시에 있는 전통 사찰들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로 도리사·대둔사·수다사·원각사·해운사·법륜사(죽장사)·보천사 등 7개 사찰이다.
[도리사]
도리사(桃李寺)는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 태조산에 위치하고 있다. 아도화상이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서라벌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겨울인데도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만발한 곳에 절을 짓고 도리사라 하였다 한다.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도리사는 신라 최초의 사찰로 전해지고 있다. 처음의 절터는 태조산 기슭에 있는 옛 절터로 추정되고 있으며, 지금의 도리사가 있는 곳은 금당암(金堂庵)이 있었던 곳이다.
1976년 6월 아도화상의 석상이 발견되었으며, 1977년 4월에 세존사리탑을 해체 복원하다가 금동육각탑 형태를 띤 사리구(舍利具)와 석가모니 진신사리 1과가 발견되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인 극락전을 중심으로 태조선원(太祖禪院)·삼성각·조사전·요사채 등이 있다.
[대둔사]
대둔사(大芚寺)는 구미시 옥성면 옥관리 복우산(伏牛山) 동쪽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446년(눌지왕 30)에 아도화상이 창건하였다고 하며, 1231년(고종 18) 몽고 침략 때 불타 없어졌다가 충렬왕의 아들 왕소군(王小君)이 재건하였다. 1696년(선조 39)에 사명대사가 중수하여 승군이 주둔하니 암자가 10여 개소나 되었다. 원래 대둔사는 대둔산에 속했던 청련암이었는데 암자가 소실 폐사된 뒤에 이곳으로 옮겨 대둔사라 하였다고 전한다.
원래의 터에 높이 2~3m, 길이 50m의 석축지가 남아 있다. 『일선지』의 "대둔사재대둔산북(大芚寺在大芚山北)"이라는 기록으로 볼 때 원래의 대둔사는 일찍이 폐사된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경내에는 대웅전·명부전·응진전 등 법당과 부도 1기를 비롯해 여러 석조물이 있다. 대웅전은 17세기 후반의 것으로 추정되며, 주존인 석가여래좌상은 조선시대의 좌불로 대웅전과 거의 같은 시기에 조성된 것이라 한다. 대웅전은 1982년 8월 4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62호로 지정되었다.
[수다사]
수다사(水多寺)는 구미시 무을면 상송리에 위치하고 있다. 『수다사약지(水多寺略誌)』에 의하면, 830년(흥덕왕 5) 진감국사(眞鑑國師)가 연악산 상봉인 미봉(彌峰)에 백련이 한 송이 피어 있는 것을 보고 절을 창건하여 연화사(淵華寺)라 하였다고 한다.
976년(경종 원년)에 화재로 소실되었고, 1185년(명종 15)에 각원대사(覺圓大師)가 중창하여 사명을 성암사(聖巖寺)라 하였다. 이후 1273년(원종 14) 큰 수해를 입어 비로전·나한전·시왕전·청천요사(淸泉寮舍) 등만 남아 있었다.
1573년(선조 5) 사명대사가 극락전을 중수하고 대웅전이라 개칭하고 청천료(淸泉寮)를 수리하여 극락당이라 개칭하고 만세루(萬歲樓) 24칸과 9개 방사(房舍: 스님들이 거처하는 방)를 건립하고 절 이름을 수다사라 개칭하였다. 그러나 1705년(숙종 30) 화재로 인하여 대웅전·시왕전·극락당 등만 남게 되었다.
조성 연대가 알려진 불상은 1186년(명종 15)에 각원대사가 조성한 지장보살상이다. 현재 명부전에 있는 「칠황지옥도」는 전국적으로도 희귀한 벽화로 상태가 완전하며 십대왕상이 그려져 있다. 1981~1982년에 걸쳐 5천만 원을 들여 명부전을 보수하였다. 현재 수다사 경내에는 대웅전·명부전·삼층석탑·동종·부도·목조지장보살좌상·목조아미타여래좌상 등이 있다.
[원각사]
원각사(圓覺寺)는 구미시 선산읍 노상리 비봉산(飛鳳山) 서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원각사는 본래 선산읍내에 거주하는 심씨 가문에서 재실로 건축하여 사용하던 것을 1931년 매입하여 현재의 사찰로 개조한 것이다. 수다사에 봉안된 불상 1구를 옮겨 봉안하였다. 이 불상의 복장에서 범어(梵語)로 된 주서사경(朱書寫經)의 보살상 조성기가 발견되어 조성 연대와 수다사와의 관계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조성기에는 1649년(인조 27)에 수다사에서 아미타삼존불을 조성하였다는 사실과 수십 명의 대시주(大施主)와 대공덕주(大功德主)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해운사]
해운사(海雲寺)는 구미시 남통동 금오산 대혜폭포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대혈사(大穴寺)라는 이름으로 신라 말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임진왜란 때 모든 건물이 소실되어 오랫동안 폐사되었다가 복원된 지 70여 년밖에 되지 않아 고찰의 기운은 느낄 수 없다.
창건기는 없으나 대웅전 신축 연유기(緣由記)에 1956년 3월이라는 기록이 보이며, 『경북대관(慶北大觀)』의 선산군 사찰조에는 1925년 4월 20일에 창건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근대에 세워진 사찰임을 알 수 있다. 대웅전에 봉안된 관음보살좌상은 석불상으로 최근에 조성된 것이며, 탱화는 1951년 정월에 조성된 것이다. 1965년에 이안된 칠성탱화가 있으며, 경내에는 대웅전과 요사채 2동이 있다.
[법륜사]
법륜사(法輪寺)는 구미시 선산읍 죽장리 1123번지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 죽장사란 사찰로 경영되었다고 전한다. 죽장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어 50동이 넘는 건물과 1500여 명의 대중이 살았던 적도 있었으나 연혁은 전해지는 것이 없다. 경내에는 석탑과 주초석 외에도 장대석(長大石)과 기와편 등이 산재하고 있다.
죽장사는 법륜사란 이름으로 이어져 오다 폐사 직전에 현재 스님들의 원력으로 새로운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오층석탑(국보 제130호)을 중심으로 경내에는 법당과 요사가 각각 1동씩 세워졌으며, 법당 안에는 금오산에서 이안하였다는 석가여래좌상과 관음보살상이 봉안되어 있으나 이 역시 근년에 조성된 불상이다.
[보천사]
보천사(寶泉寺)는 구미시 해평면 해평리에 있다. 매봉산이 병풍처럼 둘려 있고 남쪽이 터져 있어서 낙동강이 곧바로 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보천사는 폐사되어 절 이름만 전해지다가 절터에서 매몰된 불상(보물 제492호)이 발견되었다. 1959년에 해평리에 거주하는 최재기를 비롯한 신도들이 단칸[單間]의 보호각을 신축하고, 매몰된 불상을 발굴하여 현 상태로 수습하였다. 석불 주위에는 많은 와편과 주초석 등이 산재하고 있었다.
1979년에는 정부에서 보호각을 중건하였고, 1981년 진상 스님이 적묵전(寂黙殿)을 신축하고 산신각을 세웠고, 1982년 신도들의 성금으로 요사 7칸을 준공하였다. 『일선지』에는 “보천은 (해평)현의 서쪽 4리 보천탄 가변에 있는데 예로부터 보천사가 있었으므로 샘물을 보천이라 일컬었다(寶泉 在編西四里 寶泉灘邊 古有寶泉寺 因泉水而名焉)”라는 기록이 있다.
[현황]
구미 지역 불교 도래지로서의 특성은 문화유산으로만 남아 있고 불교 성지로서의 의미와 기능은 위축되었다고 할 수 있다. 본사의 규모를 갖춘 사찰도 없고, 조계종단에 소속된 사찰의 경우 대개 김천 직지사의 말사들이다. 다만 도리사·대둔사·수다사·보천사 등 전통 사찰이 있으며, 국보급·보물급의 불상과 탑 등이 화려했던 불교문화의 자취를 남기고 있다. 현재 조계종·천태종·태고종 등 각 종단에 소속된 사찰들이 구미사암주지연합회를 결성하여 불교 부흥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때로는 국제적인 불사를 개최하기도 한다. 특히 도개면 도개리에 소재한 아도모례원은 아도화상의 불교 전래 사실을 입증하고 그 유적을 확인하여 한국 불교의 성지로서의 입지를 확고하게 하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